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출처_ 충치예방연구회
중요한 건 음식의 산성이 아니다
어린이이게 가장 흔한 만성질환이 뭘까요? 보통 소아당뇨나 천식을 떠올립니다.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먹고 살기 어려운 나라에서는 영양부족, 살 만한 나라에서는 과체중과 비만이 당뇨나 천식을 압도합니다. 하지만 1위의 영예(?)는 단연 “충치”에게 돌아갑니다. 미국의 경우 2-5세 어린이의 23%, 6-8세 어린이의 56%가 충치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심각하다는 생각보다는 피식 웃게 됩니다. 넌센스 퀴즈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충치로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문제에 처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앓이로 한번이라도 고생해본 적이 있다면 건강한 치아의 소중함을 잘 알 것입니다. 오죽하면 “치아 건강이 오복(五福) 중 하나”란 말이 나올까요.
충치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충치란 예방 가능한 세균 감염성 질환”이라는 겁니다. 치아의 겉은 아주 법랑질(에나멜)이란 물질로 되어 있는데 주성분은 칼슘과 인입니다. 뼈와 같지요. 법랑질은 아주 단단하지만 산(acid)에 약합니다. pH 5.5 아래면 녹기 시작합니다. 산? 염산, 황산 같은 거? 누가 산을 마시나? 그렇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어린이들이 즐겨 마시는 주스나 청량음료는 모두 상당히 산성이 강합니다. 예를 들면 사과 주스는 4.0, 오렌지 주스는 3.5, 사이다는 3.0, 콜라는 2.5 정도입니다. 외우기 쉽게 근사치를 적었습니다. pH가 낮을수록 산성이 강한 건 아시죠? 주스나 청량음료를 되도록 피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네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음식의 산성이 아닙니다. 산성으로만 따지면 토마토도 4.5, 귤은 4.0 정도 됩니다. 토마토나 귤을 먹는다고 이가 썩지는 않잖아요. 음식은 꿀꺽 삼키면 입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분간은 입안이 산성 상태가 되지만 그건 24시간 입속으로 분비되는 침이 해결합니다. 침은 입속을 중성으로 되돌릴 뿐 아니라, 산성으로 인해 치아에서 녹아 나간 법랑질을 잽싸게 보충합니다. 사실 법랑질은 하루 종일 녹아나가고 보충되기를 반복합니다. 전체적으로 녹아나가는 양이 많으면 이가 나빠지고, 보충되는 양이 충분하다면 건강한 이가 유지되는 거죠.
그렇다면 하루 종일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이가 썩을까요? 누구나 알 듯 정말 중요한 건 설탕입니다. “단 걸 먹고 나서 치카치카 안 하고 자면 밤새 세균맨이 이빨을 파 먹는단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잖아요. 맞아요. 우리 입 속에는 세균맨이 삽니다. 충치균은 설탕을 아주 좋아합니다. 설탕이 들어오면 옳다구나하고 당을 분해시켜 얇은 막을 만들고 그 속에서 번식합니다. 이 과정에서 산이 만들어집니다. 이 얇은 막이 쌓여 두꺼워지면 소위 ‘프라그’라는 게 생기지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봅시다. “충치란 예방 가능한 세균 감염성 질환”이라고 했지요? 세균성 질환이지만, 항생제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항생물질이 프라그를 파고 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바이오필름(biofilm)이라 하여 의학에서 핫한 분야 중 하나입니다. 설명이 기니까 패스!)하지만 예방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설탕을 피하고, 프라그가 생기기 전에 물로 입안을 헹구고, 하루에 두 번 규칙적으로 이를 닦고, 이가 녹아나가지 않게 보호하고, 정기적으로 치과 검진을 받는 것이 예방법입니다. 이런 기초 지식을 갖고 연령별로 치아를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 알아봅시다.
