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계급은 ‘진실’로 나뉜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파리의 생활 좌파들』, 『월경독서』, 『야성의 사랑학』의 저자 목수정이 독자들과 만났다. 파리에 머물며 한국의 정치ㆍ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저자는 최근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을 출간했다. 이번 책 속에는 지난 3년여 간 저자가 ‘기쁘고 치열하게’ 보낸 시간들이 응축되어 있다. 그 시작점에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있고, 그 결과 저자의 시간은 연대로 채워졌다.
“제가 파리에서 12년 동안 살았는데, 이전에는 그냥 조용히 살았죠. 그런데 연대를 하면서 고요하던 제 삶에 변화가 생겼어요. 그게 한 3년 반 정도 된 것 같아요. 이명박 정부 때에도 행복한 시절은 아니었지만 그냥 눈 감고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 32개 도시에 연대 조직체가 있어요. 저만 과민하게 광분한 게 아니었어요. 해외의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 선거로 당선된 거라고 생각하고, 그 사실을 해외 언론에 전하기 위해서 투쟁을 시작했어요. 이후에는 그 움직임이 세월호 참사로, 국정화 교과서 문제로, 위안부 졸속 합의로 연결됐고요. (박근혜 정부는) 이 단체가 해산될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좌중 웃음). 이전에는 어디에 계셨는지 모르는, 뜨거움을 가지신 분들이 이슈마다 등장하시면서 어마어마한 연대의 끈들이 만들어지는 시간을 보낸 거예요.”
‘기쁨을 주는 타자와 연대하라’는 주제로 마련된 저자의 강연은 지난 18일 저녁, 충정로에 위치한 ‘벙커1’에서 열렸다. 강연장을 가득 채운 독자들은 목수정 저자와 함께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고민했다. 연대의 즐거움과, 그 이면에 감춰진 괴로움에 대해서도 생각을 나눴다.
“연대를 하고 같이 싸우면서 항상 기쁨이 있는 것만은 아니에요. 이슈가 바뀌거나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모임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죠. 미국에서도, 독일에서도, 프랑스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걸 한 번 경험하고 나서 너무 슬펐어요. ‘우리는 좋은 뜻으로 만났는데, 왜 이렇게 사소한 이유로 흩어지게 될까’ 싶어서 가슴 아팠어요. 그런데 다른 데도 똑같고, 인간의 속성이 그러하고, 새로운 이슈로 싸움을 시작하면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더라고요. 그래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나 우리에게는 또 함께할 친구들이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목수정 저자는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에 수록된 ‘당신들의 계급을 동정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언급하며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시간을 보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주변의 모든 인물들은 하늘만한 거짓을 만들어 놓고 손바닥으로 가리려고 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거의 4년 동안 하고 있죠. 그런 인생이 단 한 순간이라도 발 뻗고 잘 수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요. 제가 이번에 한국에 들어와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면회하기도 했는데, 우리는 감옥 안에서 만났어도 너무나 재밌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럴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예요. 우리는 진실을 알고자 하는 편에 서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와 달리, 단 한 순간도 진실을 살 수 없는 계급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흔히 계급을 나누는 기준은 자본의 유무이지만, 대한민국에는 또 다른 계급이 있다는 게 목수정 저자의 생각이다.
“(대한민국에는) 진실을 감춰야 하는 계급과 진실을 알고자 하는 계급이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돈을 소유한 사람들은 진실을 감춰야 하는 계급과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이 해왔죠. 한 번이라도 역사가 제대로 규명되는 기회가 있었다면 그걸 털고 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이 두 개의 계급을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행히도, 저는 행복한 계급에 속해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일제시대를 떳떳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런 계급에 속해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자랑스러워요. 그래서 그들의 계급을 동정한다고 말하는 거고요.”
박근혜 정부, 깨달음을 전파하다?
이 날의 강연은 독자들과의 질의응답으로 채워졌다. 목수정 저자는 “이 시간이 의미 있으려면 대화가 되어야 할 것 같다”며 독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토로하는 고민들에 공감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가며 강연을 이어갔다.
한 독자는 저자를 향해 ‘진실을 알려고 하는 열의가 없는 사람들’에 대해 물었다. 진실을 감춰야 하는 계급과 진실을 알고자 하는 계급,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존재하는 이들을 두고 우리가 ‘연대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목수정 저자는 『못난 아빠』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후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쓴 책 『못난 아빠』를 읽고 ‘진실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영오 씨가 『못난 아빠』에서 말씀하신 걸 보면, 예전에는 파업하고 노동 운동하는 사람들과 민주노동당을 제일 싫어하셨대요. 신문을 봐도 스포츠 면만 보셨대요. 하루하루 밥벌이를 하는 것조차 힘든데 저렇게 데모하면서 세상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세 끼 먹을 밥을 두 끼밖에 못 먹는다는 생각이 드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가 죽고 나니까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내 아이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되셨대요. 우리 모두를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의 선동에 속았던, 그들 나름의 말을 따라왔던 나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는 생각을 하셨다는 거죠.”
