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현의 아랫입술 : 숨겨졌던 차태현의 근경(近景)
그 순간 사람들이 함께 흘린 눈물은 세상을 떠난 배우들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울지 않고 의연하게 추모사를 마쳐야 한다는 차태현의 책임감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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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풍경과 같아서, 때로 원경과 근경의 결이 사뭇 다른 이들이 있다. 차태현이 그렇다. 막연히 먼 발치에서 보면 그는 늘 유쾌하게 웃고 까불며 철들기를 유예한 남자처럼 보인다. 대중의 기억 속에 그는 오랫동안 여자친구에게 쩔쩔 매던 견우(<엽기적인 그녀>, 2001)이거나 잊고 있던 방학숙제처럼 들이닥친 딸 앞에서 당혹스러워 하는 현수(<과속스캔들>, 2008)였고, 본인도 그런 이미지로 자신의 필모그래피가 정의되는 걸 부정하지 않았다. 2012년부터 출연 중인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은 미션을 핑계 삼아 유치해지는 남자들의 서사이고, 76년생 동갑내기 친구들과 함께 하는 KBS <용띠클럽 - 철부지 브로망스>는 아예 제목부터 ‘철부지’라는 단어를 품고 있다. 아이 셋의 아버지라고 믿어지지 않는 동안 위에, 웃을 때면 한껏 크게 호를 그리며 휘어지는 눈꼬리와 입매가 품은 장난기를 더하면 우리가 익히 기억하고 사랑하는 그의 얼굴이 나온다.

 

그러나 한 발만 더 들어가면 늘 책임지는 삶을 살아온 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만 열 아홉의 나이에 KBS 슈퍼탤런트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 올해로 데뷔 22년차가 된 그는, 산업 안에서 주연배우가 책임져야 할 몫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을 객관화 했다. 차태현을 인터뷰한 기자들은 오랜 시간 고생해서 만든 영화에 대해 입 발린 소리를 하는 대신 냉정하게 평가하는 그의 모습에 놀란다. 영화 <슬로우 비디오>가 개봉할 무렵 차태현은 작품이 재미있다는 말 대신 “김영탁 감독의 전작 <헬로우 고스트>보다는 더 잘 만든 영화”라고 잘라 말했다. 냉정하게 평가하는 만큼, 현장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 또한 그의 몫이다. <해피선데이> ‘1박 2일’ 시즌 3에 잔류를 제의 받았을 때 제 잔류 여부를 걸고 김종민을 지켜낸 것도, 아직 서로 어색한 시즌 3 멤버들을 초대해 식사 자리를 마련하며 팀 분위기를 다진 것도 차태현이었다. 우리는 차태현이 유쾌하게 웃는 모습은 늘 기억하지만, 그가 2004년부터 3년간 심각한 공황장애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다. 제 감정이나 사정은 제 속에 파묻고 그 자리를 책임감으로 다진 차태현의 삶은 근경에서야 비로소 보인다.

 

2017년 11월 25일 열린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장에 올라 한 해 동안 세상을 떠난 영화인들을 추모하는 순서를 진행한 차태현이 낯설어 보였던 건 아마 그 탓이었을 것이다. 김지영, 윤소정, 김영애와 같은 쟁쟁한 원로 배우들의 뒤로 지난 10월 30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주혁의 이름이 따라 나올 때, 차태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날벼락 같은 이별에 사실 지금도 가슴이 좀 먹먹합니다.” ‘1박 2일’이 마련한 김주혁 추모 특집편에서도, 다른 모든 멤버들이 울먹이느라 제대로 영상편지를 남기지 못하는 와중에도 애써 웃으며 김주혁을 위해 명동성당을 찾아가 영상을 담아낸 차태현이었다. 그런 그조차, 청룡영화상 무대 위에서 “사랑해요, 형.”이란 말을 남길 때는 두툼한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감추지 못했다. 그 순간 사람들이 함께 흘린 눈물은 세상을 떠난 배우들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울지 않고 의연하게 추모사를 마쳐야 한다는 차태현의 책임감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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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현 #1박2일 #해피선데이 #김주혁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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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같은북극곰공주

2017.12.03

참 괜찮은 사람. 늘 응원하는 사람. 같이 술 한잔 기울이며 내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이제야 알 수 있는 사람.
항상 흥하기를 기원합니다. ^^
나는 왜 이런 남자를 만나지 못했는지... 에혀... ㅠ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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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7.11.29

원래 좋아하는데 더욱 좋아진 차태현 씨. 태현 씨 보고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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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