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편집자가 애정하지 않는 책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은 남다르다. 직장을 옮기고 맡은 첫 책에다 예쁘기까지. 기획된 이후 여러 이유로 3년 정도 뜸만 들였다는 모지스 할머니 원고를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만났다. 이 책을 오래 조몰락거린 대표는 둘째 아이를 낳으러 휴직을 하면서도 이 원고만은 챙겨갔다. 그러다 내게 SOS를 청했다. “아이 낳고 집에서 책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미친 생각이었다”고 고백하며. 나는 그녀에게서 모지스 할머니 그림이 담긴 외서 뭉치와 편집 중이던 자서전 원고를 받아들었다. 건네는 사람은 마치 “내 아이를 잘 부탁한다” 분위기였고 나는 “암요, 암요, 걱정 마세요” 하고 소중히 안았다.
할머니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은 ‘아! 예쁘다’였다. “예쁘지 않다면 뭐 하러 그림을 그리겠어요?”라는 할머니의 당연하고도 호쾌한 말처럼 말이다. 할머니의 자서전은 투박하고 소박했다. 관절염으로 자수 놓기가 힘들어지자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녀는 101세가 될 때까지 16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80세에는 단독 전시회를 열었고, 93세에는 <타임> 표지 모델이 됐다. 그녀가 이룬 이러한 업적에 비해 삶을 회고하는 그녀의 글은 잔잔하고 평화롭다. 인생을 단번에 뒤흔들어놓은 극적인 사건도, 성공 뒤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도 없다. 그저 자신의 삶을 매일매일 충실하게 살아낸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이 열둘에 가정부 일을 시작했고, 홍역으로 형제들을 잃었고, 열 명의 아이를 가졌으나 그중 다섯만이 살아남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버터를 만들고 감자칩을 튀겨내고 자수를 놓고 농장을 돌봤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닭을 키웠을 거예요. 지금도 닭은 키울 수 있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도시 한 귀퉁이에 방을 구해서 팬케이크라도 구워 팔겠어요.” 이 말은 성공한 화가의 겸손이 아닌 할머니의 진심이었을 테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말, 할머니는 삶으로 증명했다.
다행히 따뜻하고 예쁜 책이 나왔다. 할머니 그림을 보고 할머니 글을 매만진 번역자, 대표, 나, 디자이너, 마케터 모두 진심으로 이 책을 사랑한다. 할머니에겐 그런 힘이 있다.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괴로워하지 않을 만큼의 반응이면 족하다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 어쩔 줄 모르겠다. 워낙 소심한 성격이라 좋은 반응을 얻으니 또 그만큼 불안하다. 그 때문인지 요즘 서점을 향하는 발길이 잦다. 책보다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혹시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든 순간 시선이 느껴진다면 멀리서 숨죽여 지켜보는 나일지도 모른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일희일비하며 초조해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고, 운 좋게도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책을 만들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잔뜩 긴장한 상태지만, 나부터 불안은 가라앉히고 태연하게 매일을 맞이하자 다짐하며 할머니의 말을 떠올려본다. “그보단 다음엔 어떤 그림을 그릴지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싶은 게 정말 많거든요.” 만들고 싶은 책이 아직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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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저/류승경 역 | 수오서재
매일에 충실하고 변하는 계절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기쁨을 찾는 소소한 일상을 담은 그녀의 이야기와 그림은 시대를 초월하여 감동과 희망을 전한다.
마선영(수오서재 편집자)
수오서재에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