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특집] 이남옥 “치사랑이 아닌 내리사랑의 문형을 만들자”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내 배우자와 자녀의 좋은 점을 찾아서 내 안에서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글ㆍ사진 정의정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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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불화하는 이유는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이고, 가족과 불화하는 이유는 서로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내 앞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지만,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가족은 가장 가까울수록 가장 멀어지기 쉽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부부라서, 부모라서 더 전하기 힘든 말들을 상담실에서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가장 가까운 관계가 힘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남옥 교수는 부부가족상담치료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심리학자다. EBS 프로그램 <달라졌어요> 등에서 상담코치 전문가로 활약했고, 30년간 3만 회 이상 부부가족 상담을 하면서 가족 관계 안에서 잘 지낼 수 있는 심리적 지름길을 제시해 왔다. 그가 쓴  『우리 참 많이도 닮았다』 는 끝나지 않는 부부싸움과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녀, 불행의 모습도 닮은 가족이 상담하면서 끝내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가족 안의 닮음을 인정하고 심리적인 거리를 좁히면서도 온전한 개인으로 관계 맺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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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전세계 공통


현재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 소장으로 계시죠. 가족관계를 위주로 상담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심리학이 사람에 대한 이해잖아요. 독일에서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우연히 가족치료를 만났을 때 사람을 이해하는 너무 좋은 접근이라고 생각했어요. 인위적으로 책과 이론을 통해 공부했던 심리가 너무 명료해지는 거예요. 그때부터 가족이라는 테마에 빠져서 인지심리학 쪽으로 쓰던 박사 논문을 그만두고 가족 테마로 논문을 다시 썼어요. 이후로는 가족과 관련된 일을 확신과 소명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가족관계가 심리학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가 뭔가요?


그전에는 심리적인 특징이나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고 개인을 위주로 치료했다면, 가족치료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어떤 사람도 그저 비정상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 행동을 할 할 만하다는 걸 맥락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거예요. 특히 상담은 누군가가 아프고 부족해서 채워주고 고쳐준다기보다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겉으로 보이는 상처나 문제점을 떠나서 그 안에서 본인이 얼마나 존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인지를 찾아주는 작업인데, 가족치료주의적 접근을 하면 그게 가능해진다는 거죠.


심리학계에서도 트렌드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처음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관계보다는 개인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원가족의 문제를 탐색하는 게 심리 문제 극복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요.


제가 81학번인데, 80년대 심리학에서는 가족 이야기를 못 하게 했어요. ‘나’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는 게 심리학의 트렌드였죠. 가족을 배제한 채로 나를 이해한다는 게 한계에 자꾸 부딪히면서 점차 바뀌어나갔어요. 부모자녀 관계는 소프트웨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나는 건데, 이 과정 없이는 이 사람의 심리를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깨달은 거죠. 그전에는 병이 있으면 그 사람을 치료하면 된다고 했어요. 약물치료도 하고 상담 치료도 해서 가족에게 보내면 일주일이 안 돼서 다시 아픈 거예요. 가족은 반기면서 우리가 잘 보살피겠다고 행복하게 돌아가는데 왜 이 환자는 다시 돌아오는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니까 안 보였던 게 보이는 거죠. 가족 안에서 병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어나는 아주 오묘한 의사소통 패턴이 있어요.


예를 들면 어떤 걸까요?


부모가 빨간 옷과 파란 옷을 사왔어요. 아이한테 좋아하는 걸 고르라고 해서 아이는 빨간색이 좋다고 해요. 그럼 부모가 ‘파란색은 싫으니?’하고 물어봐요. 그 순간 아이는 잘못 이야기했나 싶어 눈치를 보면서 파란색을 고르고, 부모는 다시 아이에게 네 의견을 존중할 거라고, 원하는 걸 고르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이 아이는 두 번 다 뭔가 틀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이런 패턴이 수도 없이 반복되면 뭘 해도 죄책감이 들고 회의가 들 수밖에 없죠. 이런 의사소통을 집중해서 보면 그 안에는 부모의 불안이 있어요. 부모의 원가족 문제나, 부모의 부부관계 문제일 수도 있고요. 얽히고설킨 같은 관계가 있다 보니 개인의 치료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학습 장애건 우울증이건 인간관계건 원가족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나의 이해에도 도움이 되고 재발이 안 되는 좋은 효과가 있어요.


