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시백(왼쪽)과 정아은(오른쪽)
사람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
정아은_ 꾸준히 창작을 하고 계시지만 소설집으로는 꽤 오랜만에 책이 나왔는데요. 소설집 『응달 너구리』에 대한 소개 좀 해주세요.
이시백_ 제가 앞서 농촌 소설을 두 권 냈고 『응달 너구리』가 세 번째인데요. 자꾸 제2의 이문구라고 불리다 보니까 청탁도 아마 농촌에 관련된 것을 자주 받았던 거 같아요. 그런 걸 쓰다 보니까 한 묶음이 되어서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특별히 농촌에 대한 서정적 감수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왜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사람을 지지하는가?’ 이게 저의 문학적 관심이었어요. 우리 과거를 돌아보면 농촌은 도시중심의 개발독재라고 하는 칠십 년대 군부독재의 가장 큰 희생자이면서도, 가장 큰 지지 기반이기도 했는데 그게 좀 모순이지 않나, 그 문제들이 지금 결과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최근 농촌의 현실이나 그런 일이 왜 일어나는가를 조망하고 싶었어요. 작품들의 모티브는 제 고향이 농촌이니까, 고향 어른들이나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의 친척들, 그분들의 모습이 소설에 투영되었어요. 그분들의 삶을 돌아보면 결코 행복하지 않았고 결코 자본적이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그 시절에 대해 향수 같은 게 있고 여전히 칠십 년대의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에 대한 풍자를 『응달 너구리』에 담았습니다.
정아은_ 왜 없는 사람들이 있는 정권을 지지하는가에 대한 답을 좀 찾으셨어요?
이시백_ 모습은 보이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었어요. 작은아버지를 비롯해서 친척들이 다 농촌 출신인데 도시로 올라와서 사는 모습을 보면요. 평생 남의 집 지키는 아파트 경비 같은 일을 하는데도 아직 자기 집도 없고 온종일 종편 방송만 보면서 지내세요. 한번은 삼성 이건희 씨가 구속된다는 뉴스를 보면서 숙부께서 탄식하며 걱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작은아버지가 왜 이건희 씨를 걱정하세요. 작은아버지를 걱정하셔야죠”라고 했어요. (웃음) 뭐 이런 것들이 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 오랜 고민을 소설로 쓰면서 얻은 한 가지 답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지지하기보다는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일수록 부자를 지지하는 거죠.
정아은_ 동경하는?
이시백_ 그런 거밖에는 제가 해석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걸 많은 독재 정권들이 악용하는 거 같아요. 현실보다는 욕망을 마구 부풀리고요.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 하면서 자기들만 잘살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잘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그걸 말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게 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게 지금도 해소되지 않았다고 봐요. 그래서 『누가 말을 죽였을까』, 『갈보 콩』에서 칠십 년대를 돌아보고 전도된 삶을 살았던 농민들의 모습을 풍자했다면, 이번 『응달 너구리』 에서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농촌과 농민들, 좀 어려운 말로는 계급배반이라고들 하더라고요, 자기가 속해 있는 계급에 대해 오히려 공격하고, 스스로 자학하는 그런 모순을, 칠십 년대가 아니라 바로 지금 농촌의 모습들과 그 안에 있는 전도된 의식들을, 이런 것들을 좀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평범한 말. 이 평범한 말로부터 소설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정아은_ 그런 이야기들을 단편으로 어떻게 쓰시는 편이세요? 한 번에 쭉 쓰시는 편인가요?
