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지문을, 같은 시간 동안 풀어도 누구는 1등급이고, 누구는 5등급입니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이와 관련해서 시선추적기(eye tracker)를 이용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아, 시선추적기가 뭐냐고요? 말 그대로 내 시선이 어디에 얼마나 있었는지 분석해주는 장치입니다. 저도 심리학과 대학원 다닐 때 써봤는데 매우 신기합니다. 컴퓨터와 연동된 장치가 시선을 다 분석해서 어디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였는지 다 분석해줍니다. 사람들이 글이나 광고를 어떤 방식으로 인지하는지 분석할 때 곧잘 활용됩니다.
참고로 이 장치는 네이버 본사 20층에도 있습니다. 2005년부터 이 장비를 들여와 사용자들이 검색, 광고를 어떻게 보는지 추적하는 연구를 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년 전 네이버 검색화면 개편 시 시선추적기로 연구한 결과가 중요하게 반영되었다고 하고요. 네이버 로고 위치, 로그인 창 위치 하나하나가 다 치밀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고 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1980년대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시선추적기를 이용해서 능숙한 독자와 미숙한 독자에게 같은 글을 두 번 이상 읽게 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가 매우 재미있습니다. 미숙한 독자는 처음 읽을 때나 두 번째 읽을 때나 시선의 움직임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능숙한 독자는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가장 중요한 내용에 시선이 오래 멈췄고, 두 번째 읽을 때는 덜 중요한 부분에 더 오래 멈췄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글을 잘 읽는 사람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구분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글의 핵심을 파악하고, 두 번째 읽을 때는 구체적인 세부 내용에 신경을 쓸 수 있는 것이죠. 이는 밑줄을 그으며 글을 읽는 것과 비슷합니다. 밑줄을 긋는 동안 시선이 오래 머물게 되어 해당 부분을 더 곱씹어 보게 되니까요. (글을 못 읽는 학생들은 중요하지도 않은 곳에 밑줄을 죽죽 그어서 문제입니다.)
국어영역 1등급을 원하는 수험생이라면 일단 중요한 내용과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구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 능력이 길러지지 않고는 1등급을 꿈꿀 수 없습니다. (추가적으로 더 필요한 사항은 추후 칼럼에서 더 다루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어의 기술0』(2016) 독서 편에서는 독해 시 어디에 좀 더 시선이 머물러야 하는지 크게 7개의 지침을 제시했습니다.
지침1. 반복횟수가 많은 개념이 핵심이다.
지침2. 개념을 정의하는 부분에 주목한다.
지침3. 접속 표현에 주목한다.
지침4. 개념 간 관계를 파악한다.
4-1. 개념 간 대조 관계를 파악한다.
4-2. 개념 간 포함/묶음 관계를 파악한다.
4-3. 개념 간 인과 관계를 파악한다.
4-4. 개념 간 순서 관계를 파악한다.
지침5. [질문]에 대한 [답변]에 주목한다.
지침6. [문제]에 대한 [해결]에 주목한다.
지침7. [판단/주장/결론]과 [근거/이유/전제]에 주목한다.
이 지침에 입각해서 의식적으로 반복연습하세요. 익숙해지면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눈이 중요한 부분에 더 오래 머무를 겁니다.
덜 중요한 세부적인 내용은 어떡하냐고요? 문제 풀다가 '필요하면' 그때 되돌아가면 됩니다. 글을 읽다가 되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어디로 되돌아가야 할지 모르고 글 전체를 두세 번씩 읽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 문제와 관련된 부분에 정확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어디가 중요한지 알고, 글의 흐름을 알면 이것 또한 쉽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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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황
대학교 3학년 때, 기출문제를 분석해서 얻은 깨달음을 『국어의 기술』시리즈로 출간했다. 전공도 국어교육이 아닌, 일개 대학생이 낸 책은 이후 7년 간 15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공군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쳤으며, 매년 1,000만원 이상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감귤
2016.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