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토도 달지 않은 ‘쿨한’ 사과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임윤희 『도서관 여행하는 법』 , 140쪽)
키보드를 부셔버리고 싶은 메일을 받았다. 본문의 30% 분량이 ‘ㅠㅠ’로 시작해 ‘ㅠㅠ’로 끝나는 메일을 읽는 순간, 나는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왜 ‘쿨한’ 사과는 어려운가. ‘매번’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당신인데, 왜 당신의 곤혹과 불편한 마음을 고스란히 나에게 전가하는가. 10줄 끝에 나오는 ‘ㅠㅠ’ 하나 정도는 이해하지만, 매사 ‘ㅠㅠ’를 붙이는 사람은 프로답지 못하다.
임윤희 나무연필 대표가 쓴 『도서관 여행하는 법』 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의 필력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도서관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재밌을 일인가?’ 싶어, 기분 좋게 놀랐다. ‘앎의 세계에 진입하는 모두를 위한 응원과 환대의 시스템’이라는 심오한 카피가 책 표지에 써있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저자가 책을 대하고 도서관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반했다.
도서관덕후인 저자는 ‘도서 신청, 함부로 하면 큰일 난다?’라는 꼭지에서 동네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누군가 마음만 먹는다면 내가 신청한 희망 도서의 목록도 볼 수 있”(139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친구의 이름으로 희망 도서 목록을 검색해본다. 이윽고 화면에 뜬 친구의 희망 도서들. 저자는 조금 망설이다가 도서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다.
“현재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희망 도서를 신청하면 신청자의 이름이 모두 공개되고 있습니다. 희망 도서를 신청할 때 다른 사람이 이미 신청한 책인지 확인해 보는 용도로 책 제목을 검색해 볼 순 있겠지만, 신청자의 이름은 개인 정보이므로 공개되지 않는 게 맞을 듯합니다. 이에 대한 도서관의 생각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139쪽)
캬! 사이다를 한잔 마신 느낌이었다.
과연 저자는 해당 도서관 담당자로부터 피드백을 받았을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도서관 측의 답변을 받았다. 이 사안에 대해 세심하게 고민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홈페이지 시스템을 바꿔 희망도서 신청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즈음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 선생님은 이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셨다. 아무런 토도 달지 않은 ‘쿨한’ 사과는 정말 오랜만이었다.”(139~140쪽)
얼마 전, 내가 받은 두 통의 사과 메일을 비교해보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미안하지만 자신에겐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다며 모든 문장에 ㅠㅠ를 단 사람과 “약속을 지키지 않아 미안합니다. 다음부터는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라고 심플하게 사과한 사람. 후자의 메일만 진짜 사과로 느껴졌다.
‘언제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있고, ‘언제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 기질, 성격, 상황 탓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당신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 덕분에 살고 있다고,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진짜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토 달지 말고 쿨하게 사과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프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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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여행하는 법임윤희 저 | 유유
지역 도서관의 운영위원이 된 ‘도서관 덕후’가 전 세계 다양한 도서관을 여행하고 변화하는 주변 도서관을 살피며 느낀 도서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담아냈다.
엄지혜
eumji01@naver.com
8월의기린
2019.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