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다 – 뮤지컬 <살리에르>
뮤지컬 <살리에르>가 2년여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대극장으로 자리를 옮긴 만큼 작품은 더욱 강렬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무대와 의상은 더욱 화려해졌고, 드라마는 깊어졌으며, 많은 넘버들이 수정되거나 추가됐다. ‘진일보한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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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01 살리에르 공연사진.jpg

 

모차르트를 죽인 건 살리에르였을까?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 비엔나에는 어두운 풍문이 떠돌았다. 그를 죽인 사람이 다름 아닌 궁정악장 살리에르라는 것. 살리에르는 소문을 부인했지만 정신착란 상태에 빠진 후 자신이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은 고해였을까 망상이었을까. 감춰진 진실은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고, 수세기가 흐른 뒤 뮤지컬 <살리에르?질투의 속삭임>(이후 <살리에르>)으로 재탄생했다.

 

정말 살리에르는 모차르트를 독살했던 걸까. 호기심에 사로잡힌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살리에르는 ‘그’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그가 모차르트를 죽인 거라고, 곧 자신도 그의 손에 죽게 될 거라고 말하는 살리에르. 그를 휘감은 공포의 실체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점점 뚜렷해진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처음 만났던 순간, 그 자리에는 ‘그’도 함께했다. 세 사람의 운명이 교차하는 시점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작곡은 수학으로 역사를 만드는 일”이라 믿는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불필요한 기교들로 채워져 있다고 지적한다. 모차르트에게 있어 음악은 “열정으로 흘러 넘쳐야 하는” 것이기에 어디에도 매이지 않아야 하지만, 살리에르에게는 그저 무질서한 상태로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리에르는 모차르트를 한낱 애송이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모차르트의 존재를 실감한다. 젤라스라는 이름의 ‘그’는 이 작은 변화를 부채질한다. 살리에르의 오랜 팬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그는 처음에는 살리에르의 음악을 칭송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모차르트 때문에 불안해지는 건 아닌지’ 살리에르에게 묻는다. 살리에르는 강하게 부정하지만, 단번에 오스트리아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모차르트와의 경쟁은 피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요제프 왕의 즉위식에서 음악책임자 자리를 두고 경합을 펼치게 되고, 갈등은 극에 달한다.

 

크기변환_07 모차르트(박유덕), 요제프(윤성원).jpg

 

 

살리에르,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다

 

뮤지컬 <살리에르>는 마치 한 편의 오페라를 감상하는 듯 한 착각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빛나는 음악이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어우러져 전율을 선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이다. 살리에르에게는 범인이 떨칠 수 없는 열등감과 질투가, 모차르트에게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비운이 느껴진다. 특히 살리에르가 느끼는 불안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에 기대야 했던 사람이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인물과 맞닥뜨렸을 때, 그가 느낄 감정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애써 이룬 것을 모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질투,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느껴지는 열패감… 그 한 가운데에 살리에르가 서있다.

 

너무나 복잡하고 뜨거운 그의 내면은 작품을 이끌어 가는 중심축이다. 살리에르 역에 더블캐스팅 된 두 배우, 최수형과 정상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들이 연기하는 살리에르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고 간다. 모차르트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끼면서도 애써 냉정함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그러다가도 이따금씩 자신의 능력에 대해 그리고 신을 향해 울분을 토해낸다. 배우 정상윤이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쏟아내는 게 많은” 작품인 것이다. 살리에르가 무너진다면 이야기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있으면서도 뮤지컬 <살리에르>가 호평 속에서 상연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두 배우의 열연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크기변환_08 살리에르(최수형), 젤라스(조형균).jpg

 

살리에르의 감정을 세세하게 되살린 연출의 힘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 아울러 뮤지컬 <살리에르>는 배우들의 호흡이 탁월한 작품이다. 초연에 이어 다시 한 번 무대에 오르는 젤라스 역의 배우 김찬호와 조형균, 모차르트 역의 박유덕은 물론이고, 새롭게 합류한 허규, 채송화, 이하나 역시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녹아 들었다. 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앙상블과 황홀한 음악, 진한 공감을 담아낸 뮤지컬 <살리에르>는 3월 13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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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