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앙금이 이렇게도 풀리는구나.” <무한도전> 릴레이 웹툰 특집 편에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가 출연한 장면을 보며 복잡미묘한 심사에 잠긴 만화팬이 나 혼자는 아니었으리라. 유재석 본인이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주호민 작가와 유재석 사이엔 썩 유쾌하지 않은 전사가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 양서를 소개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코너인 MBC <느낌표>(2001~2007)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의 한 에피소드에서, MC 유재석과 김용만은 인터뷰에 응한 시민이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슬램덩크>나 <북두신권>, <미스터Q> 등의 만화를 이야기하자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것은 마치 만화는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양서’의 카테고리에 미치지 못한다는 선언과도 같아 보였고, 이에 격분한 전국의 만화팬들과 만화가협회는 MBC에 항의했다. 결국 이 갈등은 언론중재위의 사과권고와 ‘책을 읽읍시다’ 한국 만화 특집을 거쳐서야 간신히 봉합이 됐다. 이 때 격분했던 아마추어 만화가들 중엔 20대 초반의 주호민도 있었다. 이런 전사를 아는 사람들에겐 유재석이 만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두 사람이 한 앵글에 잡혀 다정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이 조금은 독특한 감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당혹스러운 과거와 수많은 실패가
오늘의 ‘유느님’을 낳았다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이들의 거칠었던 과거, 다듬어지지 않은 옛 실수를 보는 건 분명 당혹스러운 일이다. 특히 유재석처럼 압도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본인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언급하는 것처럼, 유재석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약 그가 콩트 코미디에서 배역을 받지 못해 좌절하다가 끝내 코미디언으로서의 길을 접었다면, KBS <서세원쇼>(1996~2002) ‘토크박스’ 이후 밀려드는 패널 섭외 정도에 만족했다면, 무엇보다 KBS <남희석, 이휘재의 한국이 보인다>(1999~2001)에서 처음 선보였던 ‘지존을 찾아서’ 코너의 실패 이후 비슷한 포맷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면 오늘날의 유재석을 보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 시기 유재석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포맷을 고안해 왔고,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여 왔으며, 그 포맷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우리는 그 포맷을 ‘유재석 식 오합지졸물’이라 부른다.
‘유재석 식 오합지졸물’을 거칠게 정의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찌질하고 못난 사람들이 모여서 좌충우돌하는 쇼.’ 좀 더 상세히 적자면, 예닐곱 명 정도의 멤버들이 메인 MC를 중심으로 모여 성공하기 어려워 보이는 미션에 도전하면서 그 준비과정에서 망가지고 뒹구는 모습을 보여주는 버라이어티 쇼. 물론 이 포맷이 유재석이 처음으로 고안했다거나 유재석만이 잘 하는 포맷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연예인들이 이런저런 미션을 배우고 도전하는 포맷은 주병진이 노사연과 함께 90년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선보인 ‘배워봅시다’ 코너가 효시격이라 하겠고, ‘무달’ 이경규, ‘허우대’ 박수홍, ‘만갑형님’ 조형기와 ‘태릉인’ 윤정수 등 명확한 캐릭터성을 내세우며 안정적으로 ‘오합지졸물’을 안방극장에 안착시킨 것은 <일요일 일요일 밤에> ‘대단한 도전’(2002~2005)이었으니까. ‘대단한 도전’이 대성공을 거두는 동안, 정작 유재석은 반복된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다. KBS <남희석 이휘재의 한국이 보인다> ‘지존을 찾아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2000), KBS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천하제일 외인구단’(2003), 2004 SBS <일요일이 좋다> ‘유재석과 감개무량’(2004)등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었다.
대중에게 처음으로 캐릭터 기반 오합지졸 버라이어티를 설득시키고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은 공교롭게도 유재석이 아니라 이경규와 김용만이 선보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 ‘대단한 도전’이었다. 조연출이었던 김태호는 훗날 유재석과 함께 <무한도전>을 이끌게 된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대단한 도전’ ⓒ MBC. 2002~2005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이미 수 차례 이런 저런 이유로 좌절을 맛본 분야, 그것도 자신보다 더 잘 해내고 있는 후발주자가 있는 분야를 기회가 닿을 때마다 꾸준히 도전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는 행보는 아니다. “해봤는데 안 되더라”는 실패의 누적은 단념의 좋은 알리바이가 되어주니까. 심지어 그 당시 유재석이 ‘오합지졸물’ 말고 할 포맷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압도적인 1인자는 아니었다 해도 당시 유재석은 이미 A급 MC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가 ‘오합지졸물’에서 반복적인 실패를 거듭하던 시기 진행하던 다른 프로그램들의 목록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MBC <목표달성 토요일>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2000), KBS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MC대격돌 공포의 쿵쿵따’,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이상 2001), KBS <해피투게더>,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MC대격돌 위험한 초대’, SBS <실제상황 토요일> ‘X맨’, <진실게임>(이상 2003),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SBS <일요일이 좋다> ‘반전드라마’(이상 2004)… 열거하기도 숨가쁜 성공의 사이사이에, 기회만 닿으면 예전에 실패했던 포맷을 다시 들고 온 것이다. 마치 이 실패를 반복할 밑천을 쌓기 위해 다른 곳에서 성공을 거둬왔다는 듯.
훗날 <무한도전> ‘클래식’을 상징하는 요소가 된 유니폼, 기나긴 준비과정, 못난 멤버들 따위의 특성은 이미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천하제일 외인구단’(2003)에서 등장한 바 있다. 새로울 것이 없는, 반복해서 실패했던,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포맷.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천하제일 외인구단’ ⓒ KBS. 2003
그 시기의 유재석은 무슨 생각으로 계속 같은 실패를 반복했던 것일까? 2006년 <매거진t> 창간 특집 인터뷰에서 유재석은 “자라오면서 받았던 콤플렉스들, 설움들을 모아서 표출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음 속에만 간직했던, 평생 간직해야할지도 몰랐던 소망들을 하나씩 꺼내”는 ‘자아실현’ 버라이어티. 2008년 1월 <코스모폴리탄>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도 말했다. “멋진 분들이 나오는 버라이어티가 많을 때” 자신은 “많이 부족”한 이들도 “그냥 밟지만 말”고 지켜봐주면 “우리도 꽃 피울 수 있”다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풀이라고 해도 좋고 신념이라도 해도 좋을 유재석이 제 확신을 밀어붙이는 과정은 흡사 사무엘 베케트의 <최악을 향하여>(Worstward Ho)의 한 구절을 연상시키는 여정이었다.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그리고 그 여정은 끝내 MBC <목표달성 토요일> ‘무모한 도전’(2005)을 만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자신보다 한 발 앞서 ‘오합지졸물’의 성공사례로 기록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대단한 도전’의 조연출 출신인 김태호 PD와 함께.
(다음 편에 계속)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