이시백_ 주제를 정해놓고 쓰는 건 아닌데 제 소설집들이 연작 성격이 많아요. 이문구 선생 같은 경우 농촌에 살면서 본 농민들의 생활상이 소설을 시작하게 하는 거 같은데, 저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사회구조나 계급적인 문제, 이런 걸 가지고 작품으로 쓰기 때문에 주제가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 인물들을 불러요. 문청 시절에는 내 얘기를 주로 썼지만, 어느 시기부터 소설가라는 것은 비워놓은 대접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떤 대사가 우선 다가오더라고요. 그 한마디 말이 오면, 그분이 나한테 들어오면…… 한동안 그 말을 머릿속으로 굴리고 다니다 보면, 그 사람이 말할 때의 입 모양이라던가, 한쪽 바지를 반쯤 걷어 올리고 흔드는 다리 모습 같은 게 선명하게 보여요. 그다음부터는 내가 쓰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이 하는 이야기를 녹취하듯이 쓰기 때문에 속도가 아주 빨라요. 단숨에 씁니다. 문제는 그분이 오셔야 하는데, 잘 안 오시면 아주 애먹어요. 그분이 나한테 들어올 때까지가 어렵죠. 단편 같은 경우는 대개 말토막 하나가 자극해요. “그걸 혼자 다 먹을 겨?” 이런 말 있잖아요. 평범한 말. 이 평범한 말로부터 소설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정아은_ 원래 쭉 시골이나 농촌에서 사셨나요?
이시백_ 많은 분이 제 책을 읽으면 충청도 사람이냐고…… 묻지도 않더라고요. 아예, 충청도 사람. (웃음) 경기도 사람이에요. 여주가 고향이에요. 경기도 여주는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가 맞닿는 지점이죠. 작은어머니도 충주 분이었고, 충청도 문화권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저는 돌도 되기 전에 여주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살았어요. 근데 어른들이나 친척이 여주에 있으니까 방학이나 명절 때 자주 내려갔죠. 신기하게 유년기에 죽 자라왔던 홍제동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어요. 대신 농촌에 대한 기억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요즘은 하루 이틀 전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일곱 살 때 시골집 마당에 떨어진 석류꽃이나 아침마다 뒤꼍 우묵샘에서 양치질할 때 쓰던 ‘치분’이 얹혀 있던 이끼 낀 바위까지 바로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보여요. 이 얘길 누군가에게 했더니 치매 증세라고 하더군요. (웃음)
정아은_ 분위기 좋다가 갑자기 치맨가 이렇게 되네요. (웃음)
이시백_ 농촌은 정서적으로 그렇게 각인되었던 거 같아요, 모천母川처럼요. 실제로 농촌 생활을 그렇게 오래 한 건 아니었어요. 그러다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꾸 부르니까 십칠 년 전에 남양주 산속에 주경야독하며 살겠다고 들어갔는데 이게 안 되더라고요, 농사짓는 게 만만치 않았어요. 농사는 제대로 못 했지만 제가 사는 동네가 사십 호쯤 되는데 거의 농사짓는 분들이라 농사에 대한 정서적인 교감 같은 건 좀 얻었죠.
정아은_ 읽으면서 또 하나 생각한 게 보통 농촌은 순박하거나 착하거나 이렇게 그려지잖아요. 그런 것도 어떻게 보면 약간 폭력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시백_ 뭐 그것도 도시인들이 꿈꾸는 욕망이죠. 〈전원일기〉처럼.
정아은_ 농촌 사람들이 그저 순박하기만 한 게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근데 소설에는 정치적인 대화도 많이 나오잖아요. 실제 농촌의 모습하고 어떤가요. 실제 대화에서 그런 말을 많이 하나요?
