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레트>의 한 장면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를 좋아한다. 그의 약간 밋밋한 몸매와 각진 턱도 좋지만 눈빛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가지런한 이들. 그가 연기한 프랑스의 작가, 파리의 인플루언서,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콜레트>는 배우 때문에 보고 또 본 영화가 되었다. 나 말고도 그녀의 가지런한 이가 좋다고 콕 집어 말한 이가 있었으니, 영화 속 연인이라는 것도 신기하다.
시골 처녀 콜레트는 파리의 유명 출판 기획자, 바람둥이 윌리와 결혼한다. 그들의 부친이 참전 군인 동기였기에 맺어지긴 했지만, 꽤 나이 차가 있는 커플의 조화는 그럴듯하다. 당차고 적극적이고 영리한 콜레트는 윌리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에도 문학적인 감수성이 반짝인다. 파리의 많은 여자들과 사귀어본 윌리는 콜레트의 특별한 글 쓰기 재능을 좋아한다. 출판기획자로서 본능적으로, 재능이 있는 이에게 기우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편집자인 나는 짐작해본다.
세기말 프랑스의 초베스트셀러 <클로딘> 시리즈는 콜레트가 자신의 학창 시절을 ‘클로딘’ 캐릭터에 입히고 섬세하게 녹여 쓴 소설들이다. 본인의 이름으로 출간할 수가 없어서 남편 윌리의 이름으로 출간했다. 유령 작가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콜레트가 유령 작가의 삶에 동의한 데는 여성이 소설을 쓴다는 것이 당대 문화적 분위기에서는 용인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로써 부부는 동업자가 되었다. 아내가 쓰고 남편은 출간하고 성과를 즐기는 사이, 조금씩 서로의 욕망이 달라져가고 무엇보다 콜레트의 자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글 쓰는 여성의 자아가 유령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깨뜨리고 나오려 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멋진 여성은 콜레트의 어머니다. 신혼 초 윌리의 여성 편력과 거짓말에 질려 시골집으로 온 콜레트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누구도 너의 본연의 모습을 빼앗을 순 없어, 이쁜 내 강아지” 그리고 “너 자신을 믿어라”고 격려한다. 누구의 아내가 아닌 콜레트의 재능과 강한 자아를 믿고 있는 어머니의 기대 찬 목소리에 콜레트도 마음을 다잡는다. 비록 용서를 구하는 윌리와 다시 화해하긴 했지만 어머니의 격려는 콜레트에게 힘을 주었다. 윌리와 이혼할 시점에서 어머니는 말했다. “네 재능을 발휘하면서 살아야지. 네 이름으로 새로운 작품을 써봐.” 어머니와 딸이라는 원초적인 핏줄 관계를 넘어서 여성과 여성의 격려와 연대는 작가의 자아 찾기에 지대한 공헌이니까. 이런 어머니, 존경합니다!
콜레트는 결혼 생활 가운데서도 연애를 한다. 남편 윌리도 역시 자유롭고 당당하게 연애한다. 파리의 살롱 문화를 기반으로 연인을 갖는 것이 그다지 흉이 아닌 일인 듯했다. 콜레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삶의 마지막까지 동반했던 연인은 후작 부인인 ‘미시’. 그녀들의 애정도 문화적 활동도 가열차고 전위적이었다.
<콜레트>의 감독은 <스틸 앨리스>를 연출한 워시 웨스트모어랜드다. 알츠하이머를 겪는 여성 언어학자를 열연한 배우 줄리언 무어가 돋보이는 <스틸 앨리스>와 이 영화 <콜레트>에서 여성의 자아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실제 콜레트는 법적 소송을 통해 남편이 가졌던 저작권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확보한다.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기도 하면서 말년까지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 <콜레트>의 한 장면
콜레트의 의상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드레스가 바지 정장으로, 학생복 스타일의 세일러 복장으로, 직접 출연한 연극 무대에서는 한쪽 가슴을 드러내기까지 하는 이집트 복장으로, 콜레트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세상이 입혀주는, 더 정확히는 신분이 입혀주는 의상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으며 자아를 표현했다.
영화 속 대사 속에서 ‘몇 부 찍었나’ ‘판매 수익은’ ‘3쇄 찍었다’ ‘서점의 주문이 파악’ 등 출판계 용어가 나오면 나는 더욱 흥미로워 신이 났다. 자아는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도 스스로 정체성으로 귀히 여기는 측면으로 성장하는 법. 영화 보는 내내 출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관객의 그것보다 더 컸다.
콜레트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며 자아 찾기를 지속한 매력적인 작가였다. 유령 작가의 노릇을 하기에는 작가의 자아가 강했고 여성으로서의 의지도 견고했기에, 우리로서는 다행이다 싶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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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찻잎미경
2019.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