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별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그들이야말로 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인 듯 하다. 그들은 긴 세월 장수하고, 죽었는가 싶었는데 다시 부스스 살아난다. 그들은 이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중략)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들의 지혜를 배우자. 그들이 험난한 지구에서 지금까지 살아 낸 것은 우리에게 할 말이 있어서 인지 모르지 않는가?(18-19쪽)
『식물처럼 살기』를 쓴 최문형은 『동양에도 신은 있는가』, 『유학과 사회생물학』 등을 쓴 철학 연구자다. 그는 신작 『식물처럼 살기』에서 식물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간이 닥친 위기에 대한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름도 모르는 식물들과 수시로 이야기하는, 식물을 자신의 비밀스러운 친구들이라고 말하는 저자가 ‘식물처럼 살기’를 제안한다. 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저녁, 혜화동 한 카페에서 저자와 독자가 만났다. 책을 쓰는 동안 무척 설렜다는 저자는 “식물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리는 게 정말 즐겁고 행복합니다.”라며 식물을 만나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책은 마음속에 17년 동안이나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밤에 차를 몰고 가는데요. 길가의 가로수가 그날따라 달라 보였어요. 문득 저 나무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온갖 공해를 다 입으며 사는데 어떻게 저렇게 튼튼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식물처럼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처음에는 식물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적응하기 때문에 잘 살아내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는 상당히 식물적이지 않은 사람이거든요.(웃음) 싫증도 잘 내고요. 그런 생각으로 식물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자세히 보니 생각과는 딴판인 거예요. 굉장히 복잡하고, 치밀하고, 전략 전술에 능하고, 변신도 잘하는 거죠. 생각했던 식물과는 전혀 달랐어요.”
움직이지 않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했던 식물에 대한 첫 이미지가 수정되는 경험을 담담하게 들려준 저자는 “책의 마지막 챕터를 끝냈을 때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며 “나는 지금까지 왜 식물처럼 살지 못했을까 하는 회한이 막 밀려들었다”고 말했다. 책을 끝낸 지금, 저자는 후회되는 일이 있을 때면 나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아우성에 위로를 받는다. “식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우울할 일이 전혀 없다”고 그는 말했다.
길가의 풀, 그리고 나무들
“보도블럭 사이 작은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풀 보셨죠? 자주 눈길 주지 않지만 찾아보면 지하철 출입구 틈에도 풀이 자라고요. 심지어 꽃도 피어 있어요. 정말 신기하죠. 가꾼 것도, 심은 것도, 애지중지한 것도 아닌데 잘 살고 있어요. 여러분은 그러니까 거기에 시선만 돌리시면 훨씬 행복해질 거예요.”
2016년,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의 수령이 발표되었다. ‘므두셀라’라는 이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 인요 국립 삼림지에 있는 히코리나무로 공식적인 나이가 4,847세다.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 세월의 풍화를 고스란히 견뎌낸 나무의 시간을 아득히 상상해본다. 저자는 “어찌보면 이 지구는 식물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원시인들은 높은 곳에 살았죠. 하늘에 가까운 나무를 신성시했어요. 신화에도 많이 등장하고요. 보리수나무는 불교에서 굉장히 신성시하고, 올리브나무 역시 성경에 많이 등장해요. 나폴레옹은 월계수나무를 사랑했다고 하죠. 나무는 식물 중에서도 아주 현명한 현자입니다.”
저자는 또한 나무를 “생명의 근원”으로 표현하며 한 그루의 나무에서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식물학자들은 수백 년 된 고목에서 257종, 무려 2천 마리가 넘는 수의 생물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다. 나뭇가지는 새의 보금자리가 된다. 나뭇잎은 시냇물의 적절한 온도 유지를 가능하게 해 물 속 생물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다 자란 미루나무는 여름 대낮에 한 시간 동안 약 400리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물을 뿜어낸다.”(44쪽) 지구의 생태계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데에는 나무의 역할이 압도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들을 열거하며 그로부터 얻어야 할 성찰에 대해 이야기했다.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 아시죠. 보리수라는 가곡이 나온 이유는 단순히 이 나무가 우리에게 열매를 준다는 차원이 아니잖아요. 나무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위안을 주는 우리를 안아주는 존재인 거죠. 나무는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줍니다.”
식물처럼 무기물을 유기물로 바꾸는 재주는 없어도 내가 가진 부정적 자원들을 긍정적 열매로 바꿀 수는 있다. 나의 능력으로 내 주위의 공기를 깨끗하고 풍부하게 하고 대기를 촉촉하게 해주며 땅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더 자라면 그늘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어서 나를 찾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54쪽)
식물이 주는 가르침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해요. 처한 환경에서 떠날 수가 없어요. 환경에 적응합니다. 알록달록한 옥수수 있잖아요? 그건 유전자가 변형된 것들입니다. 스스로 변형한 거예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식물의 지혜를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저자는 식물을 기른다. 한 번은 기르던 식물이 모두 죽은 듯 시든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죽은 줄만 알았던 식물들이 다시 잎사귀를 냈다. “찰나와 영원을 사는” 식물의 지혜였다. 특히 식물이 영원으로 가는 길에 “씨앗이 씨앗을 만드는” 식물의 생태가 있다. 저자는 이것을 “가능성의 씨앗”이라고 말했다.
“씨앗은 자기가 밖으로 나와서 살기가 좋을 때 싹을 틔워야 하죠. 섣불리 나왔다가 옆에 커다란 식물이 있어서 그늘을 드리우면 어떻게 되나요. 죽는 거죠. 또 싹을 틔운 후에는 둥치와 가지를 키워야 해요. 이것 역시 쉽지가 않아요. 곤충이 와서 갉아 먹고요. 이파리도 피워야 하고, 꽃도 피워야 하고, 꽃까지 피웠지만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기껏 열매를 맺었는데 새가 먹어요. 열매 안의 씨앗이 새의 장을 통과해야 하는데 다 소화가 돼요. 너무나 험난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씨앗은 우리의 가능성과 꿈을 생각하게 해요. 씨앗이 다시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듯 우리의 꿈도 그렇죠.”
곤충에 갉힌 이파리도 예쁘고 바람에 꺾인 가지도 멋있다. 바람에 우수수 흩어져 날리는 꽃잎도 신비롭고 덜 익은 풋열매도 사랑스럽다. 생명이기에, 생명이 지닌 모든 속성과 생명이 겪는 모든 사건을 안고 꼿꼿이 살아가는 식물은 아름답다.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한다. 그런 삶을 동경한다. ‘진리의 삶’이나 ‘착한 인생’ 같은 것보다 아름다움을 선호한다.(중략) 아마도 ‘아름다운 삶’은 진리와 선함과 성스러움을 모두 다 포함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227쪽)
식물처럼 살기 11계명
1계명 길가의 풀들에게 시선주고 귀 기울이기
2계명 신성한 나무, 고귀한 꽃과 희망과 감동 나누기
3계명 생명의 근원인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기
4계명 꽃처럼 유혹하고 보답하며 살아남기
5계명 치밀한 전략전술로 전장에서 이기기
6계명 다른 생명들과 욕망 나누고 도우며 어울려 살기
7계명 환경에 자유자재로 적응하고 시련 속에서 인내하고 변신하기
8계명 하늘을 동경하고 땅에 굳건히 터 잡기
9계명 순응하고 자족하며 찰나와 영원을 살기
10계명 모험을 두려워 않고 적절한 때에 가능성의 씨앗을 싹틔워 키우기
11계명 영혼을 발화하여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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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처럼 살기최문형 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하고 고민하는 수많은 현대인을 위한 철학, 인문 교양서이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