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뉴욕에서. 2001년 9*11테러로 무너진 맨해튼의 트윈 타워가 멀리 보인다.
『외국어 전파담』 을 통해 독자의 사랑을 받은 로버트 파우저 선생이 새 책을 펴냈다. 미국인으로 교토대를 비롯해 일본 여러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지내다 홀연 독립학자로 살겠다고 선언한 뒤 공들여 만든 책 『외국어 전파담』 을 통해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그가 새로 펴낸 책은 뜻밖에도 도시에 관한 책. 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다. 도시는 외국어를 섭렵하며 매우 자연스럽게 경험해온 삶의 또다른 배양지였다.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 둘러본 세계 여러 나라 약 14곳의 도시에 관한 그의 이야기에 이상향을 노래하는 낭만은 없다. 그의 탐구의 대상은 이국적인 풍광과 유명한 관광지 이면에 쌓인 오랜 시간과 문화이며, 매우 당연하게도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오늘의 일상이다. 한 독자는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도시에 관한 이런 책은 없었다.” 한마디 더 보태자면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바로 그 책의 주인공, 로버트 파우저 선생과의 지면 북토크를 시작한다.
전작인 『외국어 전파담』 이후 1년 만에 펴낸 새 책의 주제가 ‘도시’입니다. ‘도시’에 관해 책을 쓰신 동기가 혹시 있으신지요?
1978년, 고교 1학년을 마치고 두 달여 동안 도쿄 근처에서 홈스테이를 했습니다. 미국 앤아버에서만 살던 제게 도쿄는 상상조차 못했을 정도로 엄청나게 크고 활기가 넘쳤죠. 그후 세계 여러 도시에 살면서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어떻게 해서 이곳에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을까?”하는 질문이 마음속에 떠올랐죠. 도시에 관한 책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10년 무렵이고, 『외국어 전파담』 을 출간한 뒤 다음 책은 도시에 관해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980년대 종로. 그때 그 시절을 로버트 파우저 선생도 함께 이곳에서 보냈다.
도시에 관한 책이라면 개인 감상기나 여행 정보서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 책은 생활자로서 도시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깊은 시선이 느껴지는데요. 도시의 형성 배경, 국가와 도시의 관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오버투어리즘, 이민자 등 오늘날의 도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까지도 살피고 계시더라고요. 그렇게 낯선 도시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는 선생님만의 방식이 있을까요?
어떤 곳이든 그 도시의 깊숙한 곳을 접하려면 그 도시에 오래 살았던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자국 문화’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이전에 살던 곳에서의 사고를 내려놓아야죠. 아울러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그렇게 지내다보면 도시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고 살아가는 공간이 되지요.
세계 주요 도시와 지역 도시 등 모두 14곳에 대해 쓰셨는데요. 도시마다 쓰는 느낌이 다르셨을 거 같아요.
저는 고향이 세 곳입니다. 태어난 앤아버, 거의 40여 년 인연이 있는 서울, 언제나 그리운 교토도 고향이지요. 이곳들은 오래 걸렸어요. 쓰고 싶은 내용이 많으면서도 객관화하기가 어려웠거든요. 분석의 대상이 가까울수록 역시 쓰기가 어렵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 살고 있는 프로비던스도 쓰기가 조금 까다로웠지요. 반면 더블린, 대구와 전주, 가고시마와 구마모토 등은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좋은 추억이 많고, 도시 규모와 개인적인 경험들이 적절하게 조화가 되어 있거든요. 도쿄나 런던, 뉴욕 등은 쓸 내용이 많아 쓰기 전에 어떤 내용을 쓸까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요.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최근까지 선생님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 있던데요. 수십 년의 시간이 담긴 사진을 다시 보시니 느낌이 어떠시던가요.
