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벨문학상은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작가들을 제치고 영국 국적의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수여됐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에 따르면 “위대한 감정적 힘을 가진 소설을 통해 세계를 연결”하는 심연을 발견했다는 선정 이유가 뒤따랐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가즈오 이시구로는 1960년 영국으로 이주했다. 문예 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일본을 배경으로 한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 이어 일본인 예술가의 삶을 다룬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 영국의 한 저명한 저택에서 평생을 집사로 보낸 스티븐슨의 여행과 회상이 교차되는 『남아 있는 나날』 등을 발표했다. 첫 번째 소설로는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 두 번째 소설은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았다. 세 번째 소설은 부커 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영화로 제작해 더욱 유명세를 떨쳤다. 그 외에도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첼튼햄 상, 매력적인 상류층 사립 탐정 크리스토퍼의 말투로 전개되는 『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또다시 부커상 후보에 오르는 등 내는 작품마다 상을 받거나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입증했다.
복제 인간의 사랑과 운명을 다룬 『나를 보내지 마』나 황혼을 다룬 단편을 모은 『녹턴』, 고대 잉글랜드 평원을 무대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이야기 『파묻힌 거인』 등 최신작에서도 다양한 소재를 다루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다양한 소재’를 쓰는 소설가에 멈추지 않고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 너머 주제를 다루는 소설가가 되기를 원했다. 작가 특유의 문체로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녹여낸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스스로 ‘기억과 망각의 딜레마’를 주제로 삼는다고 밝힌 바 있다.
저의 작품들에 대해 흔히 이야기되는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건 주로 ‘배경’이나 ‘장르’와 관련된 부분 같아요. 하지만 제 주제는 보다 깊은 차원에서 볼 때 기억 또는 기억과 망각의 딜레마에 관한 거예요.
- NPR과 GOODREADS에서 진행된 가즈오 이시구로 인터뷰 중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영국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1913년 인도 시인 타고르, 1968년 일본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1994년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2000년 프랑스 국적의 가오싱젠, 2012년 중국 소설가 모옌에 이어 여섯 번째 동양인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기록을 얻었다. <타임즈>에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안에 꼽을 정도로 현대 영미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동양과 서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시구로만의 정서가 그의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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