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회째를 맞이하는 ‘2019 서울국제작가축제.’ 12개 다른 국가의 작가들과 한국의 작가들, 그리고 독자가 문학을 통해 만나고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국내 작가들의 에세이를 통해, 행사의 분위기를 미리 만나보세요.
행사 일정 : 2019년 10월 5일 ~ 10월 13일
공식 웹사이트 : http://siwf.or.kr
이승우 작가 참여 세션: http://siwf.or.kr/contents/program_detail02.php
1. 알파고와 아자황
2016년 3월 한국의 한 호텔에서 이세돌은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벌여 1승 4패를 했다. 이 1승은 인간이 알파고를 상대로 거둔 유일한 승리이다. 이 세기의 대결은 세계에 생중계되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손이 없는 알파고를 대신해서 바둑판에 착수를 해주는 사람의 손이었다. 보도에 의하면 그 손의 주인은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 소속 대만인 아자황이라고 한다. 아마추어 바둑 6단인 그가 그 대국에서 한 일은 인공지능 알파고의 손이 되어, 알파고의 지시에 따라 바둑판에 돌을 놓는 것이었다. 그는 정말 그렇게 했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 말고는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 손은 그의 손이 아니고 알파고의 손이었다. 대국이 끝나고 난 후의 관례적인 복기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그는 대국자가 아니고, 그러니까 복기할 자격이 없으니까 복기를 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는 로봇 같았다.
서유미의 소설집 『당분간 인간』 (2012, 창비)에는 자본이 세계를 지배한 사회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단편소설들이 여러 편 실려 있다. 그의 소설들에서 사회를 지배하고 인간을 통제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정부나 독재자나 군대가 아니라 ‘회사’로 호명된다. 이 소설집에 실린 한 단편의 제목은 「저건 사람도 아니다」인데, 사람의 일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이 점차 인간의 중요한 일을 맡아하게 되고, 사람은 허드렛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인공지능 로봇은 능력만 아니라 매력까지 가진 것으로, 인간은 능력만 아니라 매력도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우리가 우리의 필요와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은 역설이지만 부정할 수 없다. 중독 증상의 대부분은 인간이 인간의 필요와 편의를 위해 만든 것에 지배 받는 전도된 현상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도박이나 게임, 인터넷, 알콜, 포르노, 그리고 최근의 스마트폰까지 어느 것 하나 인간의 필요와 편의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인간은 이렇게 하면 편할 텐데, 이렇게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하면 힘 안 들이고 능률을 올릴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 텐데, 하며 이런 저런 것들을 상상하고 발명하고 개발하고 탐닉하고, 그 결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들의 지배를 받는다. 이 지배의 과정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유연한지 의식하기 힘들다.
2.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계산대에 앉은 여자가 속사포처럼 빠르게 묻는다. “마일리지 있으세요?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할인 되는 카드 있으세요?” 단호한 표정의 남자 고객은 말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남자의 표정은 무슨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처럼 엄숙하기까지 하다. 몇 년 전에 한 카드회사가 만들어 내보낸 광고 내용이다.
너무 복잡해진 스마트폰은 인간을 기계와 소비의 종으로 만든다. 유용한 점이 없지 않지만, 꼭 필요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것들이 더 많다. 편리를 위한 인간의 필요보다 이익을 위한 인간의 욕망이 더 크고 억세다. 통제 불능에 이른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필요하지 않아도, 필요와는 상관없이,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어낸다. 싸우기 위해서 무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팔기 위해 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필요가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기술이 인간의 필요를 만들어낸다. 필요는 발명된다.
자기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착취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의 착취 방법을 폭로한 사람은 『피로사회』 의 저자 한병철이다. 우리가 착취당한다는 의식 없이 자발적으로 기꺼이 자신을 착취한다는 것. 자본이 주인인 세상은 사람에게 더 하라고 하고, 더 가지라고 하고, 더 즐기라고 하고 더 출세하라고 한다. 더 하는 것을, 더 가진 것을, 더 즐기는 것을, 더 출세하는 것을 보여주라고 한다. 옷으로 몸으로 자동차로 SNS로 전시하라고 부추긴다. 그것을 통해 표면적으로 우쭐해진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그 표면적 우쭐함이 내면을 깎아내고 파내고 공허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진실은 이야기되지 않는다. 르네 지라르는 모든 욕망이 매개된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소외는 소외되기이면서 동시에 소외시키기다. 소외의 주체와 객체가 같다. 발부터 시작해서 머리까지 자기 몸을 먹어치우는 상상 속의 동물 카토블레파스를 우리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읽었다. 그는 소설가의 운명을 이 동물에 비유했는데, 즐기면서, 즐기는 방법으로 자기를 착취하는 한병철의 현대인을 비유하는데 이 상상 속 동물은 손색없어 보인다.
3. 카프카의 단식광대
카프카의 단편 「단식 광대」에는 밥을 굶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나온다. 구경꾼들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매우 역동적으로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려고 서커스 장에 간다. 이를테면 불을 지나가든가 공중에서 그네를 타든가 접시를 돌리는 사람들. 그런데 그 모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단식광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그는 왜 밥을 먹는 일을 하지 않는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단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 왜냐하면 내 입에 맞는 음식이 없었기 때문이야.”
이 사람의 말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을 사는 우리로서는 특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 이 광대의 말은 우리가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있는지 질문하게 한다. 우리는 ‘내 입맛’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일까?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이 없지는 않다. 맛있는 음식이 어느 시대보다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 우리가 맛있게 먹는 그 음식들은 정말로 내 입에 맞는 음식일까? 그 맛은 내 입맛일까? 르네 지라르는 내 입맛에 대해 할 말이 없을까? 입에 맞는 음식만 먹는다는 것, 내 입에 맞는 음식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에 의해 매개된 욕망이 아니라 주체적 입맛에 따라 음식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유혹과 중독, 모방 충동에 따라 필요와 욕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필요에만 충실하다는 뜻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모든 곳이, 심지어 가상공간까지를 포함해서,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대한 서커스장으로 바뀐 세상에서 이 일이 쉬울 리 없다. 광고 속의 남자가 ‘격렬하게 안 하고 싶다’는 이상한 문장을 사용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 문장은 모순이다. 격렬하게 할 수는 있지만 격렬하게 안 할 수는 없다. ‘격렬하게’는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안 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가 아니다.
이 모순의 문장은 우리가 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안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암시한다. 안 하기 위해 ‘격렬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친다. 무빙 워크 위에 올라선 사람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빙 워크가 어딘가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욕망에 저항하기가 어렵다는 것, 시대와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단호함이 필요하다는 것, 격렬함이 요구된다는 것이 이 문장의 핵심이다.
*이승우
1959년 전남 장흥군 관산읍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신학대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중퇴하였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1991년 『세상 밖으로』로 제15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1993년『생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고, 2002년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로 제15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여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왔다. 이후 2003년 『심인광고』로 제4회 이효석문학상을, 2007년 『전기수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2010년 『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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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이승우 저 | 현대문학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세상의 끝에 당도한 세 사람의 극적인 삶을 통해 삶과의 사투를 넘어선 궁극적인 구원의 세계를 발견해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승우(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