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 뭔지 복습해 봅시다
예전에는 1) 어떤 물질에 의존성이 생겨 자꾸 사용하게 되고, 2) 내성이 생겨 같은 효과를 얻으려면 점점 많은 양을 사용해야 하고, 3) 끊으려고 하면 심한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면 중독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중독이란 도파민과 보상중추를 중심으로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생각하게 됐지요. 중독에 대한 개념이 변하자 크게 두 가지가 달라집니다.
첫째, 옛날에는 중독을 도덕적 문제나 의지가 약해서 겪는 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며, 질병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예전에는 물질만 중독을 일으킨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특정 행동이나 경험도 뇌에서 똑같은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제는 행동도 중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2013년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는 마침내 행동을 중독으로 인정합니다. 바로 ‘도박중독’입니다. 올해 6월에는 WHO에서 게임중독을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으로 규정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사용은 아직 주목 대상에 올라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 게임 셧다운 제도를 시행 중이지요.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게임을 중독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도 논란이 치열합니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정상적인 행동을 질병으로 규정하여 불필요하게 사회적 낙인을 찍게 된다는 점을 염려합니다. 하지만 인터넷 게임은 중독으로 볼 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WHO에서 질병으로 규정한다는 건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도파민과 보상중추가 관여한다는 증거가 충분히 쌓였다는 뜻이지요. 게임에 빠져 학교생활이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망가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봅니다. 게임방에서 며칠씩 먹지도, 자지도 않고 게임을 하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가끔 보도되지요.
게임이 중독으로 인정된다면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겁니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게임에 중독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깊게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19세가 되었으니 셧다운에 신경쓰지 않고 실컷 게임을 즐기자”라고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청소년의 뇌는 항상 공사 중이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지요? 19세면 사회적으로는 청소년이 아니지만, 뇌는 25세까지 청소년으로 봐야 합니다. 청소년은 성인보다 중독되기가 훨씬 쉽습니다. 술이나 담배는 어른보다 훨씬 적은 양에도 쉽게 중독됩니다. 마약, 도박, 게임, 포르노 등 모든 중독이 마찬가지입니다. 게임에도 당연히 쉽게 중독될 수 있고 의외로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인지적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 문제는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중독이란 말에 대해서는 정색을 하고 반대하는 분이 많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관계맺기 방식으로 봐야 한다는 거지요. 청소년들이 하루 종일 학교에서 학원으로 옮겨 다니는 상황에서 스마트폰을 통하지 않고서는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들 뺏을 수 있겠느냐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실 조그만 스마트폰 속에는 전화, 카메라, 사전, 수첩, 계산기, 손전등 등 수많은 유용한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스마트폰으로 결합되면서 엄청난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제 폰 안에는 책이 3천 권 정도 들어 있습니다. 도서관을 세계 어디든 갖고 다니는 셈입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난생 처음 가보는 곳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매일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고, 커피숍에 앉아 글을 쓰고, 식료품을 주문합니다. 그러니 스마트폰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저보다 훨씬 다양하게 활용하는 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을 뺏는다는 건 감옥에 가두는 것과 비슷한 고통을 줄 겁니다.
하지만 불안한 점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청소년의 뇌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의학적 증거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그렇지 않아도 타인의 감정이나 형편을 헤아리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우리 뇌 속에는 거울뉴런이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나 타인의 감정을 관찰하고 해석하여 공감과 동정심을 일으키는 데 관여한다고 생각되는데 역시 청소년기에 큰 변화를 겪으며 완성됩니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청소년은 이러한 ‘인지적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감 능력이야말로 사회에서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측면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걱정스럽지요.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까톡!)을 듣고 확인하거나, SNS에 ‘좋아요’ 개수를 확인하고 싶어 조바심을 낼 때 도파민과 보상중추가 작용한다는 증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에도 중독될 수 있을까요?
영국의 작가 요한 하리(Johann Hari)는 중독에 관한 감동적인 테드 강연 중에 이렇게 묻습니다. 할머니들이 대퇴골 골절로 수술을 받으면 며칠간 통증을 줄이기 위해 모르핀을 씁니다. 말이 약이지 사실은 헤로인과 똑같은 마약입니다. 그러면 할머니들은 퇴원한 후에 모두 마약 중독자가 되느냐? 그렇지 않죠. 마약 중독에 관해 알려진 많은 사실은 쥐 실험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쥐 한 마리를 우리에 가두고 한쪽에는 그냥 물을, 다른 쪽에는 마약 섞은 물을 놓아두면 항상 마약을 먹는다는 거죠. 그러나 이후 ‘쥐 공원(rat park)’이라는 실험이 행해집니다. 넓고 쾌적한 우리에 공이나 터널 등 다양한 놀이거리를 갖추고, 먹을 것도 많이 넣어주고, 따뜻한 잠자리도 만들어준 후 여러 마리의 쥐를 함께 넣어 준 겁니다. 그랬더니 마약 섞은 물을 먹는 쥐가 거의 없더라는 거지요.
할머니들이 병원에서 마약을 투여받아도 중독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머니들은 가족을 만나고, 퇴원하기를 기다리던 친구들과 쿠키와 커피를 앞에 놓고 수다를 떨고, 산책을 다녔던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보람 있는 일이 있고, 서로 다정한 눈길과 대화를 나눌 친구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강력한 마약을 줘도 잘 중독되지 않습니다.
움직일 때, 잘 때만이라도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 놓자
이런 교훈을 스마트폰에 대입해보면 안심과 우려가 동시에 생깁니다. 안심이란 스마트폰 좀 쓴다고 중독되지는 않겠구나 하는 마음이지요. 우려는 이겁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느라 사랑하는 가족, 소중한 친구,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과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것도 연결 방식입니다. 아예 고립되는 것보다 낫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카톡을 날리는 식의 연결이 아니라, 한 마디라도 서로 눈을 바라보며 다정한 마음을 실어 나누는 대화입니다. 먹을 것이 아무리 풍족해도 우리 몸이 여전히 칼로리를 지방으로 바꿔 저장하듯, 맘모스를 향해 돌진할 일이 없어도 청소년의 뇌는 여전히 짜릿한 위험을 추구하듯, 아직 우리는 디지털로 연결될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아요.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가 정작 소중한 사람들 사이에 단절을 가져왔다는 역설을 생각하며, 스마트폰에 관해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1. 움직일 때는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지 마세요. 지하철을 환승하기 위해 걸어가는 계단에서, 사람이 붐비는 거리에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변에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에 무서운 병이 많지만 사고만큼 무서운 건 없습니다.
2.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밥을 먹을 때는 스마트폰을 내려 놓으세요. 잠깐씩이라도 디지털 휴식을 가지면 스마트폰에 의해 도파민 회로가 활성화되고 거울 뉴런이 억제되는 효과가 크게 줄어든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따뜻한 눈길, 말로 나누는 대화, 사소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3. 잘 때는 스마트폰을 다른 곳에 두거나 꺼 놓으세요. 잠은 신체와 정신 건강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청소년에게는 특히 그렇습니다.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