독일에서 공부했을 때의 독일 가족 상황과 한국에 와서 가족 상담을 했을 때의 한국 가족의 문제가 다르지는 않았나요?


서구세계나 우리나라나 맥이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가족은 전 세계 공통이라는 걸 느껴요. 그럼에도 문화적인 특이성으로 보자면 한국에서는 효(孝)가 굉장히 강조돼요. 그래서 부모에 대해 자기감정을 누르고 잘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효가 어떨 때는 가족의 상처를 만드는 주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거죠. 효를 내세우면 가족 안 관계가 내리사랑이 아니라 치사랑이 돼요. 어떤 세대는 오히려 부모에게 더 많이 희생하고 헌신하고 부모의 보호자 역할을 하기도 해요. 그럼 자기는 성장기에 이미 부모에게 다 줬기 때문에 그다음부터 자기가 부모가 되었을 때 너무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자기한테 잘하라는 요구를 하는 거죠. 그럼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야 하나 보다 하고 또 치사랑의 문형을 형성해요. 그래도 자기가 부모님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성적이나 윤리적으로는 아주 좋은 생각이지만, 심리적으로는 결핍이 오는 상황이에요.


‘옳고 그름보다는 심리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고 하셨어요.


패러다임이 다른 거죠. 남에게 아주 모진 행동을 하거나 피해 의식 속에서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충족되지 않은 자기 욕구가 만들어내는 행동이 있어요. 윤리적 차원에서 어떤 행동은 되고 어떤 행동은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당신의 욕구가 어떻게 결핍되었는지, 그리고 이 결핍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같이 찾아나가야 하는 거죠.


제목이 ‘우리 참 많이도 닮았다’예요. 흔히 남과는 너무 달라서 싸우고, 가족은 너무 닮아서 싸운다는 말이 있는데, 제목도 가족의 닮음을 표현하고자 했을까요?


남들이 가진 갈등도 내 모습하고 비슷하다는 의미였지만, 그런 뜻도 되겠네요. 결혼하면서 배우자의 차이가 처음에는 너무 매력적이잖아요. 이후로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할 텐데, 차이가 결혼 이후에는 갈등 요소가 되죠.


모두가 가족을 한 번씩 경험해 봤기 때문에 와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서 가족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아무리 외로운 사람이어도 가족은 있지요.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우리를 소진시킨다


책에 여러 상담 사례가 나와요.

최대한 내담자의 비밀이나 사생활이 공개되지 않는 선에서 경험을 녹여낸 거라고 보시면 돼요. 우리가 상상하는 가정이 아니라 실제 우리 사회에서 주변에 있는 가족들이 어떤 구체적인 고민거리를 가졌는지, 그 갈등의 양상은 어떤 건지 같이 공감하고 싶었어요. 그런 글을 통해서 상담을 오지 않더라도 비슷한 갈등을 겪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고요.


상담을 하면서 두 사람이 같이 오면 좋겠지만 꼭 한 명만 올 때가 있다고 하셨어요. 근본적으로 관계는 두 사람 이상의 일일 텐데, 가족 중 한 명만 상담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아쉬운 부분이지만 한계는 아니에요.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오더라도 가족 치료가 가능한 방법을 많이 개발해 냈어요. 오지 않는 사람은 상담에 오면 적나라하게 자신의 문제점이 드러날 것 같은 두려움이나 수치심이 있는가 하면, 심리 치료 영역에 관해 무지할 때도 많아요. 그럴 때는 무조건 무력으로 오라고 하지 않고, 편안하게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시작해도 된다고 말하죠. 단 가능하면 상담에 참여하는 사람은 배우자에게 반드시 알리라고 해요. 가족 몰래 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봐요. 와서 상담을 통해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변화는 분명 개인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시스템의 변화로 연결되면서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변화할 수 있어요.


