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지겹도록 내리던 장맛비가 그치고 햇살이 투명한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북적거리는 홍대 어딘가에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CY시어터에서 열린 예스24 여름 문학학교 1강을 듣기 위해서다.
‘지금, 소설을 읽는 이유’라는 주제로 소설가 김금희, 임현, 손보미가 이야기를 나누고, 문학평론가 허희가 사회를 맡았다. 행사에 참여한 소설가들은 모두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행사는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면 차례로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우연히, 또 충동적으로
허희: 다들 요즘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김금희: 제발트의 『현기증』이라는 책이요.
임현: 엠마누엘 카레르의 『러시아 소설』. 어딜 가나 제가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작가입니다. 기본적으로 르포르타주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손보미: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을 추천해 드립니다. 독자의 흥미를 끌고 끝까지 유지하는 힘이 대단해요.
허희: 공통적으로 외국 작가를 추천해 주셨네요. (웃음) 혹시 한국 문학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임현: 이승우 작가님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김금희: 예전에 어떤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받아서 대답했더니, “너는 여성작가들만 좋아하네?”라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생각해보니 90년대에 주로 활동하신 여성작가님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은희경, 신경숙, 권여선, 하성란 작가님 등등이요.
손보미: 개인적으로 편혜영 작가님을 좋아하고요, 최인호 님의 『술꾼』은 지금 읽어도 참 세련됐다고 느껴져서 추천합니다.
허희: 읽을 소설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김금희: 주로 서점에 가서 우연히, 또 충동적으로 선택하는 것 같아요. 주위에서 추천 받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손보미: 시리즈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쭉 읽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들을 읽어요. 어떨 때는 제목만 보고 끌리는 책을 고르는데 그 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기억에 남네요.
임현: 저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이 사람이 궁금하다, 맘에 든다 싶으면 어떤 책을 좋아하냐고 물어봐요.
허희: 그렇다면 싫어하는 소설은요?
임현: 1/3 이상 읽었는데도 예상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책은 중도에 덮는 편입니다.
손보미: 저는 간단해요. 재미없는 책이요. (웃음)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들어도 싫어합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거지만 야한 장면이 나오는 책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김금희: 느낌표가 많은 책을 싫어해요. 말 그대로 문장부호 느낌표요. 뭔가 이야기의 템포가 너무 빠르다거나, 제가 따라가기 벅찬 속도면 잘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허희: 대답만 들어도 세 분의 소설이 가진 특성이 잘 드러나네요. 손보미 작가님의 소설은 말 그대로 재미있고, 김금희 작가님의 소설은 고요하지만 그 안에서 인물의 내면적 풍랑이 느껴지니 말입니다. 그리고 임현 작가님의 소설은 지루함과 거리가 멀죠.
외부의 억압을 뛰어넘는 이야기의 힘
허희: 오늘의 주제와 맞닿은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작가님들이 소설을 읽고,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이지만 답변 부탁드립니다.
임현: 사람 개개인이 가진 감정을 더욱 계발시키고,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김금희: 제가 얼마 전에 친구들과 쿠바 여행을 다녀왔어요. 쿠바는 억압이 심한 나라여서 인터넷도 특정 장소에서만 이용할 수 있을 정도예요. 그 나라만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모두가 집 밖에 나와있다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이야기하길 참 좋아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희가 택시를 잡고 있으면, 반경 50m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문이 쫙 나요. (웃음) 모두 같은 마음으로 저희를 도와주려고 하죠. 저는 이게 서로에게 관심이 많다는 증거라고 느꼈어요. 소설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외부의 억압, 현실적 제약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이야기의 힘이 있어요. 소설은 허구지만 그 안의 진실로 인해 함께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손보미: 어떻게 보면 소설을 읽는 것만큼 시간 낭비인 일이 없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시간 낭비가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허희: 정성 어린 답변 감사합니다. 이제 독자 분들이 남겨주신 질문을 받을 차례인데요, 첫 번째 질문입니다. ‘글쓰기가 밥벌이가 되나요? 그리고 젊은작가상 상금은 어떻게 쓰셨나요?’
김금희: 먼저 상금은요, 저도 그렇고 제 주위를 보면 대부분 빚 갚는 데 많이 씁니다. 어느 모임에서 김영하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나요. “점~점 나아집니다!” 라고 호탕하게 말씀하셨어요. 생활이 점점 나아지는 건 사실이에요
손보미: 저와 같은 나이인 친구들, 직장인과 비교해 보면 사실 택도 없죠. 내가 회사에 들어갔다면 지금쯤 대리는 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해요. (웃음) 상금은 어떻게 썼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네요. 돈 쓰는 게 다 그렇잖아요?
임현: 사실 글 쓸 때 돈 생각하면 쓸 수가 없어요. 자꾸 딴 생각으로 빠지고, 집중이 안됩니다. 상금은 마침 이사를 갈 때라 보증금에 보탰습니다.
허희: 마지막으로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김금희: 소설가를 지망한다는 건, 공적인 영역에 자기 목소릴 내고 싶다는 뜻일 거예요. 요즘은 매체가 발달되어 있어서 소설 쓰기는 취미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간단히 생각해 ‘언제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들어주지?’라는 질문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소설도 결국은 들어주고,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요. 진실된 목소리로 내 자세를 낮추어 얘기할 때 사람들이 집중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강의가 진행되는 내내, 공간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설가를 지망하거나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신중한 생각을 꾹꾹 눌러 담아 대답해주신 덕분에 집에 돌아가는 길이 아주 충만한 시간이었다.
강채원(예스24 대학생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