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 소설엔 뭔가 이유가 있다. ‘핀란드 유머의 제왕’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작가 투오마스 퀴뢰가 새 소설로 한국을 찾았다. 이번 신작의 배경은 한국과 평창 동계올림픽. 구상과 집필을 위해 2017년 직접 한국에 방문까지 했으니, 소설에서 묘사되는 장소와 인물들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유머러스한 풍자소설로 읽히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의 성찰이 깃든 여행 에세이로도 읽히는 이 특이한 소설에 대해서 작가에게 물었다.
인구 500만인 핀란드에서 ‘그럼프’ 시리즈가 50만 부 넘게 판매되었다니 놀랍습니다. 그럼프 캐릭터가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럼프는 고집과 따뜻함과 지혜의 조합입니다. 독자들은 그럼프에게서 자기 할아버지, 삼촌, 이모의 모습을 보지요. 아주 솔직한 이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그럼프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태어나서 돈이든 음식이든 말이든 아끼고 보존해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좋았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지요. 그래서 무뚝뚝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세상을 사는 지혜와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통해 독자들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할 수 있는 작가여서 저는 행복합니다.
그럼프 캐릭터가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우리는 우리의 배경과 역사와 뿌리를 알아야 현재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남녀 문제로 힘들어 하고 육아도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또 매년 새 차로 바꾸지 못해서 항상 불평이지요. 그럼프는 독자들에게 100년 전의 핀란드나 70년 전의 한국이 어땠는지를 상기시켜줍니다. 유아사망률은 높고, 가난과 배고픔에 늘 허덕이고, 평범한 사람에게 자동차가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지요. 그럼프는 전쟁과 그에 따른 공포, 부족과 불안을 기억하는 세대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발전 시기도 기억하고 있지요. 그럼프의 메시지는 옛날이 더 나았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예전보다 얼마나 더 좋은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균형 감각이 없다면 이전 세대들의 희생은 헛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살에 태권도를 배우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하셨는데요, 한국과 핀란드의 문화를 비교하신다면?
한국은 무언가 아주 오래된 것과 완전히 새로운 것이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술과 경제는 빨리 발전했지만 그 밑에는 느림의 지혜와 공동체 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아주 오래된 것들이 빠른 기술과 경제 발전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핀란드에서도 익숙한 현상인데, 바로 이 책이 다루는 핵심 내용이지요.
한국인들은 끈질기고 부지런하고 일도 많이 합니다. 이는 핀란드인들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더 이상 자아를 실현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 높이 평가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모습, 그리고 약간 무표정한 겉모습 속에 따뜻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 나라의 사람과 문화는 서로 닮았습니다. 한 98,000년 전 우리의 조상은 같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핀란드 대사관 직원이자 이제는 한국 TV에까지 출연한 페트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핀란드 사회의 장점이 한국에 도입되면 좋겠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습니다. 우선 더 편안한 교통 환경, 억지로 하지 않아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 학생 중심적이고 대학교육까지 무상인 제도 등이죠. 한국의 음식은 정말 훌륭합니다. 다행히 헬싱키 최고의 한국 식당이 저희 집에서 불과 150미터 거리에 있어서, 김치와 불고기가 생각나면 바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한국에서 YOLO(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개념을 처음 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의 해석을 따르면, 한 번 사는 인생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소유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여행, BMW, 돈, 큰 집 등. 그럼프도 인간은 한 번만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해석은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잠시 동안 하나의 똑같은 지구 안에서 공간과 시간과 자원을 나누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해서도 받아서도 안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보다는 서로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서로의 삶을 더 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 더 견딜 만하게 만들기 위해서죠. 그것은 사회주의도 기독교도 거래도 아닌 단순한 교환입니다.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줘야 나중에 자기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탐욕과 이기주의와 어리석음이 그럼프를 아주 화나게 만듭니다.
책 속에선 트럼프와 김정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그럼프 노인이 애를 쓰는 것으로 나옵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정치나 외교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세상에는 만화 캐릭터를 닮은 남자들이 대통령과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국가 정상들의 임무는 스스로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핀란드는 늘 동쪽의 이웃 나라(러시아)를 너무 짜증나게 하지도 않고 동시에 너무 움츠러들지도 않으면서 외교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체스 게임입니다. 아니면 아이스하키이거나.
한국의 김연아 선수가 책에 깜짝 등장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즐기시는 스포츠가 있으신지요?
저는 핀란드 사람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동계스포츠를 많이 봤습니다. 특히 스키점프, 아이스하키, 노르딕 스키, 피겨스케이팅을 많이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테니스를 치며 겨울에 눈이 충분히 쌓이면 노르딕 스키도 즐기지요.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팅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는데 그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녀의 훌륭한 실력, 용기와 표현력에 감탄했습니다. 또 지난 소치 올림픽에서 실력이 더 못한 러시아 선수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김연아 선수를 이겼던 스캔들도 기억납니다. 이런 게임은 러시아의 작은 이웃 국가인 핀란드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올림픽에 있어서 나의 식욕은 무한합니다. 거의 모든 종목을 보지요. 한국을 다녀온 이후로 한국 선수들이 잘하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한국과 북한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흥미롭고 희한한 현상입니다.
당신의 소설에선 항상 비장한 유머가 느껴집니다. 다음 책의 주제는 무엇인지요?
유머는 보는 관점에 달려 있습니다.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비극을 쓸 수도 있고 코미디를 쓸 수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희비극 또는 비희극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저는 주위를 둘러싼 세상, 관찰, 내가 듣고 읽고 보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관찰이나 듣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기에 사실상 저는 계속 일을 하는 셈입니다.
다음 책의 주제는 ‘옛날에는 모든 것이 더 좋았다’입니다. 이것은 나름 그럼프의 기본 주장이며, 이번에는 그것을 더 정확한 테마와 주제들을 통해 훨씬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옛날 운동선수들이 요즘의 선수들보다 더 뛰어났는지, 예전 유머가 더 재미있었는지, 옛날 음식이 더 맛있었는지 등과 같은 것 말입니다.
-
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투오마스 퀴뢰 저/따루 살미넨 역 | 세종서적
한국과 평창 동계올림픽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럼프가 한국에서 벌이는 좌충우돌 모험담을 통해, 우리는 위트와 풍자가 지니는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