부부관계의 문제는 원가족과도 연결이 깊다고 하셨어요. 원가족의 관계가 어떻게 배우자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나요?


반복 강박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원가족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비슷한 유형의 상처를 만들어내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였고 어머니가 늘 고생했다면, 그 가족의 딸은 아버지만 같지 않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 보면 똑같은 상황이 되어 있어요.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처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요인에 대해 과반응하기 때문에, 남편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어린 시절 느꼈던 불안과 공포가 다시 올라오는 거예요. 그러면 잔소리하거나, 비난하고 우울해지는 식으로 불안이 행동으로 나타나죠. 남편은 옆에서 다시 무기력한 상태가 되고요. 불행을 심하게 겪은 사람일수록 불행에 민감한 상태가 돼요. 새로운 삶에서 오는 긍정적인 요소를 인지하지 못하고 불행한 상태에 너무 심취하다 보니 조그마한 걸림돌에도 무너지면서 자기 인생이 그렇지 뭐,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상처가 반복되면서 자기 부모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고 싶다는 표현이 될 수도 있고요.


원가족의 경험은 워낙 어렸을 때의 경험이고 당사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경험이잖아요. 어렸을 때 가족 관계에서 결핍이 있었다면, 성인이 되어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세 가지 정도가 있어요. 일단은 끊임없이 긍정적인 관계를 제공해주는 누군가가 있는 경우에요. 가족이 아니더라도 선생님이나 이웃, 신앙생활이어도 좋고요. 한두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릴 때마다 부모처럼 안아주는 관계가 형성되면 원가족 경험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해요. 두 번째로는 배우자를 잘 만나면 돼요. 가족 안에서 안정된 애착을 경험한 사람이어서 다른 배우자가 흔들릴 때마다 굳건히 잡아주면 다행이죠. 세 번째로는 상담을 장기적으로 받으면서 자기 모습을 꾸준히 바라보는 방법이 있어요.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상담자를 보러 오기보다는 사실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거든요.


상담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나요?


마찬가지로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눠요. 하나는 너무 중증 환자여서 전문가의 개입이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한 경우, 두 번째는 어려움은 느끼지만 죽고 사는 문제까지는 아닌 경우. 이러한 중간 상황에서는 갈등을 풀어나가는 좋은 모델이나 발달 단계의 어려움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이 상황이 편안해지는 거죠. 이게 2차 예방이에요. 1차 예방은 갈등을 겪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공부해 보는 거예요. 스위스에서 부모가 되려는 사람에게 부모 교육을 미리 했더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이혼율이 80% 떨어졌다는 연구가 있어요.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도 그거예요. 아는 게 힘이고 미리 갈등 생활을 아는 게 마음의 건강함을 지켜가는 요인 중 하나예요.


상담을 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의 사례가 있었어요. 방어기제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방어기제란 무엇이고 왜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요?


결국 모든 이야기는 주관적인 이야기죠. 주관적인 이야기일지라도 상호주관성이라는 게 있어요. 이야기 하면 들은 사람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는 본인의 주관성에만 갇혀서 듣는 사람이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너무 사랑받는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배우자가 문제가 많아서 고통스럽다고 한다거나요.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의 특징은 마음 근육이 굉장히 유연해서 남들이 다른 부분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량이 많아요. 그러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은 남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거나 사랑해주지 않으면 자존감에 위협을 받기 시작하죠. 그러면 나를 지키기 위해 방어 기제를 만드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억압하기도 하고, 지나친 합리화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승화시키거나 부인하고, 투사하고 전이하는 여러 과정이 있어요. 이런 방어기제를 통해 나온 이야기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겹으로 싼 방어기제를 통해 반사되고 왜곡돼요.


오래된 방어 기제를 가지고 있을수록 치료가 힘들 것 같아요.