김영오 씨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 그들과 함께 아파한 많은 국민들이 아프게 깨달았다. 집회에 참여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이 거리로 나왔고 ‘바로 당신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라 외쳤다.
“이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또 다른 아이가 죽을 것이기 때문에 ‘내 아이에게 사죄하기 위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아이가 죽지 않는다’는 깨달음으로 힘겨운 싸움을 이렇게 오래 하실 수 있었던 거죠. 저는 박근혜 정부가 이런 깨달음의 지평을 아주 넓게 확산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최저임금을 벌기 위해서 너무 고통스럽게 일하고, 그래서 진실을 알려는 사유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계신데, 다행히 박근혜 정부가 그 분들에게까지 깨달음을 널리 전파하는 역할을 지치지 않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진실을 알고자 하는 계급이 넓어지고 있죠. 제 위안이 그겁니다. 그들(박근혜 정부)의 공이기도 하고, 우리 노력의 대가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이어진 질문은 ‘어떻게 하면 젊은 세대에게 연대의 필요성과 즐거움을 알려줄 수 있을까’였다. 스펙을 쌓고 취업을 준비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청년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를 최대 과제로 떠안고 있는 그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방식이 연대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경쟁으로만 인간과 인간이 만날 수 있도록 교육 받은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연대를 하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기만의 화두를 찾아내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일본 대사관 앞에서 밤을 새면서 소녀상을 지키고, ‘5년 밖에 안 된 정부가 5천 년 역사를 건드리려 하는가’라는 슬로건을 들고 같이 행진을 하고요. 그 아이들은 거대한 정권에 맞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의기투합하면서 본인도 모르게 연대의 세계에 관련을 맺고 있는 거죠. 전체를 보자면 (그런 아이들이) 극소수이지만, 그들은 연대의 장에 조금씩 끼어들고 있어요. 그걸 조직해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성공의 경험을 하게 되면 점점 움직임이 확산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래 연대하려면 ‘기쁨’에 포커스 맞춰야
“연대를 하면서 항상 기쁨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함께 저항했던 이들이 곁에서 떠나갈 때 우리는 그 상실감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목수정 저자에게 조언을 구했다.
“끝나지 않는 긴 싸움을 하다 보면 지쳐서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아주 디테일한 부분 때문에 서로 마음이 안 맞아서 헤어지기도 하죠. 저도 그런 일을 겪고 너무 아팠고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런 일들을 뛰어넘어서 오래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먼저, 기쁨의 요소를 일상에 배치해야 돼요. 저에게는 연대 활동 또한 기쁨이지만, 그 외의 은밀한 기쁨을 위한 시간들을 배분해요. 여행을 가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옛 동료들을 만나고... 기쁨의 요소들을 극대화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거예요.”
저자는 “종교 생활을 하는 것과 사회 운동을 하는 게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며 스스로 지치지 않도록 힘을 안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종교 생활도 사회 운동도 보이지 않는 신념을 향해서 묵묵하게 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계속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느 날 떨어져나가는 분도 계시죠. 기쁨의 요소를 일상 속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이렇게 고통을 견뎌서 승리의 그 날을 이룬 후에 내 모든 기쁨을 누리리라’라는 식으로 계산을 하면 백전백패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천천히 가려고 합니다. (해야 할 일이) 두 개가 있으면 하나만 하고요. 밤을 새야 될 때는 밤을 새지만, 안 되면 그냥 ‘나도 몰라’ 하면서 자버려요. 내 몸이 원하지 않는 순간에는 움직이지 않거든요. 기쁘게 움직일 수 있을 때만 해요. 그게 제 원칙이에요.”
‘기쁨을 주는 타자와 연대하라’는 강연의 주제에 걸맞게, 마지막까지 이어진 이야기는 기쁨에 대한 것이었다. 목수정 저자는 “기쁘자고 하는 일인데 고통스러운 걸 감내해 가면서 나를 밀어 넣는 건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사적인 기쁨과 공적인 기쁨을 잘 조화시켜야 오래도록 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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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목수정 저 | 생각정원
불평등과 혐오로 점점 더 가팔라지는 세상, 명백한 참사 앞에서도 정의를 구할 수 없는 시대. 저자는 매일 밤 어디엔가 있을 진실을 찾아 조각난 글들 사이를 헤매고 쓴 글을 어디론가 띄워 보내며 세상과 소통했다. 그리고 그렇게 건져 올린 잃어버린 일상의 가치, 회복해야 할 시대정신을 책에 담았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iuiu22
2016.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