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30년차 베테랑 주간기자 원희복이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주요 현대사 현장 40곳을 방문하여 연재한 ‘르포’를 손질해 책으로 엮었다. 해방의 기쁨과 분단의 설움이 교차한 1945년 8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대한민국의 처절한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의 팽목항까지. 기자적 현장감을 살려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과거 사진과 최근 모습을 담은 사진 50장을 수록하며 파란의 현대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조명한다. 이를 통해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던 고 신채호 선생님처럼, 역사와 진실을 망각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독자들과 함께 한 저자 원희복으로부터 책 『르포히스토리아』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주간경향>에 연재된 글을 수정해 나온 책입니다. 새로 들어간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내용 중 크게 수정한 곳은 없습니다. 단지 출간 시기를 고려하여 시제를 맞추고, 이후 상황이 달라진 부분, 이를테면 쌍용차 사태 이후, 한상균 노조위원장이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된 상황 등을 보완했을 뿐입니다. 새로 들어간 이야기는 딱 한 곳 제주 4.3사건 현장(<제주 4.3평화공원>)입니다. 연재를 시작할 때 대상 목록을 만들어 시작했는데, 이런 저런 일정 때문에 가지 못하고 연재에는 넣지 못했습니다. 책으로 엮을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할 곳이라 생각돼 답사를 진행하고 글을 추가했습니다.
사건을 선택한 기준이 있었나요?
순전히 필자의 자의적 기준입니다. 필자의 역사 인식을 반영한 것이지요. 그러나 나름 균형을 잡다보니 정권별로, 시기별로 사건을 안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해방직후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예를 들면 지리산 빗점골 같은 곳)는 빠지고 상대적으로 다른 장소가 선택되는 경우도 있었지요. 어떻든 40개 사건의 선택은 전적으로 기자의 역사적 관점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취재 현장에서 사건에 관한 건물이나 기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셨습니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보존되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선 보통 사람들의 망각이겠지요. 무분별한 개발논리에 현장을 보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나 지자체, 학계 등 유관부서의 무성의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 일기 등으로 알 수 있듯 기록을 그토록 중시했던 우리 문화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정통성 없는 정권과 연속된 정치보복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통성 없는 정권은 자기 합리화를 위해 과거 기록을 말살하고, 정치보복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았던 것이지요.
오랫동안 같은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도 간간히 나옵니다. 증언자를 찾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사실 더 찾았어야 했는데 미흡하지요. 해방 후 70년 동안 40개 사건을 추려냈는데, 그 40개 사건 하나하나가 보통 큰 사건이 아닙니다. 한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방송 기획이 유명했는데, 사건마다 숨겨진 진실이나 비화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이를 혼자 일주일에 하나씩 재검증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었습니다. 더 많은 증언을 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군사 기밀 등의 이유로 취재하지 못한 장소도 있습니다. 개방하거나 취재하면 좋겠다는 장소를 꼽아주신다면.
대표적으로 청와대 인근에 있는 궁정동 안가 같은 것이 있지요. 지금은 모두 헐리고 딱 한 곳만 남아 있습니다. 현재 대통령 경호실장 공관으로 쓰는데 사진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몰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기사를 썼는데, 청와대 경호실에서(청와대 경호실에도 기자출신의 공보담당이 있더군요) 보안상의 이유로 온라인 기사의 사진을 빼달라고 사정하더군요.
분단의 현장인 판문점도 유엔군사령부에 취재 허가를 얻어야 했어요.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땅이 아니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도 유엔사 허가를 얻었으니까요. 시급히 찾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방대한 자기고백서를 냈던 국정원이 다시 대선에 개입하고, 세월호 참사와 이후의 졸속 대처 등 ‘시대를 역행한 구태의 재연’이 계속 나타납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냄비근성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모든 것을 정략화 하는 그릇된 정치문화가 큰 문제입니다. 요즘 정치판은 모든 문제를 정략이라는 블랙홀에 넣어 휘저어 버립니다. 이런 가운데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언론은 불편부당 핑계를 대고 기계적 중립에 머물러 있습니다. 학자나 전문가들도 뒷짐을 지거나 이 정략의 이전투구에 같이 뒹굴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은 정치인이 토목(과학)을 정략화 하는데 전문가들이 동조하거나 침묵한 사건이고, 세월호 참사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정략화한 대표적 사건이라고 봅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팽목항까지’, 1945년부터 2014년까지 역사를 이었습니다. 이 기록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역시 ‘망각’입니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 문제나, 이후 이념 대결의 문제, 민주화 문제 등이 모두 이 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서 지적대로 정권은 자신의 잘못을 정략적으로 희석시키려 하거든요. 이를 막는 길이 바로 ‘깨어있는’ 시민, ‘역사를 기억하는 시민’에게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했고, 비극적인 사건은 말할 할 것도 없이 한국전쟁이지요. 그런 비극을 겪고, 분단이라는 상처를 어루만지며, 우리가 얻은 중요한 역사적 교훈은 남북이 화해와 공존을 통해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법에도 평화통일을 명시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전쟁도 불사하자, 응징하자는 주장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이 있어요. 종편은 물론 공영방송 마저 긴장을 부추기고 있어요. 이것은 역사의 몰이해를 넘어 헌법위반이자, 민족적 죄악이라고 봅니다. 첨단 무기가 망라되는 현대전에서 일주일 만에 수백만 명이 죽는 시나리오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비극이 다시 재연돼도 좋다고 하다니, 이런 몰역사적 인식이 어디 있습니까.
민주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우리는 정권교체 등을 통해 탈권위주의를 경험했습니다. 소중한 역사적 경험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과거로 되돌리겠다는 겁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하고, 시위대에 직격으로 물대포를 쏴 중태에 빠뜨리고, 해직 언론인을 양산하고, 국정교과서를 다시 만들고……. 세월호 참사 역시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제가 하고 싶은 주장은 역사를 ‘기억하라’, ‘잊지 말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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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히스토리아 원희복 저 | 한울
이 책은 30년간 현대사의 현장에서 기자로 활동해온 저자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의 현장 40곳을 직접 방문하고 그곳에 얽힌 사람과 사건을 기록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기자적 현장성을 살린 ‘르포’를 묶어 70년에 걸친 파란 많은 한국의 ‘히스토리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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