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궁리 중이라 말했더니 주변 사람들은 양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사람은 기막힌 생각이라며 물개박수를 치며 열렬히 환영했고, 어떤 사람은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권했다.
서점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꿈의 공간일 수 있다.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가득한 그 곳, 정말로 근사하다. 서점의 낭만성을 충동질하는 영화도 많다. 영화 <노팅힐(Notting Hill)>에선 서점 주인이 우연히 들린 톱스타 영화배우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비포 선셋(Before Sunset)>에 등장하는 서점은 더 낭만적이다. 전편인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에서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빈에서 하루 밤을 같이 보낸 주인공 남녀는 기약도 없이 헤어졌다. 그들은 헤밍웨이도 단골손님이었다는 그 유명한 파리의 서점 <세익스피어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에서 9년 만에 다시 만났고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고객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서점이라는 무대의 후면 실상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라 했다. <노팅힐> 속 서점 주인은 근사한 영국식 액센트를 구사하는 휴 그랜트일 수 있지만, 현실의 서점 주인은 휴 그랜트를 닮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1년 동안 책을 전혀 읽지 않은 성인이 40%에 달하고, 하루 평균 3천면의 자영업자가 새로 등장하지만 동시에 2천명이 폐업을 하는 한국이라면 더더욱.
‘새로운 가능성’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가게’ ‘취향을 설계하는 곳’ 등등을 들먹이며 독립서점 붐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니은서점’은 희극의 무대가 되었다. ‘유행’과 ‘붐’을 타고 우후죽순격으로 생겼던 작은 서점들이 하나 둘 정리되기 시작했다는 그래서 심지어 창업기가 아니라 폐업기가 책으로 출간되는 팩트 안에서 아직 등장도 하지 않은 니은서점은 예견된 비극의 무대나 다를 바 없었다. 책방에서 비극을 감지하는 사람들은 작은 서점에 불리한 도서 공급율, 상존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험, 책 팔아서는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와 낮은 수익률, 책을 읽지 않고 사진으로 남기겠다고 사진찍기에 바쁜 인스타그래머와의 신경전과 같은 실감나는 콜드 팩트를 줄줄이 늘어 놓았다.
니은서점을 궁리하는 동안 하루는 희극의 무대에서 마치 미래의 ‘치타야’의 주인공이라도 된 설레발에 춤을 추었고, 그 다음 날은 서점을 찾는 손님이 아무도 없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 대성통곡하는 악몽도 겪었다. 서점이 희극이라는 사람의 말도 맞다. 비극이라는 사람의 말도 맞다. 단지 그들은 좀 과장하고 있을 뿐이다. 사우나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 청량감이라도 생기지만, 희극의 온탕에 한 발을 비극의 냉탕에 다른 발을 담그고 있노라니 점점 가랑이가 아팠다. 그렇지만 중심을 잡아야 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랑이가 벌어졌을 때 『논어』 를 집어 들었다. 공자는 네 가지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거 없이 미리 억측하지 않았고, 내가 절대로 옳다고 하지 않았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자기부터 앞세우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억측하지 않기로 했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차근차근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서점의 콘셉트는 인문사회예술분야 전문서점으로 잡았다. 서점 위치가 문제다. 통행인이 많은 핫 플레이스에 터를 잡으면 비극이 될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핫 플레이스의 높은 임대료는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의 수익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니은서점>은 서울 변두리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억측하지 않기로 했다. 동네서점이라고 전문서점이면 안될 이유라도 있나? 전문서점은 핫 플레이스에서 영업하면 흥하고, 동네에서 하면 망하는 법칙이라도 있나?
내친김에 <니은서점>이 인문사회예술전문 ‘동네서점’이라고 설명하는 입간판을 입구에 세웠다. 그 용감한 자기 설명을 내 걸었던 날, 『논어』 에서 니은서점을 응원하는 듯한 구절을 또 발견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한다. 그래 이제 즐겨보자. 와이 낫?
노명우(사회학자)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인생극장』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