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수치에 대한 두려움이 개인의 행동을 집단의 기준에 맞춰서 하도록 만드는 것이고, 이를 통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집단 구성원들이 일부 개인의 일탈을 막아내고 전체 사회의 건강함을 지켜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99% 이상의 상황에 수치주기는 효과적이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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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세금 체납액은 무려 100억 달러였다. 세금을 내지 않는 상습적 체납자에게 내야 할 세금을 내도록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서 다른 성실한 세납자들의 부담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공공서비스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2007년 주 정부는 매년 전년도 세금 체납액이 10만 달러 이상인 개인과 기업의 명단을 500위까지 공개하기 시작했다. 세금 체납자들은 이 명단이 공개되기 전에 사전통지를 받아서 공개 이전에 세금을 낼 기회를 줬다. 그 결과는 엄청났다. 주정부가 지금까지 회수한 돈은 3억 3천 6백만 달러가 넘는데 반해, 이 프로그램에 들어간 예산은 고작 연 13만 1천달러에 불과했다. 세금을 잘 내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보다 이와 같이 일부 고의적 체납자의 명단을 공개해서 ‘수치심을 자극’하는 정책이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실제로 수치를 주는 것보다 수치를 줄 것이라는 위협은 행동변화에 더욱 영향력을 미쳤다.

 

“아 쪽팔려”,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네”라는 마음은 수치주기를 받은 사람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요새 대선 캠페인 과정에 각 후보 진영은 상대 후보의 약점을 공격한다. 이때에도 수치주기는 꽤 효과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이 된다.

 

“3D를 쓰리디라고 읽지 않았다.”
“후보 부인이 보좌관에게 사적인 일을 시키고 갑질을 했다.”
“2시간 동안 못 서 있는 체력으로 대통령을 하겠는가?”

 

실제 큰 죄를 저지른 것보다도 어떨 때에는 큰 파급력을 갖는다. 죄책감과는 다른 감정인 수치심이라는 것, 참 미묘하고 아픈 감정이다. 주홍글씨란 낙인도 사실 공공의 수치주기였던 셈이다. 그런데, 역으로 수치심을 잘 사용하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책이 한 권 있다. 제니퍼 자케의 『수치심의 힘』이다. 저자는 뉴욕대학교 환경연구학 교수로 집단협동과 관련된 문제를 주로 연구해왔는데 그 중에서도 수치심과 명예란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를 해왔다.

 

저자는 수치 주기의 핵심은 어떤 감추고 싶은 일이 관심 있는 대중에게 노출되었을 때 명성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개인은 수치심을 느낄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집단의 기준을 따르게 된다. 즉, 수치심은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상호작용 안에서 경험하는 감정이다. 이를 통해 집단은 개인의 일탈을 막고, 비폭력적 방식으로 집단 전체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이에 반해 죄책감(guilty)은 개인이 자신이 가진 기준에 맞지 않았다고 느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상대적으로 죄책감은 개인주의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매우 다양한 사회적 예를 들면서 수치심에 대해 폭넓게 접근을 하였다. 수치심은 큰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UCLA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떤 과제를 수행하는데 혼자 할 때와 동료들 앞에서 할 때를 구별해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을 측정해보았다. 그랬더니 동료들 앞에서 과제를 수행한 학생의 코르티졸 레벨이 두 배나 높았다. 수치심을 느낄까 봐 걱정한 것이다. 수치심을 느끼면 입꼬리가 아래로 쳐지고,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몸이 축 늘어지고 숨으려는 것처럼 어깨가 움츠러든다. 안면 홍조가 나타나기도 한다. 수치심의 자발적 표현은 사회적 갈등을 줄여주기도 한다. 한 모의재판에서 약물 매매로 기소된 피의자가 수치심이나 창피함을 표현한 경우 그렇지 않은 피의자에 비해 형량이 2/3로 줄어들었다는 연구도 있었다. 즉,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관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는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가 금연 캠페인이다. 고전적 금연 캠페인은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경고였다. 그것은 흡연자 본인의 건강에 대한 직접적 경고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수치심을 이용한 캠페인으로 바뀌었는데 바로 ‘간접 흡연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흡연자 본인뿐 아니라, 그 옆에 서서 연기를 맡게 되는 가족이나 기타 시민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것을 통해 흡연자 본인이 수치심을 느끼고, 대중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하도록 한 것인데, 이것이 흡연율을 낮추는데 상당히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이 모든 경우에 다 효과적인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비만’이다. 비만은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비만인에게 수치심을 주는 방식의 캠페인을 한다면 그것은 별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문제만 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수치 주기를 이용할 때는 무엇보다 정식으로 처벌을 받을 만한 일은 아닌 것이 좋다. 어차피 벌을 받을 일에 대해 또 수치를 주기 위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관심의 낭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치 주기는 법적인 처벌을 할 방법은 없으나 명백히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행동에 대해서 지적을 할 때 효과적이다. AIG은행이 정부에 긴급구제금융을 받았다.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 지에 대해서 규정은 없었다. 2008년 미국 정부가 지원한 2천억 달러 중 경영진이 무려 2백억 달러의 보너스를 수령했다. 시티그룹은 2009년에 450억 달러의 정부 지원을 받은 후 5천만 달러짜리 전용기를 구입했다. 법원이 이 행동을 막을 방법이 없었지만 여기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좀더 현명하게 행동했어야 했다,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하여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고 은행 경영진의 수치심을 느끼도록 자극했다.

 

대중에 의한 집단적 수치주기의 방향은 한 사람의 파멸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적 변화를 사법적 처벌이 아닌 양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가져오려는 집단의 노력이 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수치 주기는 가학적 집단 공격성의 일회적 배설이 아니게 된다. 수치 주기는 누구의 삶을 통째로 무너뜨리지 않고 기대한 방향으로 효과를 발휘하며 이후의 나쁜 행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때 최적의 성과를 낸다. 만일 수치에 목표를 부여한다면 집단이 옳지 않다고 간주하는 행동을 제지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결국 수치 주기가 아니라 수치에 대한 두려움이 개인의 행동을 집단의 기준에 맞춰서 하도록 만드는 것이고, 이를 통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집단 구성원들이 일부 개인의 일탈을 막아내고 전체 사회의 건강함을 지켜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99% 이상의 상황에 수치주기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어디든 꼭 1%는 있다. 바로 ‘안하무인’의 태도다. 수치심을 주려고 아무리 자극을 하고 대중이 압박을 가하고 눈을 부라려도, “내가 뭘 잘못했다고? 억울하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식의 반응을 하는 경우엔 이와 같은 비사법적 대중의 수치주기는 효력이 없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적극적이고 확실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 외의 경우 수치주기는 문화, 윤리의 틀에서 수 만년 동안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동안 이미 써오고 있던 것으로 앞으로도 분명한 처벌보다는 유연한 집단의 규범 지키기의 한 방식으로 기능할 것이다.

 

 

 


 

 

수치심의 힘제니퍼 자케 저/박아람 역 | 책읽는수요일
수치심은 사회든, 기업이든, 특정 조직이든, 집단 내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도구이다. 풍부한 사례와 일화, 그리고 여러 실험을 통해, 사회ㆍ정치적 변화와 조직 혁신에 수치심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이끄는 효과적인 수치 주기 전략 - 7가지 속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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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의 힘 #제니퍼 자케 #수치심 #죄책감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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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7.04.17

수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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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