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라는 단어와 조우할 때면 자주 거기 멈춰서게 됩니다. 그런 멈춤이 잦아졌던 시기와 독서의 즐거움을 느낀 시기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제게 독서는 침묵과 집중을 내포하고 있는 활동입니다.
종이 위에 인쇄되어 있는 활자들은 주위 상황과 잠시 분리된 채 그것들을 읽어나가기를 요구하죠. 일시적인 고립이 필요하고요. 제게는 이런 종류의 집중의 감각이 근사하고 평화롭게 느껴졌어요. 물론 책을 즐겨 읽는다고 해서 작위적으로 고립에 중독된 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최근에 저는 다른 소설가 친구들과 꾸준히 텍스트를 선정해 함께 읽어나가고 있기도 해요. 혼자서 책을 읽은 뒤, 그 경험을 다른 이들과의 대화로 확장시켜나가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하는 친구들이 모두 소설을 쓰다보니, 앞으로 그 친구들 글도 같이 읽고 이야기해볼 것 같기도 하고요.
최근 첫 책(『공기 도미노』)을 출간하고 난 뒤 스스로 돌이켜보니 저는 무엇보다도 독자에서 출발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분들이 제 책을 읽어볼 거라는 생각을 하면 더욱 기분이 묘해져요.
명사의 추천
로쿠스 솔루스
레이몽 루셀 저 | 이모션북스
텍스트로써 사물들을 창조해내며 텍스트 자체를 그것들의 전시장이자 또다른 오브제로 만들어낸 특별하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레이몽 루셀은 장 콕토, 살바도르 달리, 마르셀 뒤샹, 미셸 푸코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죠. 뒤샹은 그를 두고 "길을 가리킨 사람"이라 부르기도 했고요.
말과 사물
미셸 푸코 저 / 이규현 역 | 민음사
푸코는 스스로를 구조주의자 또는 후기 구조주의자로 분류하려는 시각을 모두 부정하며, 한편으로는 자신을 계몽주의자로 말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푸코가 글을 쓰는 방식에도 그처럼 다름을 모색하는 미묘한 태도가 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의 내용도 무척 흥미로워 반복해서 읽었어요.
현대 건축의 철학적 모험 1
장용순 저 | 미메시스
오래 전부터 건축 분야에 꾸준히 흥미를 가져왔는데요. 학부시절 대학 도서관에서 자주 읽은 시리즈의 첫 권입니다.
백과전서 건축 도판
드니 디드로 편저 | 프로파간다
"18세기 프랑스에서 편찬된 <백과전서>의 도판집에서 건축에 관한 도판 249점을 엮어 복간한 책"입니다. <백과전서> 시리즈는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매우 재미있는 책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빛이 아닌 결론을 찢는
안미린 저 | 민음사
이 시집을 읽고 SNS상에서 "너무 근사하고 아름답다. 내가 시를 쓰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랬다면 이렇게 시를 보고 읽기만 하면서 느끼는 외부인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겠지."라는 말을 남긴 적 있어요. 안미린 시인님이 하트를 눌러주셨어요. 두근두근했어요. 그만큼 독특하고 매력적인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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