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한때 내게 외로움은 낯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다. 당신을 알기 전의 나는 이미 모든 것을 혼자서도 잘하던 사람이었는데, 당신을 만나는 동안 나는 나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무리 누구와 함께라고 해도, 결국 나는 나일 뿐이다. 누군가와 함께여야만 행복하다면 나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타인이 나의 길을 정할 수 없고, 나의 마음을 정할 수는 없다. 나 역시 타인을 바꿀 수 없다. 사랑 하나로 사람의 외로움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사랑 때문에 더욱 외롭기도 했으니까.
글 쓰는 일러스트레이터, 봉현의 책이죠. 『베개는 필요 없어, 네가 있으니까』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 아님을, 누군가 곁에 있어도 외로움을 견뎌내는 건 나의 몫임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외롭다는 이유로 간절하지도 않은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해도 외롭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일은 없겠죠.
<인터뷰 - 봉현 일러스트레이터 편>
봉현 :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얘기가 뭔지 생각했을 때, 그냥 자연스럽게 연애 얘기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연애 얘기를 쓰고 있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솔직하고 내숭이 없기 때문에 친구들이 이 책을 읽고 ‘김봉현 내숭 좀 떨었다’ 그러더라고요(웃음).
김하나 : 아, 그래요(웃음)?
봉현: 아시잖아요, (키스하기 전에) 서로 얘기를 하다가 정적이 오는 순간이 있어요.
김하나 : 그렇죠. 올 것이 오는 거죠(웃음).
봉현 : ‘올 것이 왔나?’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키스를 하더라고요.
김하나 : 그 전에는 아무 말이나 하잖아요(웃음).
봉현 : 맞아요(웃음).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죠.
김하나 :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이 끊기는 게 중요한 거기 때문에(웃음).
김하나 : 뭔가 불구덩이 같은 위험한 연애를 해오셨나요?
봉현 : 네(웃음).
김하나 : 아, 진짜요(웃음)?
김하나 : 여행과 사람이 닿아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렇죠?
봉현 : 네.
김하나 : 여행과 사랑이 닮아있다고 생각하세요?
봉현 : 네, 일단 저는 닮아있다는 느낌보다는 다른 지점을 많이 생각하는 편인데요. 일단 여행이랑 사랑은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인데...
김하나 : 사랑이 8, 그림이 0.8을 차지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여행이 1.2일까요?
봉현 : (웃음) 1 정도 될 것 같은데, 0.2는 빼놓을까요?
봉현 : 저의 가장 큰 매력은 여행할 때랑 사랑할 때 티가 난다는 거예요. 다른 지인들도 그걸 잘 알고요. 일단 제 스스로가 잘 알아요. 여행할 때와 사랑할 때 제가 가장 멋있고 예쁘고 행복해한다는 걸. 그걸 제가 잘 알기 때문에 여행이랑 사랑이 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죠.
김하나 : 이쯤에서 ‘스피드 퀴즈’를 시작하겠습니다. 생각을 오래 하지 마시고 바로 대답하시면 됩니다.
봉현 : 네.
김하나 :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전 남친이 있다.
봉현 : YES
김하나 :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나에 대해 더 몰랐을 것 같다.
봉현 : YES
김하나 : 나와 똑 닮은 남자와는 연애하기 싫다.
봉현 : YES
김하나 : 친구가 고구마 연애를 하고 있다. ‘그 사람은 아닌 것 같아’라는 말이 입안에 맴돈다. 그럴 때 나는? 1번,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2번, 아무 말 없이 그냥 지켜본다.
봉현 :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김하나 : 물건을 살 때 뽑기 운이 좋은 편이다.
봉현 : YES
김하나 :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는 것보다 취미로 남겨두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봉현 : NO.
김하나 : 책상에 앉기 전에 꼭 하는 일이 있다.
봉현 : YES
김하나 : 사람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봉현 : NO
김하나 : 그림을 그릴 때 징크스가 있다.
봉현 : NO
김하나 : 사랑은 나를 약하게 만든다.
봉현 : YES
김하나 : 지금 내 침대에는 두 개의 베개가 있다.
봉현 : YES
김하나 : 연애 상대를 고를 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 세 가지 있다.
봉현 : YES
김하나 :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전 남친이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의미에서, 또는 어떤 이유로 그럴까요?
봉현 : 아마 모를 거예요, 제가 저런 마음이었다는 것을. 세 명 다 모를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그 사람들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라든가, 헤어지고 나서 혼자 했던 고민들, 그때도 여전히 그 사람을 그리워했었고 소중하게 여겼던 것, 그런 것들은 서랍 속에 숨겨두고 보내지 못한 편지 같은 느낌인 거죠.
김하나 :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내는 선들이 있잖아요. 어떤 동작이나 각도 같은 것들이요. 그런 것들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부분들을 포착해내신 것 같아요. 그리고 아주 어른스럽게 그리셨잖아요.
봉현 : 처음에는 (표지가) 두 연인이 안고 있는 그림이었는데, 긴 팔 옷을 입고 꼭 껴안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그게 애틋한 그림이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출판사) 대표님이 이산가족 상봉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웃음). 연인 같지 않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짧은 머리잖아요. 연인의 느낌이 덜 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표지를 다시 더 애틋하게 그려보자고 했어요. ‘그럼 키스를 시킬까요?’ 하면서 그렸는데 ‘작가님, 약간 벗길까요?’ 하시면서, 편집자님이 ‘어깨끈을 살짝...’(웃음) 그래서 ‘아, 내릴까요?’ 하고 어깨끈을 살짝 내리고 조금 더 껴안는 느낌으로, 섹슈얼한 느낌을 더 살려서 애틋한 느낌으로 그렸어요.
봉현 : 처음으로 이렇게 후련하게 이야기를 해보네요.
김하나 : 속편에 또 나오고 싶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봉현 : 그때는 포장된 책으로(웃음)...
김하나 : 좋습니다(웃음)! 오늘 고맙습니다.
봉현 : 네, 감사합니다!
김하나 : 오늘의 만남은 이렇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연애가 8, 그림은 0.8’. ‘키스 전 아무말 대잔치’. 그리고 ‘어깨끈 살짝’. 지금까지 <김하나의 측면돌파>의 김하나였습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2주 후에 다시 만나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43
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