이시백_ 오히려 대화나 담론은 농촌이 더 풍성하다고 생각해요. 농민들은 책은 잘 안 보지만 이야기는 정말 탁월해요. 제가 도시에 사는 사람들하고 대화를 하면 건조하고 기계적이고 물리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데 농민들은 구어가 발달해 있어요. 고향 친구 중 하나도 시골에서 어려서부터 머슴 생활했던 사람이에요. 무학자죠. 그런데 그 친구가 말하는 거 보면 정말 내가 작가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이야기꾼이에요. 우리 농민들이나 전통적인 서민들이 하는 소통의 과정을 보면 이야기로 체득되는 선험적인 능력이 있는 거 같아요. 생활 속에서요. 그중에 하나로 관용적인 표현을 많이 해요.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속담을 인용하거나 비유하는 식으로요. 에둘러서 표현하는 말들이 아주 생생하고 문학적이에요. 그래서 저는 문예창작학과보다는 오히려 장날 국밥집에서 농민들한테 막걸리 사드리면서 이야기 나누는 게 탁월한 문학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말 자체가 ‘존재의 거푸집’이라고 해야 할까요.
정아은_ 그럼 소설에 나오는 여러 가지 비유나 속담을 실제 농촌에서도 많이 쓰나요.
이시백_ 이문구 선생이 그 작업을 탁월하게 해내셨어요. 그런데 나는 이문구 선생의 작품이 아니라 실제 농촌에서 친척들이 모여 얘기 나누는 걸 보면서 알게 됐어요. 그게 우리 서민들의 기본적인 스토리텔링이라고 봐요.
정아은_ 아, 그렇군요.
이시백_ 특히 충청도권이 그래요. 속내를 직설적으로 표현 안 하잖아요. 역사적으로 많은 탄압과 수탈을 경험했기 때문에 자기의 속마음을 곧바로 나타내지 않고 에두르거나 비유하거나 이렇게 하는데 그것이 대단히 의뭉스럽죠. 오히려 그런 이야기 구조에서 문학적 향기가 있어요.
정아은_ 음.
이시백_ 지금은 뭐 거의 도시화가 추진되어서 지역 정서가 많이 소멸했지만, 지역마다 성격이 달라요. 성미가 곧아서 속내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농촌이 있다면 호남이 그래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피해가 많잖아요. 바른 소리 많이 해서. (웃음) 그런데 충청도는 절대 자기 속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죠. 도시에서는 배가 고픈데 친구가 밥 먹고 있으면 “나, 배고프니까 빵 좀 줘”, “나눠 먹자” 이렇게 말하지만, 충청도 식으로 말하면 “그거 혼자 다 먹을 겨?”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하잖아요? “아침부텀 웬 빵이여?” 뭐 이런 식으로.
정아은_ (웃음) 그러면 같은 농민이라도 전라도하고 충청도랑 다르겠네요.
이시백_ 언어적으로 충청권과 호남권은 비슷한 면이 많아요. 최근 관심 있는 게 영남권 작업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최근에 실세 지역이라서. (웃음) 공부를 좀 해보니까 아주 특이하더라고요. 충청이나 호남의 방언들은 도 단위로 좀 묶임이 있는데 영남은 동네마다 다르더라고요. 상주, 안동, 부산, 대구가 전혀 다르더라고요. 산 하나만 넘어도 말투가 달라지고.
정아은_ 왜 그럴까요?
이시백_ 전통에 대한, 자기 것에 대한 자부심 내지는 지키려는 정신이 강한 것 같아요. 말 자체가 ‘존재의 거푸집’이라고 해야 할까요. 말이 그것들을 완고하게 지키는 역할을 했던 거 같아요.
정아은_ 그럼 영남 지역은 충청이나 호남보다 농촌이 그나마 많이 보존, 그러니까 살아남아 있는 편인가요?
이시백_ 소멸했다고 봐야죠. 공업화되면서. 많이 개발되었으니까요. 그래도 소위 지배계급들의…… 향교라든가 서원 중심의 유교 문화 같은 건 다른 지역보다 탁월하게 남았겠죠.
왜 분노하지 않는가. 속았다는 것에 대해서 왜 저항하지 않는가
정아은_ 소설집의 제목이 원래 ‘열사식당’이었다고 들었어요. ‘열사식당’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궁금해요.
