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음악도 새롭게 들린다!”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 해설가인 김주영이 이제까지의 음악 경험을 모아 『클래식 수업』을 출간했다. 음악애호가에서 음악을 ‘업’으로 삼게 한 감동의 순간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김주영 저자는 ‘국내 1호 러시아 음악 유학생’으로 국립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 현대약품 주최 ‘아트엠콘서트’ 진행, <조선일보> <객석> 등에 클래식 칼럼을 연재하는 등 사람들이 클래식을 감상하는 질을 한층 높이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11월 9일 풍월당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강연회에서는 특별히 책에 실린 음악과 함께 김주영 저자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풍월당에서 40여 명의 사람이 엄선된 음악을 들으며 추운 날씨 가운데 따뜻함을 즐겼다.
저절로 머릿속에 들어오는 음악
김주영 저자에게 예술은 늘 물음표와 호기심을 가지고 숙제를 풀어야 하는 일이었다.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이유는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할 이유를 하나 더 제공하려는 노력이었고, 독자들의 리뷰와 의견이 나올수록 저자에게는 더 좋은 해설, 더 나은 통찰의 계기가 된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강연의 첫 시작은 ‘클래식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모차르트’ ‘아마데우스’ 등 음악가 이름을 대기도 하고, ‘세레나데’ ‘겨울 나그네’ 등 좋아하는 곡을 대기도 했다. ‘휴식’이나 ‘피아노’를 말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표제가 들어가 있는, 인상적인 제목인 곡을 기억할 때가 많습니다. 작품명이 숫자로만 되어 있으면 어려워서 좋은 곡인데도 기억을 못하게 되죠. 요즘은 노래 제목을 찾아주는 앱으로 음악을 들려주기만 하면 찾아주기도 합니다. 처음 들려드릴 곡은 베토벤의 바가텔 a단조 WoO 59번입니다. WoO(Werke Ohne Opuszahl)은 독일어로 작품번호가 없다는 뜻입니다. 작품 번호가 없는 작품을 추린 것 중 59번째 작품이라는 의미입니다.”
김주영 저자가 피아노로 연주를 시작하자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피아노에서 흘러나온 곡은 다름 아닌 ‘엘리제를 위하여’였다.
“바가텔 a단조 WoO 59번이 복잡하지만 이제 다들 외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가 ‘엘리제를 위하여’는 아는데 작품번호를 모른다는 건, 거꾸로 생각해 보면 다른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작품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이름이 붙으니 다들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죠. 제목이 여러분의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해 결정적인 순간에 머릿속에 남는 게 아닐까요? ‘엘리제를 위하여’는 사실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굉장히 여러 번 되풀이됐습니다. 학교에서, 청소하는 트럭이 후진할 때,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에서도 반복됐습니다. 작품을 기억하는 건 파고들어서 공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들어와 저절로 머릿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번 강연회에서도 이런 순간을 만들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다음 예시로 김주영 저자는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의 아버지 이야기를 언급했다. 오래된 제자의 아버지가 오디오 마니아였는데, 유일하게 듣는 클래식 음반이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이었다고 한다. 오디오 품질을 결정하는 데 <1812년 서곡> 마지막에 들어가는 대포 소리가 얼마나 사실적으로 들어가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설명과 함께 차이콥스키 탄생 150주년 기념 연주 영상을 감상했다.
“1812년은 잘 알려져 있듯 나폴레옹이 러시아로 진격했다 회군한 연도입니다. 날씨가 너무 춥고 습해 땅이 진창이 되자 도무지 마차와 병사가 행진할 수 없어서 돌아간 사건이었죠. 물론 보로디노 전투라는 유명한 전투가 있습니다만, 러시아군이 잘한 게 없기 때문에 <1812년 서곡>처럼 종을 치고 대포를 쏘면서 자축할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곡은 표면만 번지르르하고 시끄러운 곡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굉장히 강렬하죠.”
소리보다 중요한 침묵
김주영 저자가 처음 들은 오케스트라 연주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로스트로포비치가 지휘한 워싱턴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이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소리보다 더 충격적인 경험이 있었다.
