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니면 국어선생님을 꿈꿨던 작가는 글로 먹고 사는 다른 직업을 고민하다 광고를 전공하고 잠시 카피라이터를 업으로 삼았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던 작가는 퇴사를 선택하고, 원하는 삶을 향해 가기로 했다.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는 불행의 시간을 멈추고 다행의 날들을 만들어가면서 써내려간 기록을 담았다.
이 책의 저자 태재는 전업으로는 주부를 부업으로는 작가를 희망하며 젊은 시절을 지나고 있다. 가끔 질문을 하고 더 가끔은 대답을 한다.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부터 운문을 묶어 해마다 한 권씩 출간했다. 작품으로 『애정놀음』, 『단순변심』, 『우리 집에서 자요』, 『위로의 데이터』가 있다.
맞든 틀리든 답안지를 제출할 때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라는 책 제목이 독특합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상징하는 것이 있는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가 지내는 사계절의 이름은 나무의 모습을 보고 지었다고 합니다. 새로 본다고 해서 봄, 열매가 맺힌다고 여름, 옷을 갈아입는다 해서 가을, 겨우 산다고 겨울, 이렇게요. 여름에 태어난 저는, 사계절 중 여름을 맨 처음 겪어서 그런지, 여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름은 제 일기장에서 가장 두꺼운 계절이며, 제 영혼의 나이테가 가장 선명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의 여름은 풍성하는 못했지만 탐스러웠던 몇 개의 열매에 대한 기억을 상징합니다.
카피라이터를 꿈꾸며 큰 광고회사에 입사했는데, 쉽게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꿈꾸던 일(카피라이터)을 멈추게 되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없으셨는지, 어떤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두셨는지요.
물론 두려움이 있었지만, 나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 시간을 가져보자.'는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 안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풀어보았고, 이제는 맞든 틀리든 답안지를 제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불행의 반대말을 행복이 아닌 다행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은 행복하다라는 단어에 불행하다가 붙기 마련이니까요.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불행과 다행, 그리고 행복은 무엇인지요.
어쩌면 생활이라는 것은 ‘불행 - 다행’이라는 두 고리가 번갈아가면서 재생되는 레코드판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한 곡 두 곡, 한 장의 앨범이 재생되는 동안을 들여다보면, 한 고리 한 고리씩 불행과 다행이 미세하게 번갈아 돌아갑니다. 그래서 늘 다행인 것도 늘 불행인 것도 아닙니다. 조금 서툴게 만들어진 판이나 긁힌 적이 있는 레코드판은 가끔 튀기도 하는데, 그 튐이 불행과 다행 중 어떤 고리에서 일어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행복은 그런 ‘튐’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불행한 와중에도 행복할 수 있고, 다행한 와중에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단하지 않았지만, 네 권의 시집을 발표했습니다. 첫 산문집을 쓰시면서의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주로 운문을 써왔기 때문에, 쓸 때의 근육이 운문 위주로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문집을 쓰면서는 산문 위주의 근육을 새롭게 발달시켜야 했던 점이 어려웠습니다. 덧붙이자면, 운문을 쓸 때는 불꽃놀이나 폭죽이 터지는 느낌인데, 산문은 형광등이나 조명을 켜서 비추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동안은 야외에서 떠돌며 예상치 못한 불빛으로 글을 쓰다가, 산문집을 쓰면서는 실내에서 가만히 등을 켜고 그 아래에서 써야했기에 적응이 필요했습니다. 어렵고 어색했지만, 덕분에 새로운 근육이 생겼고 앞으로의 생활과 글쓰기에도 발전적인 영향을 끼치리라 기대합니다.
다행과 불행, 선택과 취소, 소중과 중요 등 작가님의 글을 보면 단어를 꼭꼭 씹어서 소화해 사용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작가님께서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글자들을 입으로 소리내어 읽었을 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가, 그러니까 '글이 말이 되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운문이든 산문이든요.
입사와 퇴사를 거치면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20대를 지나오시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준비하는 20대의 마무리와 서른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남들과는 조금 다른 20대를 지나온 것은 제가 원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가 원하지 않았던 일도 더러 생겼는데, 그것은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빚을 진 일입니다. 그 빚들을 다 갚는 것이 20대의 마무리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고서, 서른의 삶은 마이너스가 아닌 제로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보면, 현재 작가님께서는 원하는 삶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원하는 삶이라는 게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것도 책 속에 담겨 있습니다. 경험자로서 원하는 삶과 현실의 삶의 경계에서 고민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말씀을 부탁드릴게요.
도전하고 포기하는 삶이 아닌, 내가 하고싶은 것을 선택하고 취소하는, 자기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는 삶. 저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했고, 지금도 중요합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방편이 독립출판이었고요. 저는 저를 더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꾸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굳이 책이나 글이 아니더라도 편하신 대로 기록해두시길 권합니다.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나를 기다려준 사람들을 발견하고,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지워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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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태재 저 | 빌리버튼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시인의 기록이지만, 오로지 시인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원하는 삶과 현실의 삶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