이시백_ 농촌 소설을 쓰게 되었던 동기가 농민들에 대한 애정이라든가 농촌에 대한 서정적 감수성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를 농촌 소설가라고 분류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 당혹스럽더라고요. 제가 관심 있는 문제는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거친 뒤에도, 독재정권의 두목급인 사람을 백담사에도 보내고 감옥에도 보냈는데도, 여전히 보수나 수구적인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도박판에 비유해서 죄송합니다만, 도박할 때 내가 잘나가는데 자리 바꾸자고 하면 되게 싫잖아요. ‘당신 잘 따는데 나랑 바꿔 앉아요’ 하면 싫어해요. 판을 바꾸는 걸 싫어하는 거 이게 보수주의거든요. 기득권들은 판 바꾸는 걸 싫어하는 거예요. 그런데 없는 사람들은 바꾸자고 해야 하는데 없는 사람들도 바꾸는 걸 싫어하는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선배 되는 김진경 작가에게 물었더니 물이 끓을 때 위는 끓지만, 밑은 여전히 미지근하다는 거예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거죠. 그래서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고 사회적으로 진보하는 게 정치인들만 바꿔서는 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아무리 전두환 백 명을 감옥에 가둬도 민중이 변화하지 않으면 이 사회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빠르게 진보할 수 없다는 거죠. 민중이 어떻게 수구화되고, 독재 정권을 지지했던 기반이 무엇인가에 대해 문학적 관심이 있었어요. 그중 첫 번째로 작업했던 게 농촌이죠.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가장 강력한 지지표를 던진 게 농민이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은 정말 덕을 봤는가, 행복해졌는가. 덕을 보긴요.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라고 자처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농민에게 해준 건 아침마다 ‘새벽종이 울렸네’ 하며 들깨워서 품삯도 안 주고 부역시킨 거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새마을운동이 성공 사례라고 지금 그 따님께서 외국에 전파하고 있어요. 어떤 책에 보니까 농촌의 부채가 갑자기 급증하는 시기가 새마을운동 이후에요. 도시와 농촌이 이렇게까지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게 그 때문이고요. 그런데도 농민들은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라니까 심정적으로 지지했던 거 같아요. 이용당한 거죠, 뭐. 결국은 도시 중심으로 개발하고 농민들의 유일한 재산 수단인 쌀값은 동결해서 마음대로 못 올리게 하고 공산품은 마음대로 올리고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전만 해도 소위 자식들 대학 보낸 부모들이 다 농민들이었잖아요. 소 팔아서. 우골탑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농사짓는 아버지를 용돈으로 먹여 살리고 있잖아요. 전도가 된 거예요. 농촌과 도시가. 그러면서도 이런 것들에 대해서 왜 분노하지 않는가. 속았다는 것에 대해서 왜 저항하지 않는가. ‘열사식당’이라는 제목을 통해 이렇게 민중이 어떻게 기만당하면서도, 있는 이들 편에 기울어져 있는가를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시백_ 또 다른 보수화된 지지기반으로 한쪽에 농민이 있었다면 또 한쪽에는 잘못된 교육이 있잖아요. 국정 교과서 문제도 요새 시끄럽고 특히 사립학교가 완강합니다. 뭐 박근혜 대통령도 예전에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로 길거리에 나와서 저항하고 그랬죠. 복면까지는 안 썼지만. 누가 그러더라고요. 국가보안법 없애는 거보다 사립학교법 고치는 게 더 힘들다고요. 아주 완강하죠. 그래서 사립학교에 대한 문제를 다룬 교육 소설을 썼어요. 어떤 분은 나를 제2의 이문구라고 믿었는데 이 작가의 행보를 보니까 농촌 소설을 썼다, 뭐 교육 얘기를 썼다, 금융 얘기를 썼다 하니까 어지러운 작가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나는 내 나름의 의도가 있어서 차곡차곡 작업을 해온 셈이에요.
정아은_ 그 교육 소설의 제목이 뭐예요?