수많은 사진들을 보면서 무척 즐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매우 묘하기도 했습니다.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즐거운 건 분명한데,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변화를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어렴풋하게 느끼던 시대 차이가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경계선은 1990년대 무렵인 듯한데, 그 이전 사진은 머나먼 옛일처럼 느껴지는 데 그 이후 사진은 마치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마치 가까운 옛날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1978년 도쿄에 가기 전에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사진을 슬라이드로 찍어보라고요. 그때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까지 슬라이드로 사진을 찍었고 잘 보관을 해뒀죠. 그 덕분에 예전 사진을 이 책에 많이 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 말씀을 듣기 잘했죠.
책을 내신 뒤 동네 책방에서 많은 독자들과 직접 만나셨어요.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독자들을 만나시니 어떠셨는지요.
독자분들을 직접 만나는 건 매우 흥미롭습니다. 세대 차이도 종종 느낍니다. 일반화는 조심스럽지만 아무래도 젊은 독자들은 책의 내용에 관심이 많고, 저를 한 사람의 작가, 저자로 바라봅니다. 연세가 좀 있는 분들은 ‘한국에서 책을 쓴 외국인’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민주화 이후 학교를 다닌 세대와 그 이전 세대의 차이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외국어 전파담』 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로 쓰시고, 이번 책도 한글로 쓰셨어요. 쉬운 일이 아니실 텐데 굳이 한글로 쓰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냥 한국어로 쓰고 싶었어요.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저도 잘 몰라요. 그냥 그러고 싶은 겁니다. 하고 싶은 일에 모두 다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또 아니잖아요? 하하하.
『외국어 전파담』 출간 직후 이 책의 기획이 이루어졌다고 하던데요. 혹시 다음 책도 이미 기획하고 계신 건 아닌지요.
『외국어 전파담』 출간 후 많은 분들이 외국어에 관심이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독자분들께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외국어를 배울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렵게 배운 외국어 실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에 대해서 써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제는 우선 '외국어 학습담'으로 정했습니다.
*로버트 파우저
그는 각국 도시 생활자이며 탐구자다. 그에게 ‘도시’란 여행자로 스치는 장소가 아닌, 일상의 터전이며 삶의 기반이다. 어디에서나 경계 밖 이방 인으로 살지 않았으며 기꺼이 그 도시의 일원이 되었다. 얼핏 보이는 도시의 풍경보다 그뒤에 쌓인 시간과 도시를 이루는 수많은 ‘입자’야말로 그의 관심사다.
미국 앤아버에서 태어났으나 주로 이 도시 밖에서 살았다. 고교 시절 도쿄에 두 달여 다녀간 이후 여러 대륙의 수많은 도시에 머물렀다. 한국과 일본과의 인연은 여러모로 남다르다. 서울, 교토, 대전, 구마모토, 가고시마 등의 여러 학교에 재직하며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13년여를 살았다. 서울과 교토 등에 살면서 한국과 일본의 여러 도시를 수시로 다녔으며 그 중에서도 전주와 대구 등과의 인연은 10여 년이 넘어간다. 이외에도 학업을 위해 살았던 더블린은 물론 런던과 뉴욕, 어 머니가 말년에 살았던 라스베이거스 역시 그에게는 늘 어제 본 듯 선한 도시다. 이밖에 미국과 유럽의 여러 도시에도 매우 익숙하다.
여러 언어 사용자이기도 한 그에게 사는 도시의 언어는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유용한 도구다. 언어학 전공자로서 모어인 영어 외에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몽골어를 공부했고, 한문과 라틴어, 북미 선주민 언어, 중세 한국어 등을 따로 익혔다. 최근에는 에스페란토어를 학습 중이다.
이밖에 사진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단순히 애호가의 수준을 넘어 지속적으로 촬영 작업을 해오고 있다. 2016년 교토에서 열린 국제사진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고, 2017년과 2018년 인천과 홍천에서 마을공동체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이후에도 다양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사진 역시 모두 그가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찍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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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로버트 파우저 저 | 혜화1117
세월이 흐르면서 짧게는 1년 반, 길게는 십수 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많은 도시는 그와 함께 늙어가는 친구이기도 하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 스승이기도 하며, 오랜만에 찾아가도 늘 반가운 제2의 고향이 되기도 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