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트럭이 골목으로 들어와 멈춘다. 차창으로 눈물을 훔쳐가며 글을 쓰는 남자가 보인다. 글 쓰는 과자장수 ‘박명균’이다. 트럭은 그의 생계 수단이자 집필실이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와 술래가 사라진 골목의 풍경, 사람들 마음의 무늬에 대해 글을 쓴다. 삶의 밑바닥에서부터 마음의 근육을 단련해 온 그는 글 속의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언제까지 술래 할 테니까 함께 놀자.” “마지막까지 옆에 있어 줄 테니까 힘들어도 버텨보자.”
과자장수라니 익숙하고도 낯선 직업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글 쓰는 과자장수라니까 상당히 낯설 거 같아요. 과자장수도 낯선데 말이죠. 아마 세상에서 글 쓰는, 책을 낸 과자장수는 제가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요. 하하. 저는 온갖 과자회사의 제품들이 모이는 큰 총판에서 매일 과자를 떼어서 골목 곳곳에 있는 구멍가게나 마트, 슈퍼, 문방구, 서점 등등에 과자를 납품해요. 일주일에 한 100곳 정도 들르는데, 한 10분 정도 머물면서 전날 주문 받은 과자들을 진열대에 잘 정리를 해놓죠. 어떤 주인은 제 솜씨가 예술이라고 해요. 이 일을 17년 정도 했는데, 요즘은 예전처럼 과자를 많이 먹지 않을뿐더러 대기업 편의점들이 골목으로 들어와서 작은 가게들이 망하고 있어요. 점차 판로가 없어지는 건데, 구멍가게뿐 아니라 과자장수들도 많이 힘들어 해요. 그런 얘기가 『나는 언제나 술래』에 잘 담겨 있어요.
과자장수에게 글이란 어떤 건가요? 그리고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고등학교 때 문예반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어눌한 글쓰기였는데 솔직하게 쓰다 보니 친구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당시 참교육 운동이 한창일 때 친구들과 고등학생운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고, 책도 한 권 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대학진학은 하지 않았고, 노가다를 시작했는데 학창시절과 그 때 읽은 책이 천 권 정도 돼요. 사람들과 책을 읽으면서 글에 대한 맛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과자장수는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정말 열심히 일해야 겨우 먹고 사는 정도니까요. 그러다 페이스북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우연히 다시 글을 쓰게 되는 계기가 있었어요. 페이스북 친구들의 응원이었죠.
일하면서 글머리를 잡아요. 과자트럭을 타고 일하다 보면 어떤 글을 쓸 것인지 마음에 스며드는 소재가 있는데, 그러면 하루 종일 마음에 두고 일을 합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야기들은 짬짬이 기록하고요.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감정을 유지하는 거예요. 마음에서 머물면서 감정을 건드리는 어떤 느낌을 잃어버리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글 쓰다 울게 되기도 하는데 그땐 가게에 울면서 들어가기도 해요. 덕분에 수금도 잘 되고요. 글의 의미는, 뭐, 내 글을 읽고 한 사람이라도 울 수 있으면 돼요. 크게 웃거나.
맹긴이는 어떤 사람인가요?
전남 고흥 두원면 대산부락에서 7살 때까지 살았어요. 그때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맹긴이였어요. 그냥 쉽게 부르는 이름이었죠. 서울로 이사 와서 초등학교를 다녔죠. 신월동에서요. 골목에서 대장 노릇을 조금했는데, 민주적인 대장이었다고 생각해요. 하하. 중학교 때 멋모르고 참가한 독서모임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고 마음이 변했어요. 사람도 바뀌었고요. 그리고 명덕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고등학생운동을 접하게 되었고, 열심히 활동했죠. 덕분에 고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했고요. 그 후 노가다를 하다가 군대를 다녀왔고, 고등학교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후배와 결혼을 했고요. 이것저것 하다가 친구의 권유로 과자장사를 시작했어요. 생활에 치여 그동안 글 쓰는 것을 까먹고 있었죠.
27년 만에 다시 책이 나왔는데, 대단한데요?