이시백_ 《종을 훔치다》라는 세계적 명작이지요. (웃음)
소설가 이시백
“우리가 쓰는 어휘는 어떤 평론가나 어떤 대학 교수보다
시골장에서 만난 나물 파는 할머니나 국밥집 할머니가 더 풍성할 수 있어요.”
정아은_ 무르춤하다, 엽렵하다, 불뚱가지 이런 생소한 어휘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런 어휘들은 따로 공부해서 쓰신 건가요? 이런 말들이 진짜 농촌에서 쓰이나요?
이시백_ 쓰이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여기에 나온 말들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들이 쓰던 말을 제가 들었던 거거든요. 그런데 들었던 말들을 인터넷 사전에 검색하면 안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정확하게 쓰지는 못하셨던 거예요. 그분들도 책에서 배운 게 아니라 어머니나 아버지가 쓰던 말을 귀로 들어서 전했기 때문에요. 뭘 조금 주면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야 그걸 그렇게 시알 따끔 줘가 지고 어떻게 하니.” 뭐 이렇게요. 검색해도 안 나오더라고요. 사전이나 이런 걸 찾아봐도 등재도 안 되어 있고. 그런데 다른 분들은 알아듣더라고요. 『이문구 소설어 사전』이 있어요. 그런 말들이 그런 데는 있어요.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는 그런 어휘를 안 씁니다만 농촌이 배경인 소설에는 그런 관용적이고 구어화된 어휘들을 최대한 쓰려고 애쓰지요. 거창한 민족적 사명감을 가지고 쓴 건 아닙니다만 작가의 몫 중 하나가 모국어에 대한 확장이라는 것도 있고 어휘가 좀 풍성하면 정서적인 교감의 폭도 넓어지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들었는데 서구에서는 작가의 등급을 판정할 때 한 작품 속에 사용된 어휘 수를 가지고 판단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쓴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비교해도 어휘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더라고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답을 드린다면 공부를 하는 편이죠. 주변에서 듣고 그걸 확인하고 써보려고 시도하고요.
정아은_ 듣고 있으니 멸종 동물들 살리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런 입말들이 대부분 사장 되어가는 분위기잖아요.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이시백_ 아, 그래서 제 소설이 마케팅에는 아주 결정적으로 흠이에요. 대체로 요새 소설들이 학교 도서관, 청소년들에게 주로 읽혀야 하는데, 청소년 독자하고 대화를 해봤더니 제일 첫 번째 하는 말이 제 소설의 사투리가 제2외국어 읽는 거 같다는 거예요. “너무 어려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런 얘기들이었어요. 농촌이라는 거 자체가 관심 밖이지, 농업도 사양 산업이지, 거기에다가 사투리라고 하는 멸종 언어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상당히 버거워하는 것 같아요.
정아은_ 이런 부분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저는 라디오를 많이 듣는데, 라디오 듣다 보면 무슨 평론가, 정치인, 때로는 대통령…… 이런 사람들이 나와서 어떻게든 영어를 섞어 쓰려고 해요. 말을 하다가 심지어는 “윌링리” 막 이러기도 하고요. 참 들어주기 힘들어요. 틈만 나면 아는 영어 모르는 영어 다 갖다 쓰면서 또 한글날 되면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겨요. 우리말을 사랑하자고요. 기가 막힌 일이죠. 한글을 정말 사랑하려면 평소에도 한글을 많이 쓰고 살리려는 그런 노력을 해야지…… 정책들도 이름 지은 거 보면 죄다 영어에요. 무슨 무슨 바우처, 스마트 팜, 뉴 스테이…….