“쏟아지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처음 듣는다는 건 10살짜리에게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충격이죠. 감동이라기보다는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상으로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게 몇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쥐죽은 듯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 자체였습니다. 강한 사운드 이상으로 침묵이 만들어내는 힘이 크다는 걸 느꼈어요. 음악가는 연주할 때 늘 소리가 있는 순간보다 없는 순간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죠.”
김주영 저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루체른 오케스트라 연주 영상을 자료로 준비했다. 말러 교향곡 9번의 마지막 4악장을 연주하고 객석에는 침묵만이 가득한 영상이었다.
“촛불이 조금씩 꺼져가듯 작아지면서 음악이 끝나는데 한참 동안 박수를 치지 않습니다. 관객들이 치지 말라고 안 칠까요? 정말 음악에 공감했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마지막 부분에 말러가 적어놓은 지시어는 ‘죽어가듯이’였습니다. 의미심장하죠.”
영상에 덧붙여 클래식 공연에서의 박수에 관한 의견도 나왔다. 김주영 저자는 끝날 때라는 걸 알고 미리 잔향이 끝나기도 전에 치는 박수를 ‘안다 박수’라고 불렀다. 감동을 따라 박수를 치는 건 좋지만, 조용히 끝나는 음악은 오래 기다렸다 박수를 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소개한 영상은 호로비츠가 연주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였다. 청중이 간간이 눈물을 흘리며 음악을 감상하는 영상이었다. 달콤하고 하늘하늘 날아가듯 연주하지만, 음표 뒤에 숨어 있는 감동을 많은 관객이 공유하고 있었다. 들을 때마다 다른 감동을 주는 곡이었다. 반대로 관객과 신나게 교감하는 음악도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가 프랑스 시타델리에서 앙코르곡으로 지미 헨드릭스의 「purple haze」를 연주할 당시, 나이젤 케네디는 무대를 벗어나 움직이면서 멋진 무대 매너를 보여주었다.
“어떤 음악이든 상관없이 청중들과 교감할 수 있습니다. 록 음악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 정도로 어필한다는 게 놀랍죠. 즉흥적으로 하는 것 같지만 교묘하게 연출을 잘 한 공연입니다. 교감하는 부분이 멋있기 때문에 청중의 표정이 많이 나오죠.”
영화 속 유명한 음악
다음으로 본 영상은 유명한 <아마데우스>였다. 연극이 원작인 픽션이지만, 흥미로운 줄거리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인해 실제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했다고 많이 오해하게 된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워낙 인품 자체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시 이상한 사람이었던 모차르트를 보호하려고 했죠. 다만 독실한 신앙이 있었던 살리에리가 자기보다 훨씬 기독교적이지 못하게 사는 모차르트에게 신이 재능을 준 것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의 곡을 마음대로 편곡하는 장면에서 나온 멜로디는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멜로디였다. 극중에서 백작 부인의 시종인 테르미노가 군대로 끌려가니 피가로가 잘됐다며 놀리는 내용의 노래였다.
음악가를 주제로 한 영화 중에는 <피아니스트>도 빠질 수 없다. 폴란드계 유태인 슈틸만이 구사일생으로 숨어다니다 마지막에 독일인 군인에게 발각되는데, 피아노를 쳐서 목숨을 건지는 장면이 유명하다.
“이 영화를 보고 저희 어머니가 ‘주영아, 그러니까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물론 지금 전쟁이 나면 피아니스트라고 물어볼 새가 없겠죠. 영화에서 연주하는 곡은 쇼팽의 발라드 1번, 작품번호 23번인데요. 몇 년 동안 손도 못 푼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연주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긴장감과 극적인 효과를 더 살리기 위한 장치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주영 저자는 마지막으로 쇼팽의 녹턴 c#단조와 차이콥스키 사계 모음곡 중 11월 <트로이카>를 연이어 연주했다. 러시아에서 연주한 경험은 프로코피예프와 리히테르로 넘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음악이 이어졌다. 베토벤의 7번 교향곡 4악장을 듣고 사인회로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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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수업김주영 저 | 북라이프
『클래식 수업』은 ‘클래식’이라는 매혹적인 선율에 한 번이라도 마음을 빼앗겨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감상의 질을 한층 높일 수 있는 유익한 교양서다.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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