상담 전문가의 역량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상담하는 장을 아주 안전하게 만들어서 방어기제가 불필요함을 알려줘야 하는 거죠. 자기 상처 안에 부모를 향한 원망이나 화가 있어도 괜찮다는 걸 안심시켜주면 조금씩 자기감정을 직면할 수 있어요.


치료의 기준을 정하는 건 뭘까요? 어디서부터 치료가 필요한가요?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은 치료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상처가 깊은 사람들은 계속 가족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가족 관계에서 만들어진 갈등을 친구와 동료와 자녀와의 모든 상황에서 반복해요. 머리로는 이해했다고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한 거고, 그럴 때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담사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정말 안타깝죠. 통계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의 절반 정도가 심리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해요.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우리를 소진하게 만드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예를 들어 가족 치료에 대한 강의를 대학에서 하면 강의를 안 듣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왜 학습 태도가 저럴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가족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던 거였어요. 하나하나가 다 자기 이야기 같고 상처를 보고 싶지 않은데 매시간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게 힘들었던 거죠. 얼마나 아프고 힘들면 아픔을 다시 느끼게 하는 공부에 대해서도 원망을 하나 생각했어요. 상처가 많은 사람은 방어기제를 계속 만들어내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더 힘들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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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감과 거리감이 공존하는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어떤 게 있고, 이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너무 부모 옆에 있는 사람들은 불안정 애착을 보이기도 해요. 부모에게 애정을 받기는 받았는데 자신이 원하는 상태로 받은 게 아니라 부모가 주고 싶은 형태로 사랑을 준 경우죠. 받은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받은 건 많아서 떠나질 못해요. 받은 게 있기 때문에 그 달콤한 맛을 아는데, 언제 떨어질지는 몰라요. 그럼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고 늘 붙어있게 되죠. 그게 이제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자녀에게 편안한 사랑, 맞춤형 사랑을 주고 떠나가게 하는 게 좋은 관계일 거예요. 친근감과 거리감의 두 가지 요소가 동시에 있어야 하고, 너는 너, 나는 나 세포 분열이 되어야 해요. 세포 분열이 안 된 가족이 너무 많아요.


부부상담에서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부부관계에서 갈등이 생겨서 상담에 오면 대개 지기 싫어해요. 상대방이 더 많이 해줘야 할 것 같고 자기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이게 팽팽해지면 누구 하나도 긍정적인 반응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럴 때 상담자가 속상함은 다 자신에게 퍼부어도 괜찮다고 좋은 기운을 ‘대출’해주는 것만으로도 배우자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힘이 되는 거죠. 상호호혜의 원칙이 있어서 분명 긍정적인 시도를 하면 긍정적인 반응이 나와요. 모든 사람은 관계가 좋아지길 바라거든요. 한 번 따뜻하게 하고 챙겨주면서 좋은 거라는 인식이 생기면 그때부터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어요. 악순환을 멈추기도 힘든데 선순환을 만드는 건 더욱 힘들잖아요. 그럴 때 상담자는 마중물 역할을 해서 좋은 순환을 만드는 기초를 만드는 거죠.


상담자가 개입하지 못하는 실생활에서는, 배우자 관계의 악순환을 멈추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미 악순환인 부부 관계에서 긍정 행동을 하라는 건 코마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고기 먹고 기운차리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에요.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서 하는 재밌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앞으로 집에 가서 일주일 동안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행동, 배우자 모르게 상대방이 만족스러울 행동을 몰래 하라고 해요. 단, 해놓고 생색내지 않아야 해요. 본인 스스로만 적어가지고 다음 상담 때 오는 거죠. 그리고 동시에 배우자가 자신에게 어떤 긍정적인 행동을 했는지 잘 찾아오라고 숙제를 내줘요. 그전에는 그냥 지나갔던 행동들이 숙제로 찾게 되면 긍정적인 행동을 더 많이 찾게 돼요. 악순환 상태일 때는 부정 행동만 보이던 것이, 긍정적인 걸 찾아오라고 하면 관점이 바뀌는 거죠.


