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떠난 지 4년. 지금도 매일 보고 싶은 첫째 알롱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다 할 수가 없다. 그저 남아 있는 둘째를 매일 조금 더 사랑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노견과 함께 산다는 건 나의 시간을 강아지에게 나눠주고 싶어지는 것. “제제야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주렴. 나는 아직 너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어.”
오늘도 제제를 안고 헐레벌떡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요 며칠 제제가 또 밥을 먹지 않아 눈에 띄게 말라가는 게 걱정이 돼서다. 비슷한 병을 갖고 있는 다른 강아지들이 다 그렇겠지만 벌써 몇 년째 심장병을 앓고 있는 제제는 폐나 신장 등 합병증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 식단 관리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지난 3월에 종합검진을 받았을 때만 해도 큰 이상이 없어 한시름 놓았던 것도 잠시, 불과 2개월 후 신장 수치가 올라가 하루 이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상태가 이처럼 갑작스럽게 안 좋아지기도 하고, 조금 나아졌다가 다시 안 좋아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제제의 나이는 이제 열네 살. 1,2년 전까지만 해도 ‘노견’이라는 말은 아직 먼 얘기라고 여겼는데, 어느새 나의 작고 복슬복슬한 아이도 노견 대열에 합류한 나이가 된 것이다.
2004년 6월 12일, 첫째 알롱이가 세 마리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 중 유일한 남자아이에 체구가 가장 작았던 제제를 함께 키우기로 한 후 제제는 한 순간도 우리 가족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고, 2014년에 첫째 알롱이가 강아지별로 돌아가기 전까지 혼자 있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알롱이가 보고 싶은 만큼 홀로 남은 제제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지고 각별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알롱이가 떠난 후 제제는 전과 비교해 확실히 활동량도 줄고 일상생활 전반에서 눈에 띄게 활력이 사라져갔다. 알롱이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의식하지 못하던 사이 제제도 어느 덧 열 살을 넘긴 나이가 된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TV 리모콘보다 작았던 제제. 문 모서리는 물론이고, 구두굽, 두루마리 휴지, 안경까지 씹어놓는 통에 제제가 접근 가능한 위치에 있는 물건들은 남아나는 게 없을 정도로 말썽꾸러기였던 게 엊그제 일 같은데, 이제는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을 이불 위에 누워 잠을 자는 걸로 보내는 게 전부인 일상을 산다. 알롱이가 살아 있을 때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후회가 남아, 주말이면 제제와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요즘, 가끔은 한강으로, 가끔은 새로운 가게로 동네 산책을 나가지만, 최근에는 오래 걷는 것 자체가 힘에 겨운지 잘 걸으려고도 하지 않는 제제를 볼 때면 측은함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안고 걸리면서 근처 단골 카페에 가서 창밖으로 오가는 사람들 모습도 보고, 새로운 이들과 인사도 하고, 한두 시간 쉬다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제제와 나 사이에 소중한 추억 하나가 또 하나 쌓였다고 믿고 싶다.
제제야, 우리는 과연 몇 번의 주말을 더 함께할 수 있을까? 꽃이 핀 길을 걷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고, 강변 운동장에서 공을 튕기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발랄하고 호기심 많은 강아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창밖을 구경하거나 세상 편한 자세로 잠을 자는 그 시간을 아직은 더 많이 함께하고 싶은데…… 매일 잠들기 전에 네게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달라고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니?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해진 삶의 길이가 없다고는 해도, 주변에 보면 열여덟, 열아홉에도 건강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볼 수 있잖아. 너는 아직 열네 살이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살아줘. 아직은 내가 너까지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임윤정(아트북스 편집자)
책이란 그저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쓰게 됐고, 우연히 서점을 해본 적도 있고,지금은 읽고 쓰고 엮는 일을 하고 있다. 본업은 멍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