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침 출근이다.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여섯 시 전후 집을 나선다. 마을버스를 타러 가는 데 걸리는 시간 7분, 집 앞 공원을 지나다 보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각인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흐른다. 평소 같으면 텅 비었을 공원이 웬일로 남녀노소 불문 사람이 많다. 아, 그러고 보니 장미 대선 본날이다. 공원 끝에 있는 투표장을 새벽같이 찾는 인파다.
대선의 여파는 카페에도 미쳤다. 평소 같으면 일곱 시 반, 가게 문을 열자마자, 혹은 내가 여는 것과 동시에 들어오는 나보다 오래된 단골들이 있다. 오늘은 그 손님들이 오지 않는다. 조용한 카페에서 클래식을 듣기로 한다. 요즘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읽고 나니 새삼 클래식이 좋아졌다. 더불어 클래식에 입문한 계기를 떠올렸다.
중학생 시절부터 아버지의 만화 콘티를 컴퓨터로 입력하며 얼결에 글 쓰는 법을 익혔다. 그 재주를 살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글쓰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익백서 제작부터 시작해 잡지 자유기고에 홈페이지 제작, 게임 시나리오며 영화 시나리오까지 일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2002년 운 좋게 한 방송국에서 크리스마스 특집극을 방영했다. 영상물이 돈이 된다는 걸 깨닫고는 진지하게 그쪽으로 빠져들었다. 전통 있는 빵집 이야기를 적고 싶다는 일념으로 집 근처 태극당에 취직했다.
2003년의 일이다. 그 때도 지금처럼 매일 아침 여덟 시까지 출근했다. 카스테라 박스를 백 개씩 접어 창고에 탑처럼 쌓았다. 단골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카페를 겸한 홀에서는 인스턴트커피며 우유, 쌍화차를 팔았다. 옛날 다방에서나 볼 법한 공중전화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최초의 태극당 때부터 일했다는 공장장 할아버지를 만났다. 반 지하층에 있는 모나카 아이스크림 공장의 은밀한 제조법을 들었다. 대를 이은 사장님은 클래식을 좋아했다. 매일 듣다 보니 하이든과 모차르트정도는 구별할 수 있게 됐다. 사장님이 따로 용돈을 챙겨주시거나, 유명한 족발집에서 족발을 사주시기도, 안경도 맞춰주시는 일도 있었다. 직원뿐만 아니라 근처 보석점 겸 안경점 매출을 염려하셔서 아르바이트가 들어오면 금으로 된 액세서리나 안경 같은 것을 꼬박꼬박 구입하셨다.
최근 태극당에 들렀다가 격세지감을 느꼈다. 클래식 대신 가요가 나왔다. 빵 종류도 많이 바뀌고 가격은 올랐다. 카페에는 에스프레소 머신도 생겼다. 스타벅스 같은 분위기에 영 적응을 못했다.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우물거리며 걱정했다. 사장님은 잘 지내실까. 이젠 매장에 안 나오신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때 계시던 빵공장 어르신들이며 직원 분들은 어떻게 지내실까. 예전, 이곳을 메웠던 단골 노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전 여덟 시가 넘도록 마수걸이를 못했다.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 클래식 CD를 튼다. 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 언급되었던 '어느 황홀한 저녁‘이 흘러나온다. 옆집 사장님이 “투표는 했어” 물으며 천원짜리 두 장을 들고 들어오신다. 손님이 너무 안 오자 염려하신 모양이다. “부재자 투표요. 미리 했죠.” 대꾸하며 철제 드리퍼를 왼손에 든다. 글라인더에 꽂고 원두를 간다. 서서히 떨어지는 가루의 리듬감은 십오 년 전 처음 에스프레소를 뽑았을 때 그대로다. 템퍼로 적당히 다독여 머신에 꽂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사이, 비가 온다.
테라스에 내놓은 철제 테이블과 의자를 들여놓을까 고민하다 그냥 두기로 한다. 혼란한 정국처럼 미세먼지가 심했던 흔적을 빗물에 씻겨본다. 단골들은 국민의 의무를 다하려 바쁜 것일 테니 문학수 기자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각자의 책에서 소개했던 클래식을 차례로 복습해보기로 한다. 21세기 속 20세기 카페의 나날들처럼 평안한 내일이 찾아오길 빌며.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ne518
2017.05.15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