이시백_ 그나마 모국어가 풍성하게 살아남은 건 유감스럽게도 농민들, 농촌뿐이에요. 그 세대가 가면 그나마 남은 어휘나 언어도 사라질 거고요. 개인적으로 그런 게 좀 안타깝죠. 우리가 쓰는 어휘는 어떤 평론가나 어떤 대학 교수보다 시골장에서 만난 나물 파는 할머니나 국밥집 할머니가 더 풍성할 수 있어요. 작가라면 그런 살아 있는 어휘에 관심을 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아은_ 제2의 이문구라고 불리는데 마음에 드시나요?
이시백_ 개인적으로 정말 영광스럽죠. 제가 존경하는 작가분이 몇 분 있는데, 이문구 선생은 정말 제 문학적 사부라 할 수가 있어요. 제2, 제3이 붙어도 저는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작가적인 면에서 보면 유감스럽죠. 제2라는 건 아무리 잘 써도 제1이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 그 점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습니다.
“달에 안 가봤잖아요? 싼값에 달에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정아은_ 매년 몽골에 가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번 소설집에 몽골 얘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쉽기도 했어요.
이시백_ 몽골에 대한 관심은 제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농촌에 대한 낭만적인 정서에서 시작했던 거 같아요. 돌 사이로 흐르는 샘물을 받아 이를 닦고, 빨간 단풍이 툭 떨어져서 맴돌고. 이런 걸 바라보던 유년기의 농촌. 빨래하는 작은어머니한테 업혀 가서 개울의 빨랫돌 밑을 더듬으면 구구리 같은 물고기들이 잡히고 그랬는데. 이제 그런 공간이 없잖아요. 남아 있다면 관광지가 되었죠. 그렇게 변질되어가는 모습을 보고부터 고향을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상처 입은 걸 확인하게 되어서. 그래서 오지를 찾아 헤맨 적이 있어요. 내린천 주변을 많이 다니고 그랬는데 그곳마저 민박, 토종닭 이런 걸 붙인 모습을 보면서 자본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힘이 강한 거구나. 자본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공간이 어디에 있는가. 차마고도는 가야 오지 같겠더라고요. 거기에 가고 싶어서, 우선 다리 힘을 길러야 차마고도를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도보여행을 떠났어요. 사흘 만에 폐렴에 걸려 집으로 돌아와 입원했잖아요. (웃음) 마음속에 오지에 대한 그런 열망이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몽골에 갔는데 거기가 인간의 힘이나 자본이 미치기에는 너무 척박하고 황량해 보였어요. 그런 모습을 보며 관심이 깊어지고 그러다가 몽골 병이 걸린 것 같아요. 안 가보셨죠?
정아은_ 네, 안 가봤어요.
이시백_ 꼭 가보세요. 달에 안 가봤잖아요? 싼값에 달에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황량함이 있어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불모의 땅인데도 그 황량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더라고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옛 고전을 우연히 읽다 보니까 ‘황량미’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약이 없다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 황량한 아름다움에 빠지면 약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시절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정아은_ 독자들이 『응달 너구리』를 어떻게 읽었으면 하세요?
이시백_ 최근에 제가 문학적으로 반성하는 지점 중의 하나가 주제를 너무 정치적 뼈대로 잡다 보니까 전형성이 들어가더라는 겁니다. 너무 메시지도 강하고. 의도한 거에 대해서 독자들이 조금 버거워하고. 이른바 민중문학이 왜 급격하게 버림을 받았는가를 돌아봤어요. 팔구십 년대에는 현장문학이 있었고, 하다못해 열악한 공장에서도 문예 소모임 같은 게 있었고. 그 어려운 시절에도 공장 노동자들이 밤늦게 모여서 시를 쓰고 글을 썼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없거든요. 그와 함께 리얼리즘이라는 게 너무나 쉽게, 우리 사회적 환경으로 볼 때 여전히 유효한데도, 급격하게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던으로 전환되는 시기가 이해가 좀 안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반발하다 보니까 현실적인 주제가 너무 노골화된 것 같아요.
