누구든 사랑하는 누군가나 잊고 있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림책 작가 박정하 저자에게 그 ‘무언가’는 할머니다. 『정하네 할머니』 는 저자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이다. 저자에게 가장 좋은 기억이 바로 할머니와의 추억이고, 이제 그 추억이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이 탄생했다. 소중한 추억을 지닌 독자라면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마음에 봉숭아 꽃물이 서서히 물드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정하네 할머니』 는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셨지요. 할머니와의 어떤 추억 때문에 이 이야기를 구상하시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이야기의 출발은 짧은 그림책을 만들어 보는 수업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는데요. 이런저런 일들로 한창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였는데 그때 만난 선생님이 ‘나에게 가장 기분 좋은 기억,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하셨어요. 나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가 뭘까 하고 생각하니 바로 할머니에 대한 것이었어요.
할머니에게 손녀는 제일 좋은 친구고 무조건 사랑이잖아요. 할머니와 손녀는 불가능할 것이 없는 최고의 콤비라고 생각하는데요. 특별히 더 상상하거나 포장할 것 없이 어린 시절 할머니랑 함께 보낸 모든 일상 그 자체가 저에겐 가장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되었어요.
책 속에 등장하는 ‘쌀로별’과 ‘봉숭아 물들이기’에 얽힌 작가님만의 일화가 있나요?
어릴 때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가득 채워 물놀이를 했는데요. 거기서 물놀이 한바탕 신나게 하고 나면 할머니가 봉숭아꽃을 쿵쿵 빻아서 손톱에 물을 들여 주셨어요. 젖은 머리를 하고 손가락에 비닐 씌운 채로 ‘쌀로별’ 과자를 집어 먹곤 했는데, 그때 기분이랑 향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신나게 놀다가 할머니 다리 베고 누워서 오물오물 과자를 씹어 먹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뒹굴뒹굴. 아, 생각만 해도 좋지 않나요? 그때 그 시원함, 과자의 짭쪼름 고소한 맛, 봉숭아 꽃물 향기가 섞여서 지금도 그 과자를 먹으면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요.
본인을 ‘깊은 심심함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한다’고 소개하셨는데, ‘깊은 심심함’이란 어떤 걸까요? 예를 든다면?
‘깊은 심심함’. 이 단어를 어느 책에서 보고는 마음에 들어서 간직하고 있었는데요. 심심함은 제 삶의 키워드 중에 하나거든요. 저는 항상 좀 심심해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약간 쓸쓸하기도 심심하기도 한 이런 상태를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아무튼 이럴 땐 그냥 계속 심심해하며 누워 있거나, 안 심심해지려고 뭔가를 조용히 작당(?)해요. 아마도 그 심심함 때문에 삶에 작고 엉뚱한 일이 일어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날로그 감성이 다소 낯설 유튜브 세대에게 이 책을 좀 더 친근하게 소개해 주신다면?
이 그림책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모든 분에게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러분의 누군가,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제가 과자를 먹을 때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이 그림책 표지를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자기만의 문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누군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책. 그렇게 자신만의 이야기 문, 추억의 문이 열리는 모두의 그림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그림에 상당히 신경을 쓰셨고 섬세한 수정 작업을 거치셨는데, 그 과정이 궁금해요.
귀찮음과 꼼꼼함이 공존하는 성격이라서 무심한 듯 쉽게 그리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꼼꼼하게 신경을 쓰고 있더라고요. 대충과 열심을 오가며 작업했던 것 같아요. 주재료는 색연필인데, 아이들이 색연필이랑 크레파스를 많이 쓰잖아요.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 칠하는 그 느낌이 좋아 저도 색연필로 쓱쓱 그리고 꾹꾹 눌러 칠했어요. 수정할 때는 콜라주 느낌을 살린 부분이 있는데, 크게 강조한 부분은 아니에요. 제가 가위로 자르는 걸 좋아해서 그리면 뭐든 오려 두는 편인데, 이건 다음 그림책에서 조금 더 눈여겨봐 주세요.
나에게 『정하네 할머니』 란 ( )이다.
(작은 쪽지)다! 뭔가 거창하고 특별할 건 없지만 무심결에 적어 두고 싶은 낙서나 소곤소곤 비밀 이야기 있잖아요. 일상적이지만 나에게는 비밀스럽고, 재미있고 간질간질한 쪽지요. 그렇다고 쉽게 버리지는 못하고 잘 접어서 상자 속에 넣어 종종 꺼내 보고 피식거리게 되는 기분 좋은 쪽지. 그런데 그 쪽지를 혼자 서랍에 넣어두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전달하게 되어서 조금 떨리네요. 옆 사람에게도 많이 전달해 주세요.
작가님은 훗날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나요?
저는 예쁘고 웃긴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예쁘고 웃긴 할머니가 책상에 앉아서 뭔가 계속 손을 꼼지락거리고 중얼거리며 그림책을 만든다고 상상하면 기분이 아주 좋거든요. 주변에 웃긴 할머니 친구들이 있다면 인터뷰 심사를 거친 다음 ‘웃긴 할머니 클럽’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아쉽게도 할아버지는 클럽에 들어올 수 없어요. 그리고 종종 집에 귀여운 아이들도 초대해 저의 작업도 보여주고, 맛있는 간식도 주고, 재미있는 그림책 읽어 주면서 심심하지 않게 살고 싶어요. 예쁘고 싶은 이유는, 아이들은 예쁜 사람을 좋아하더라고요. 흥.
1984년 여름날, 우리 집 귀여운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깊은 심심함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해, 조용히 엉뚱한 일을 벌입니다. 그림책을 놀잇감 삼아 경계를 넘나들며 모험하기도 좋아합니다. 서울여대에서 언론영상학과 아동학을, 성균관대 대학원에서는 아동문학, 미디어 교육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림책으로 어린이들을 만나던 시간을 지나 지금은 제 안의 어린이와 놀며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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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네 할머니박정하 글그림 | 씨드북
‘정하’에게 있어서 ‘나에게 가장 좋은 기억, 나만의 이야기’가 바로 할머니와의 추억이고, 이제 그 추억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이 탄생했어요.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