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악마일지 모르죠 – 뮤지컬 <미드나잇>
한 밤에 찾아온 불청객. 그에 의해 벗겨지는 가면. “네가 거기에 있다면, 넌 어떻게 할래?”
글ㆍ사진 임나리
20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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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갑작스럽게 찾아온 비지터_백형훈 고상호.jpg

 

당신의 선택은 달랐을 것 같아?


똑! 똑! 똑! ‘그들’이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아내는 두려움에 떨며 평정심을 찾으려 애쓴다. 가냘픈 오르골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려 애쓰지만, 이웃집에서 새어나온 소리는 또렷하게 귓가를 때린다. 절규 섞인 애원과 불청객을 향해 쏟아내는 저주의 말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저들을 볼 수 없겠지, 아내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불안함이 짙어가는 가운데 기다리던 남편이 돌아왔다.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30여 분. 두 사람은 새해를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비로소 집 안에는 평온함이 감돈다. 그러나 그 때, 똑! 똑! 똑! ‘그들’이 찾아왔다.

 

극 초반, 작품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뿜어내는 듯 보인다. 혁명 이후 두려움의 존재로 우뚝 선 비밀경찰(엔카베데)이 등장하고, 그들에게 할당된 일이란 ‘각하에게 충성하지 않는 반혁명세력을 청소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작품의 배경은 1937년 12월 31일, 구소련 체제하에 있던 아제르바이잔이 사회주의연방공화국으로 분리된 이듬해의 마지막 날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은 표면적 상황 아래 잠들어 있는 인간의 심리, 그 깊은 곳을 향해 달려간다.

 

비밀경찰 ‘비지터’의 방문으로 부부는 미처 몰랐던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게 된다. 남편이 충성의 대가로 얻은 면책권(프로텍션)은 친구를 반역자로 거짓 고발해 얻은 ‘불명예스러운 특권’이었음이 드러난다.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 앞에 선 아내는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남편은 ‘두려움에 떨던 나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차피 숙청은 진행되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 뿐”이었다는 이야기다.

 

만약 당신이 그곳에 있었다면 당신의 선택은 달랐을 것 같으냐고, 남편은 아내를 향해 묻는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배신과 불의의 편에 선 그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내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당신이 역겹다고. 하지만, 그녀 역시 남편과 다르지 않은 선택을 했다면 어떨까. 그와 마찬가지로 이웃의 죄를 거짓 증언했다면, 그녀의 변명은 남편의 그것과 다를까.

 

한 밤의 불청객인 ‘비지터’는 너무나 태연하게, 심지어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부부의 평온을 깨뜨린다. 그를 두고 남편은 “저자는 엔카베데가 아닌 악마”라며 핏대를 세운다. “대체 왜 우리한테 온 겁니까. 우리보다 더 끔찍한 사람도 많잖아요” 원망의 말도 내뱉는다. ‘비지터’는 폭소를 참지 못한다. “뿔 달리고 불을 내뿜어야 악마라고? 길을 걷다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일 걸. 당신과 전혀 다를 게 없는. 그리고 왜 내가 여기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수백, 수천 곳에 내가 있을지도”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며 관객은 묻게 된다. 저들보다 더 끔찍한 사람들이 많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남보다 선하고 깨끗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내 안에는 없을까.

 

[미드나잇] 다시 찾아온 비지터_전성민 고상호 백형훈.jpg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서늘한 질문을 남기는 뮤지컬 <미드나잇>은 아제르바이잔을 대표하는 극작가 엘친의 희곡 <시티즌 오브 헬(Citizens of Hell)>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수십 년간 유럽에서 공연된 탄탄한 대본 위로 고혹적인 선율이 더해져 재탄생했으며, 그 주역은 뮤지컬 <쓰루더도어>의 작사ㆍ작곡가 로렌스 마크 위스와 극작가 티모시 납맨이다. 두 사람의 협업으로 영국에서 주목 받고 있는 <미드나잇>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공연된다. 김지호 연출가와 한지안 작가, 김길려 음악감독은 한국적인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으로써 <미드나잇>을 선보인다.

 

‘비지터’ 역에는 배우 정원영과 고상호가 캐스팅됐다. 뮤지컬 , <인더하이츠>, <잃어버린 얼굴>의 정원영과 <명동로망스>, <트레이스유>의 고상호는 극의 리듬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헌신적인 남편 ‘남자’역은 배우 배두훈과 백형훈이 연기한다. 배두훈은 <고래고래>, <풍월주> 등에서 호연을 보여줬으며, 백형훈은 <트레잇유>, <엘리자벳> 등 뮤지컬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팬텀싱어>에 출연해 뛰어난 노래실력을 보여줬다. 매일 밤 두려움에 떨며 남편의 무사귀가를 기다리는 심약한 아내 ‘여자’ 역할은 <넥스트투노멀>, <스프링어웨이크닝>의 전성민과 함께 <위키드>, <쓰루더도어>의 김리가 맡아 열연한다.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미드나잇>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 인간 본성을 꿰뚫는 예리한 시선으로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발한다. 공연은 2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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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