법원에서 조정위원으로 일하고 계세요. 조정위원은 어떤 역할인가요?


이혼 소송 판결을 내리기 전 우리나라는 조정 전치주의라고 해서 판결 전에 조정을 먼저 해요. 두 사람이 합의할 만한 해결책을 찾을 시도를 하는 거죠. 그 이후에도 안되면 제삼자인 판사가 결정을 내려주고요. 이혼은 민사도 아니고 형사도 아니에요.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으니 양쪽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이혼이 안 될 수 있다면 안 되게 하고, 되더라도 자녀가 있으면 모두가 조화로운 해결책을 만드는 역할을 조정위원이 돕고 있어요. 조정안이 나오면 법률적인 효력이 있어서 실제로 재판 절차를 끝낼 수도 있고요.


법률 자문위원으로 있는 자리는 상담과 분위기가 다를 것 같아요. 이혼을 결심하고 오신 분들이잖아요.


하지만 결국 심리예요. 법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판사들도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재산을 나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덜 상처받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최상의 판결이라고 이야기하세요.


흔히 정상가족이라고 불리는 2인 이성애 부모와 자녀의 형태가 아닌 한부모가족이나 조손 가족, 다른 형태의 가족은 어떻게 애착을 형성해야 할까요?


현대사회에서는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나누는 게 무의미해졌어요. 가족구조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정 구조의 특징을 이해하면서 모든 구성원이 심리적인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엄마와 아이만 있는 한부모 가정에서 애착이라는 끈을 가지고 아이를 밀고 당기면 좋지 않아요. 아버지가 없더라도 독립된 관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섬세하게 연결되어야 하죠.


가족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모두 합해서,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요?


친근감과 거리감이 공존하는 관계요. 자기 자식일지라도 남이라는 걸 인정하고 분명히 분열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잘 연결되어야 해요.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람의 마음을 느끼는 연결성과,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분리가 동시에 있어야 좋은 관계예요.


아무리 해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싫어하는 사람과 양호한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왜 그 사람이 싫은가 하는 질문을 자기 마음 안에서 찾아보는 게 좋아요. 그 사람과 상관없는 부분들이 나의 투사로 인해 건드려지는 부분도 있을 테고, 실제적으로 그 사람이 자신을 좌절시키거나 위협할 수도 있어요. 첫 번째라면 상처 치유를 통해 의연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고, 두 번째라면 ‘아이 메시지’로 나는 당신이 그렇게 행동할 때 어떤 감정을 느낀다고 말해야 해요.


‘아이 메시지’요?


“당신은 이기적이고 못됐어.”라고 비난하는 ‘유 메시지’ 대신, “나는 당신이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기분이 상했어요.”라고 말하는 거죠. 관계는 다 좋을 수가 없어요. 혼자서도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는데요. 콜라를 마실까 말까, 늦잠을 잘까 말까. 하물며 둘이 있으면 얼마나 갈등이 많겠어요. 다만 갈등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내가 유발한 것들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거죠.


‘립 게빈넨’이라는 독일어 표현을 좋아하신다고 썼어요. ‘차츰차츰 좋아하게 되다’라고 번역해주셨는데, 마지막으로 삶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법과 ‘립 게빈넨’을 연관짓는다면요?


‘립 게빈넨’은 사랑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사랑을 취한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들어 있어요. 우리 눈앞의 찻잔도 너무 좋아하면 어느 순간 굉장히 특별한 의미를 가지잖아요. 물체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면 그가 특별한 의미가 되고요. 이런 과정이 가족 안에서도 필요할 것 같아요.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내 배우자와 자녀의 좋은 점을 찾아서 내 안에서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참 많이도 닮았다이남옥 저 | 북하우스
지치고 힘든 영혼들이 상담실의 문을 열고 아득한 아픔 속으로 걸어 들어가 끝내 상처를 딛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의 본질을 이해하고, 다시 건강한 삶으로 회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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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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