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서울남부교도소에서는 특별한 수업이 진행됐다. 2013년, 서울대학교와 법무부는 수용자 대상 ‘인문학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3년 동안 60시간에 걸쳐 수용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해왔다. 이러한 인문학 교육과정은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실시한 이래 전국 교정기관으로 퍼져 각 지역대학 등의 우수 강사진의 도움을 통해 문학ㆍ역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기도 했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인 인문학이야말로 교도소에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낮은 인문학』은 철학, 종교, 역사, 문학 등 각 분야의 대표 교수 8인이 돌아가며 진행한 인문학 강의의 정수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교도소에서 강의를 들은 사람과 같이 과거의 자신을 성찰하고 변화시킬 용기를 얻는 건 어떨까? 공동 저자 중 한 분인 배철현 저자를 만나 강의 당시 에피소드와 책에 대한 소개를 들어보았다.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3년간 인문학 강의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울대학교가 법무부와 수용자를 위한 인문학 강의를 개설하기로 결정하여 기꺼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자신을 위한 온전한 삶을 깊이 생각하고, 그 결심으로 매일 매일 살 때, 항상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수용자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제가 수용자의 입장이 되어 잠시나마 나 자신을 위한 고독과 성찰의 시간을 가진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도소에서 진행됐던 인문학 교육의 이름이 ‘마아트 프로그램’이었는데, 마아트란 무엇인가요?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아트’는 인류 최초의 문명인 이집트 문명의 핵심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이집트어로 ‘마아’라는 형용사는 ‘적당한’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 ‘적당한’이란 의미는 ‘대충’이란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이 장소와 시간에 해야 할 최고의 선(善)을 알고 그것에 매진하는 모습을 이르는 용어입니다. ‘마아트’는 ‘마아’의 추상명사형으로 번역하지면 ‘자신에게 유일한 최선의 삶’ 정도가 될 것입니다. 저는 수용자들이 그 제한된 공간을 긍정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을 위한 최선의 삶을 찾는 시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서울남부교도소 수용자를 위한 인문학 과정을 ‘마아트 프로그램’이라고 지었습니다.
교도소에서 강연을 하시면서 느끼신 점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매번 교도소를 갈 때마다 인생의 소중함과 덧없음을 느꼈습니다. 초기에는 매 수업에 참여하여 사회를 보았습니다. 보람된 일 없이 보내는 일주일을 반성하는 거룩한 공간이었습니다. 수용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거의 모든 수용자들이 자신의 삶을 위한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것 같았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그 공간에 갈 때마다, 이전의 나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나로 변신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이 수용자들에게 전달되길 기도했습니다.
서문에 “수용자들이 모인 교실은 플라톤이 말한 ‘동굴’과 같았다”라고 표현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편견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을 받아, 일정한 세계관을 가지며 자신이 자란 환경의 노예가 됩니다. 배움이라는 것은 바로 이 편견과 무식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편협한 세계관을 강화하려는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플라톤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의 저서 『국가』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무식한 상태로부터 탈출하려는 ‘교육’을 받지 않는 한, 어두운 동굴 안에서 목과 팔다리가 동굴 벽만 보도록 족쇄로 고정되어 있는 포로들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남들이 불 앞에서 휘두르는 물건에 대한 그림자일 뿐입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남들이 정해 놓은 이데올로기나 관념에 너무 쉽게 매몰되고,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쓸데없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가장 큰 손해를 끼칩니다. 수용자들이 모인 교실은 그러한 자기 자신을 직시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공간, 그림자가 아니라 태양을 찾아 과거로부터 단절하는 자신을 만드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 기수 마지막 수업은 수용자들이 낸 에세이를 발표하는 시간”이라고 하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세이가 있으신지요.
마지막 수업은 수용자들의 독후감 발표로 진행했습니다. 수용자들은 지정된 도서를 읽고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발표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이들의 에세이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에세이보다 훌륭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자기 투쟁과 용서,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었습니다. 어떤 수용자는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가족을 용서하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또 자신을 이해하면서 눈물을 흘려, 모든 수용자들과 관계자들도 함께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컴패션(compassion)’을 말씀해주셨는데, 컴패션이란 무엇인가요?
‘컴패션’은 상대방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의 느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컴패션은 감동적인 영화나 이야기를 들을 때 잠깐 흘리는 눈물과는 다릅니다. 더 나아가 상대방을 그런 고통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과 행동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컴패션을 한자로 표현하면 ‘자비(慈悲)’입니다. 자비는 ‘상대방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자, 慈)’과 ‘상대방이 슬퍼하지 않도록 그 환경을 만드는 마음(비, 悲)’입니다. 컴패션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유일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패션(passion)’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깊이 몰입되어 있어 그 심연으로 내려간다면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도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패션(passion)과 컴패션(compassion)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현대인에게 왜 ‘골방’이 필요한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골방’은 자신을 위한 최선의 시간과 공간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삶을 정교하게 살고,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찰나를 사는 내가 지금 이 장소에서 해야 할 그 ‘하나’가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따라서 골방은 마술의 공간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하나’를 찾지 못하고, 남의 의견이나 전통, 관습에 기대어 산다면 그 삶에 허덕일 것이며 결국 공허해질 것입니다. 골방에서 자신을 위한 최선의 ‘나’, ‘또 하나의 나’를 매일 발견하는 삶이야 말로 행복(幸福)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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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인문학배철현,강성용,김헌,홍진호,김현균,장재성,박찬국,유요한 공저 | 21세기북스
이 책은 2013년부터 서울대학교와 법무부가 진행한 인문학 강의를 엮은 것으로 철학, 종교, 역사, 문학 등 각 분야의 대표 교수 8인이 펼쳐내는 인문학의 정수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성찰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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