당시 저희 동아리는 정말 치열했어요. 그게 청춘이잖아요. 하나에 자신을 모두 던지는. 진심이 아니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진심 경쟁을 하듯 열심히 운동하고, 글 읽고, 글 쓰고 했죠. 누구라도 자신의 진심을 의심받는 건 치욕으로 생각했었죠. 그 결과가 학생들 글 모음집이었어요. 1990년 동녘에서 나왔는데, 제목이 『불량제품이 부르는 희망노래』와 『이제 거진 어른인걸요』였죠. 당시에 꽤 유명했어요. 그리고 제 이름을 단 책 『친구야 세상이 희망차 보인다』가 나왔죠. 두 책에 담긴 원고들과 새로 쓴 원고를 모아서 냈죠. 한 만 권 나갔어요. 나중에 안 건데, 소설가 하명희가 몇 년 후배인데, 당시엔 모르는 사이였죠, 당시에 하 작가는 친구들과 제 책을 교과서로 글 공부를 했다고 하네요.
과자장수에게 페이스북은 어떤 세상인가요?
페이스북이 계기였죠. 글을 가지고 실시간으로 쌍방향 소통을 하는 게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문예반 시절 아이들과 모여서 떠드는 그런 느낌이 나는 거죠. 그리고 전혀 뜻밖의 인물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어요.
제가 아는 동생네 집에 놀러 갔다가 거기서 하명희의 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보게 되었는데, 그 소설은 고등학생운동이 주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하명희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는데, 페이스북에서 만나게 된 거죠.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죠. 근데 별 반응이 없더라고요. 하하. 제가 제 마음을 담은 첫 글을 쓰고 나서 제대로 인사했어요. “박명균이 그 박명균 맞냐” 하면서요. 어쩌면 그당시 제 마음에 하명희 작가가 뮤즈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허물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됐죠. 참 신기하죠?
나는 언제나 술래, 그 의미는?
골목들이 대기업에 점령당하고 있는 건 아실 거예요. 자기 가게를 가진 사장들이 견디기 점점 더 힘들어져요. 17년 동안 골목을 다니면서 느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처럼 그 가게들 덕에 먹고 사는 사람들도 힘들어지고요. 골목마다 힘든 사람들이 많아요. 다들 안 그런 척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더 아파요.
어릴 때 숨바꼭질하잖아요. 꼭 그게 아니더라도 놀이마다 조금 골탕을 먹게 되는 아이도 있고요. 동네마다 골목마다 술래 한 명은 있었죠. 꼭 술래가 나쁜 건 아니었어요. 무시를 당할 때도 있지만, 좋은 대장 만나면 잘 챙겨주기도 하니까요. 대부분 나이가 어린데 골목 형들과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 그러니까 막내의 막내들이 그 역할을 하게 되잖아요. 근데 나중엔 개들이 또 대장이 돼요. 어쨌든 골목은 술래를 기억해요. 아마 그 골목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아이일 거예요. 가장 먼저 와서 애들을 기다리고, 가장 늦게 집에 가고. 저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어요.
대기업 광고가 판치는 대로가 아니라 골목골목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우리 친구들, 그리고 거기서도 힘들어하는 술래들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물론 저도 그 중 한 명이고요. 그리고 누구라도 술래가 될 수 있잖아요. 미리미리 술래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해요. 같이 힘내자는 응원의 책이에요.
“내가 언제나 술래해 줄게, 우리 함께 놀자!”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다음 책 낼 계획이 있나요?
아직까지는요. 글을 쓰면서 정말 힘들었거든요. 울면서 운전하고, 울면서 일하는 거, 그리고 그 감정을 계속 들고 다니는 거, 쓸데없는 짓 한다고 아내에게 한 소리 듣는 거. 무엇보다 없는 시간 쪼개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페이스북 친구들의 응원 세례는 정말 좋지만, 일단은 좀 쉬고 싶고요.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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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술래박명균 저 | 헤르츠나인
과자트럭이 골목으로 들어와 멈춘다. 차창으로 눈물을 훔쳐가며 글을 쓰는 남자가 보인다. 글 쓰는 과자장수다. 트럭은 그의 생계 수단이자 집필실이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와 술래가 사라진 골목의 풍경, 사람들 마음의 무늬에 대해 글을 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