민중문학 이후에 갑자기 드러난 작가 한 분이 있어요. 그 작가의 작품을 상당히 재밌게 보거든요. 그런데 그 작가의 탁월한 재미와 즐거움의 이면을 보니까 몰역사沒歷史 의식이 있더라고요. 어떤 현실이나 역사적인 의식이 물처럼 그렇게 증발되기도 쉽지 않은데.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가 많은 독자에게 즐거움을 줬는가. 난 그 배경에는 민중문학의 교조성에 있다고 봅니다. 너무나 교조적이고 전형화된 민중문학에 독자들이 싫증이 났고, 사소한 담론이나 키치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이 문학에도 요구되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소위 말하는 백과사전파 같은 소설이 등장하더군요. 미처 몰랐던 지엽적인 상식이거나, 상식의 오류나 전도라던가. 우리가 가졌던 상식을 뒤집고 역전시키는 즐거움. 이런 것들이 독자들을 매혹한 거 같아요. 그런데 이게 너무 재밌고 해볼 만한 작업이지만 이게 문학의 주류가 되어서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리얼리스트로서 소설을 쓰고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리얼리즘 문학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웃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쓴 게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라는 짧은 이야기 모음집이에요.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소재들을 배경으로 차별화하려 애썼지요. 그래서 현실적인 메시지는 제가 포기할 수 없는 면이지만 그게 너무 노골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장편에선 그동안 제가 해왔던 현장 중심이나 현실을 기록하는 것에 충실한 소설 스타일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을 다시 읽고 있어요.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와 현실을 조화시킨 그런 스타일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아은_ 정치적인 메시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작가들의 숙제인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제가 드러내고 싶은 건 그런 건데 이야기로서 가장 티 안 나게 해서 감화시키고 싶은 게 또 작가들의 꿈이잖아요. 저도 쓰다 보면 정치적인 메시지가 직접 드러나는 부분이 결국 책이 나오고 나서 가장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좀 더 둥글렸어야 하는데 하고요. 그게 항상 부딪치고 고민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내가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건데. 이걸 어떻게 잘, 이야기해서 내보낼 것인가 그런 거요.
이시백_ 맞아요. 그런데 소설뿐만 아니라 ‘노동자 글쓰기 강좌’나 ‘노숙인 인문학 강의’ 같은 걸 가보면 자기 현실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현실 이야기를 들여다보기를 좀 거부하더라고요. “선생님 내 사는 삶도 이렇게 힘들고 지질해요.” 읽는 책에서마저 이런 모습을 다시 확인하는 걸 대단히 버거워해요. 그런 분일수록 달달한 얘기를 좋아하고요. 서비스 노조에서 감정노동자를 대상으로 강연해달라고 해서 주제가 뭐냐고 물으니 ‘힐링’이래요. 그날 내가 한 강연의 요지는 ‘힐링 하지 말라’였습니다. (웃음)
강의를 들으면 그분들도 수긍해요. 그러면서도 정서적으로 힘들어하고요. 제 소설도 아마 그렇게 읽히는 것 같아요. 저도 사실 대학 시절에는 오정희 선생의 작품을 좋아했어요. 제가 대단히 시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웃음) 탐미적이고 미학적인 작품에 역량이 있었어요. 사실 그게 나한테 맞는 건데. 근데 시대적 환경이나 사회적인 구조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걸 쓰고 싶은데 그런 감성에 기반을 둔 사고를 할 수가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시절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정아은_ (웃음) 기대할게요.
이상은, 이시백의 소설집 『응달 너구리』에 실린 이시백, 정아은 작가의 대담을 축약한 내용입니다.
대담 전문은 소설집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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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 너구리 이시백 저 | 한겨레출판
《응달 너구리》는 농촌과 삶의 주변부를 그려온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이시백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작가가 2010년 이후(《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2006년, 삶창), 《누가 말을 죽였을까》(2008년, 삶창), 《갈보 콩》(2010년, 실천문학사) 처음으로 펴내는 소설집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