그림 출처_ 충치예방연구회
월령별 치아 관리 노하우
출생 - 11개월까지
이때 중요한 건 아이 입속에 충치균이 생기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겁니다. 갓난아기의 입속에는 충치균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옮는 걸까요? 예, 부모에게서 옮습니다. 따라서 엄마나 아빠가 이가 좋지 않다면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치과 검진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를 잘 닦고, 단 것을 피하는 등 구강위생을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자일리톨 검이나 사탕을 규칙적으로 이용하여 입속의 충치균을 줄이는 방법도 좋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식기나 수저, 컵, 칫솔 등을 같이 쓰지 않도록 합니다. 음식을 씹어서 아기에게 먹이거나, 아기가 빠는 젖꼭지에 어른의 침이 묻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젖병을 쓴다면 젖꼭지를 부드러운 비누와 물로 잘 닦아야 합니다. 아기에게 입을 맞추지 말라는 지침은 좀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른의 침이 아기 입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젖니가 나기 시작하면 당분을 먹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설탕이든 천연당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입맛은 어릴 때 결정됩니다. 이 시기에 단 것이나 짠 것이 맛들이면 평생 그런 음식을 좋아하게 됩니다. 고무 젖꼭지에 단 것을 묻히는 방법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유나 분유 속에도 당분이 있으므로 먹일 때는 꼭 안고 먹이고, 젖이나 젖병을 문 채 잠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정식으로 연구되지는 않았지만 젖이나 분유를 먹은 후 소량의 물을 먹이는 것은 좋은 전략입니다. 젖니를 부드러운 천이나 유아용 칫솔에 물을 묻혀 닦는 것도 좋습니다.
1세 이후
대개 이때 또는 조금 더 일찍 양치를 시작하게 되지요. 불소가 중요합니다. 불소는 치아가 녹아 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법랑질을 보충하며, 충치균의 번식을 억제합니다. 불소가 들어간 치약을 쓰거나, 불소를 정기적으로(6개월마다) 도포하거나, 아예 수돗물에 소량을 섞어 공급하는 방법을 씁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공중보건 차원에서 수돗물 불소화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불소가 대단히 유해한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로는 안전합니다. 수돗물 불소화를 시행한 국가나 지역에서는 강력한 충치 예방 효과가 나타났고, 보건상 문제가 된 경우는 없습니다.
다만 불소가 포함된 치약을 삼키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불소증(fluorosis)이라고 하여 치아가 하얗게 변색되거나 심하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치약을 삼키는 일이 없지만 어린이들은 삼키기도 하기 때문에 2돌까지는 치약을 쓰지 말라고 권하는 나라도 있고, 소량을 쓰라고 권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현재 미국 소아과학회의 지침은 이렇습니다.
3세 미만
불소가 포함된 치약을 써서 하루 두 번(아침식사 후, 취침 전) 이를 닦되, 치약의 양은 쌀알 크기를 넘지 않는다. 이를 닦고 난 후 치약을 뱉거나, 입을 물로 헹구지 않는다.
3세 이상
불소가 포함된 치약을 써서 하루 두 번(아침식사 후, 취침 전) 이를 닦되, 치약의 양은 작은 강낭콩 크기를 넘지 않는다. 이를 닦고 난 후 치약을 뱉지만, 입을 물로 헹구지는 않는다.
어린이들은 보통 7-8세가 되어야 이를 제대로 닦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때까지는 어른이 돌봐주어야 합니다. 함께 이를 닦는 것이 가장 좋고,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이를 닦아 주면서 올바른 칫솔 사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말씀 드릴게요. 이를 닦을 때 힘을 주어 옆으로 북북 문질러 닦는 것은 매우 나쁜 버릇입니다. 치아의 씹는 면은 그렇게 닦아도 좋지만 앞이나 뒷면을 그렇게 닦으면 잇몸이 손상되어 결국 문제가 생깁니다. 이는 부드러운 칫솔을 써서 잇몸에서 이 끝 쪽으로 쓸어내듯 닦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일주일 정도면 익숙해집니다. 이 닦는 법만 바꿔도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닦는 법을 잘 설명한 동영상이 있어 링크합니다.
http://www.dentia.org/03_sub_2.html?ckattempt=1 (충치예방연구회)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