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문학의 출발, '소설이 없던 시절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 전집이 출간되었다. 소세키가 사망할 때까지 12년 동안 집중적으로 써 내려간 장편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며 '지금의 번역'으로 만날 수 있는 국내 첫 전집.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 “필요 없는 문장은 단 한 줄도 없다”라 평한 송태욱 번역가는 소세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의 문체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4년 동안 14권짜리 전집을 번역한다는 일, 그 길고 긴 마라톤의 결승 테이프를 끊은 번역가 송태욱의 소회가 궁금하다.
4년 만에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번역을 마치셨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꼭 지나고 싶었던 고갯길 꼭대기에 이르긴 했으나 지나온 길을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볼 여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헐떡이고 있을 뿐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지나고 싶었던 길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풀베개』를 번역할 때만 해도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도 하고 소세키라는 산의 경치를 즐기며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설레는 마음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로 길은 점점 그저 올라가야만 하는 고갯길이 되었고 저는 땅바닥만 쳐다보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이젠 오른다는 의식조차 없이 무거운 발걸음만 한 발 한 발 내딛을 뿐이었습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경치를 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갯길을 다 올라온 지금, 저는 그동안 둘러보지 못한 경치를 내려다보기보다는 최소한 여기와는 다른 경치가 보고 싶을 뿐입니다. 이는 제가 이 경치를 얼마나 좋아했고 아마 지금도 좋아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지금은 단지 물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세키의 평전을 번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전을 보니 그동안 제가 봐왔던 경치가 더욱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여러분도 만약 평전을 보고 그의 작품을 다시 생각한다면 소세키라는 작가가 얼마나 놀라운 작가인지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로 무척 아픈 작가입니다.
100년 전 소설가인 소세키의 작품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저는 소세키의 작품과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그의 작품을 번역하고 싶어 했을 때의 느낌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과 사회와 철저하게 불화하며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끝까지 고수한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컨대 이제는 별로 도움이 안 되고 전보다 성능 좋은 물건이 많이 나오지만 여전히 시간과 품이 드는 물건을 자신의 철학대로 철저하게 만들어내는 장인을 볼 때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국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고 철저한 이해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텐데, 근본적으로 그 인간과 사회가 100년 전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작품이 여전히 사랑 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작품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 작품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우미인초』입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김난주(열린책들) 씨의 번역본이 너무 좋아서 피해 가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꼭 피해 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이미 난 길에서 편한 마음으로 제 감각이나 리듬에 따라 걷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고, 그래서 정말 표현 하나하나를 즐기면서 번역한 것 같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읽어내겠다는 목적 없이 그냥 아무 데나 펼쳐서 찬찬히 읽을수록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예컨대 『풀베개』에서 공부하느냐는 여자의 질문에 화자가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책상에 이렇게 펼치고, 펼쳐진 데를 적당히 읽고 있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렇게 책을 읽는 방식은 소세키의 다른 소설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우미인초』는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작품은 처음입니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멋진 표현들이 많아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소세키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가장 소세키적인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저기에 함정이 널려 있고 그때마다 수수께끼가 튀어나오는데 그걸 풀 때까지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번역하는 일이란 수수께끼 풀이의 연속이지만 이 책의 수수께끼는 가끔 한나절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번역해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그런 작품이어서 특별히 애착이 갑니다.
20년 가까이 번역가로 활동하고 계신데, ‘번역가’라는 직업이 가장 즐거울 때는 언제이신가요?
번역할 새로운 책을 받을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아직도 새로운 책을 받으면 약간 흥분됩니다. 그리고 바로 첫 페이지부터 번역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대체로 금방 지루해지고 다음 책이 번역하고 싶어집니다. 요컨대 번역이란 지금 번역하고 있는 책이 가장 지루하고 다음에 번역할 책이 가장 설레는, 그런 일의 연속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대체로 북카페에서 작업하는데 제가 단골로 가는 가게는 몇 년 안에 어김없이 문을 닫고 맙니다. 지금까지 대여섯 군데를 망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카페를 옮겨 다니며 일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번역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나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수는 대체로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더라도 확인해보는 귀찮음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번역자에게 요구되는 성실함일 것입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경우, 제대로 알 때까지는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어 잘못을 반복한다는 게 번역자의 숙명적인 함정 같습니다.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물어보고 찾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도서를 기획ㆍ발굴하시는 경우도 많으신데, 국내 독자에게 소개하실 때 가장 유의 깊게 살피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이런 책이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걸 자꾸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한두 번 헛발질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소개한다면 팔리든 팔리지 않든 최소한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출판사야 국내 독자의 반응에 민감해야 하지만 번역자인 저로서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게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불특정한 독자를 따라가는 것보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어보는 게 순서인 것 같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역자 후기에서 “힘 빼고 즐기며” 읽으라는 점을 강조하셨는데, 처음 소세키의 작품을 읽기 시작하는 독자에게 소세키를 읽는 자세를 추천해주셨으면 합니다.
보통 작가가 소설에 뭔가 주제를 던져놓았을 테니 독자는 작품을 읽으면서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과서를 통해 문학을 접하기 시작한 업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발견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렇게 되면 작품 전체가 좋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미인초』에서 “자극의 주머니에 대고 문명을 체로 치면 박람회가 된다”라는 한 문장만으로 저는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한 문장만으로 이 작품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풀베개』는 두 번째 단락인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이 한 대목으로 저는 충분합니다. 객관적으로 좋은 작품, 작가는 없습니다. 자신에게 좋으면 그만입니다. 예컨대 연인과 헤어진 사람의 마음을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이상으로 공감하게 해주는 고전은, 최소한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
나쓰메 소세키 전집 세트 (전11권) 나쓰메 소세키 | 현암사(전집)
해답이 없는 물음을 던지고 고민하는 청춘의 ‘창백한 고뇌’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