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출신 2001년생 빌리 아일리시는 <뉴욕 타임스>의 설명처럼 ‘당신이 알 법한 17세 팝스타’가 아니다. 디지털 원주민 Z세대의 심리를 불면과 악몽으로 상징하고, 힘없이 읊조리는 보컬과 자기혐오 및 냉소의 메시지, 침잠하는 고딕과 두꺼운 베이스라인으로 이를 표현한다. 「Bellyache」의 사이코패스 성격을 증폭한 앨범은 어두운 심연의 사운드스케이프 위에서 감각적이고도 천진난만하게 10대의 위험한 상상을 노래한다. 모순적이지만, 일견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당신이 잠든 사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주제 아래 앨범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고무줄놀이처럼 뛰어논다. 정격적인 리듬 위 불안정한 신스와 오버 더빙 보컬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bad guy」는 ‘난 나쁜 놈이야’라 그르렁대며 다크 히어로의 선전포고를 알린다. ‘유리를 밟고 / 혀를 스테이플러로 찍어 / … / 난 나를 끝장내고 싶어’라 절규하는 침대 밑 괴물 「bury a friend」에선 원시적인 드럼 & 퍼커션 리듬과 현대 사회의 공포를 담은 - 치과 드릴과 미니 오븐 - 사운드 샘플로 형형히 빛나는 칼날을 꺼내 놓는다.
선명한 자기 파괴 「bury a friend」와 묘한 중독의 「my strange addiction」 역시 어두운 정체성에의 집착을 들려준다. 그런데도 ‘나에게 마약을 주지 마’라 선을 긋는 「xanny」와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ilomilo」에선 어린 사춘기의 불안이 들린다. 자기 혐오와 삶의 희망 속 혼란스러울 틴에이저의 자연스런 감정이다.
「wish you were gay」는 이런 빌리 아일리시의 팝 중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쓸쓸한 어쿠스틱 기타 인트로와 함께 TV 속 가짜 웃음이 옅게 스쳐 가고, 12부터 1까지 숫자를 활용한 재치 있는 가사는 디지털 시대의 슬픈 외사랑을 절절히 전달한다. 강한 베이스, 드럼 비트에 맞춰 빌리의 보컬도 선명하여 보다 친절한 접근을 들려준다. 진심을 전하는 데 인색하고 또 서툰 Z세대의 송가다.
친오빠 피네스(Finnease)와 함께 모든 작업을 진행하는 빌리의 재능은 팝 시장에서 확실히 번득이는 데가 있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내며 너른 장르 운용과 독특한 사운드 장치로 팝스타에게 요구되는 외모나 교훈적인 메시지, 유려한 가창의 고정관념을 성공적으로 거부한다. 처연한 트랩 「you should see me in a crown」부터 우쿨렐레와 음성 변조를 활용한 「8」, 후반부 발라드 「listen before i go」, 「i love you」 등을 일관된 테마로 엮어내는 것이 그 예다. 앨범 전체 멜로디를 한데 모아 갈무리하는 「goodbye」도 신선하다.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이 새로운 결과물은 아니다. 독특한 비주얼 쇼크는 나인 인치 네일스와 마릴린 맨슨에 가깝고 얼터너티브 그런지의 황폐함을 빌려왔으며 핵심 문법으로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라나 델 레이의 이름이 스쳐간다. 과거로 느껴지지 않는 과거의 유산을 조화롭게 재해석하면서도 기성의 팝 논리를 반박했다는 데 빌리 아일리시 성공의 핵심이 있다. <뉴욕 타임스>를 다시 인용하자면, ‘익숙해져야’ 한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