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인생의 반성문을 쓰는 것
드라마 <장사의 신-객주2015>의 원작자인 김주영 작가가 독자들과 만났다. 지난 27일 저녁 이루어진 그들의 만남은 예스24와 문학동네가 함께하는 ‘소설학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김주영 작가는 ‘길 위의 소설, 내 안의 어머니’라는 주제로 지금의 자신을 만든 유년시절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교훈과 감동을 얻은 것은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사건들이나 그것에 대한 체험이 아니었다”고 밝히며, 오히려 작고 사소한 순간들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는 고백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내 글쓰기의 바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생각해 보면, 영화롭고 즐거웠고 배부르고 행복감을 느꼈던 때보다는, 누추했고 슬펐고 많이 울었던 데에서 비롯됐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김주영 작가는 자신의 짧은 수필을 독자들과 함께 읽으며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한 차례 매체를 통해 공개된 바 있는 짧은 기고문 속에서 그는 “고향의 기억은 글쓰기의 원형질”이라 말하고 있었다. 아울러 “고향이라면 떨쳐버릴 수 없는 존재의 첫째는 어머니”라고 덧붙였다.
“저에게 있어 어머니는 곁에 있는데도 항상 그리운 존재였습니다. 어머니는 시장 주변에서 삯바느질을 하고 밥을 파셨기 때문에, 항상 제 옆에 없으셨어요. 한 번은 남의 집 아이를 업고 디딜방아를 찧는 어머니를 보고 너무 많이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업힌 기억이 없는데, 어머니가 품앗이 하는 집의 아이를 업고 계신 걸 보고 너무 슬펐던 거예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거의 어머니와 떨어져서 생활했습니다. 어머니와 재혼한 의붓아버지가 저에게 잘 대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한 괴리감, 외로움 때문에 자주 가출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것이 바로 어머니가 나에게 준 크나큰 선물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제가 문학을 할 수 있었고요.”
작가에게 있어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도떼기시장 같은 세상을 방황하게 하였으며, 저주하게 하였고, 파렴치로 살게 하였으며, 쉴 새 없이 닥치는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존재였다. 그러나 그 모두가 자신에게 남긴 선물이었음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야 깨달았다.
철부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생애에서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 부끄러움을 두지 않았던 말은 오직 엄마 그 한마디뿐이었다. 그 외에 내가 고향을 떠나 터득했다고 자부했었던 사랑, 맹세, 배려, 겸손과 같은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 들은 속임수와 허물을 은폐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였다. (『잘 가요 엄마』 ‘작가의 말’ 중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와 저 사이에 있었던 괴리나 서러움, 미움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까지고 안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문학이란 자기 인생의 반성문을 쓰는 건데, 그러려면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잘 가요 엄마』를 쓰기까지 1년 동안 고민했습니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던 거죠. 그러다가 이제 와서 감출 게 무엇이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쓰게 됐습니다. 『잘 가요 엄마』에 나온 내용의 80%는 실제 이야기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상상력에 의해서 인물을 창조한 건데, 책에 등장하는 누나가 그렇습니다. 실제로 저에게는 누나가 없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제가 맏아들이었죠.”
문학에서 기술이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어서 작가는 자신에게 문학적 영감을 준 대상으로 옹기도막과 도축장을 꼽았다. “소년시절 내내 외톨이로 살았기 때문”에 마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옹기도막과 도축장을 찾아가게 되었다는 그는, 당시 자신을 사로잡았던 생경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옹기도막에서는 “투박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늙은이들 손짓에 따라 진흙 뭉치가 삽시간에 세련된 선을 가진 항아리로 재탄생하는 과정”에 매료되었고, 도축장에서는 “거구의 황소가 정수리에 단 한 번의 도끼질에 속절없이 쓰러지는 덧없음”을 목격했다는 것.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의 작가를 있게 한 것은 ‘가난’이었다. 심지어 그는 지난 시절의 가난을 ‘행운’이라 불렀다.
“제가 어린 시절에 지독한 가난을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세상을 보는 데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소설에서 하층민의 이야기를 할 때는 저 자신이 하층민의 대변인인 것처럼 쓰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층민의 이야기에서 건질 수 있는 것들이 많죠. 마치 시래기 국 같은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가난하게 자랐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주영 작가가 들려준 수필 속에는 당시의 가난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가난 때문에 나는 조숙한 아이가 되었고, 소년의 어린 나이에 바람 속을 달려가는 세상과 일찌감치 조우하였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사람이 비굴해지고 아부에 길들여지며 좌고우면하게 되고 어느 편에 편입되는 것이 내가 살아날 것인가에 대해 일찍부터 눈을 뜨게 되며, 계산을 잘하고, 남의 등 뒤에 숨어 공짜로 세상을 살아가는 술수가 무엇인지 곁의 사람에게 자주 묻고, 걸핏하면 발뺌을 잘하고, 시치미 잡아떼는 데 이골 나고, 제 탓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일에 자신도 모르게 단련된다”
“문학은 기술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에요. 기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전에 어떤 분께서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냐고 물어보시기에, 제가 팔자가 험해야 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대신 죽자 살자 발로 뛰면서 소설을 씁니다. 그러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어요. 하나는 생생한 자료를 얻을 수 있고, 두 번째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요.”
직접 몸으로 터득한 경험을 통해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그는 ‘사실이 아닌 것,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 직접 관찰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 <장사의 신-객주2015>로 다시 태어난 작품 『객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김정한 선생님께서 제게 결정적인 메시지를 남겨주셨어요. 선생님을 찾아 뵈었을 때 서재 책장에서 잡기장을 꺼내주셨는데, 펼쳐보니까 식물 채집을 해 놓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냐고 물으니까, 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산골 학교에 부임하셨을 때부터 하셨대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김 군, 내가 우리나라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면 산에 가니까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있더라, 라는 표현을 자주 쓰네. 자네는 그렇게 쓰지 말게. 이름 없는 풀꽃은 없네. 다 이름이 있네’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쓴 단편 중에 「쇠둘레를 찾아서」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 짧은 글을 쓰기 위해서 철원을 세 번 다녀왔어요. 그렇게 발품을 파는 열정이 있어야 작가로서 이름을 유지할 수 있는 염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는 사실에 대한 치열한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소설을 고증만으로 채워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에는 반드시 작가의 상상력이 창조해낸 인물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작가의 능력이고 기량이죠. 상상력이 가미되지 않은 소설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도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어야 좋은 소설이 돼요. 『잘 가요 엄마』의 누나도 가공인물인데, 그 인물은 소설에 나오는 어머니나 ‘나’로 지칭하는 화자를 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소설에서 상상력은 배경음악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죠.”
‘소설학교’ 강연을 마무리하며 김주영 작가가 남긴 한 마디는 소설 읽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설을 읽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인생만 살 수 있지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와 한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나의 인생과 영혼이 풍부해지죠. 영혼이 없다면 고기 덩어리에 불과하잖아요. 문학 작품은 우리에게 맑은 영혼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소설을 읽어봐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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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 세트김주영 저 | 문학동네
『객주』는 1984년 아홉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바 있다.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작가는 4년 전 경북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의 춘양장으로 넘어가는 보부상 길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진짜 객주를 끝맺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울진 죽변항에서 내륙 봉화까지 소금을 실어나르는 길인 이 십이령 고개가 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30여 년 만에 드디어 『객주』 10권이 씌어질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 한국문학사에 남을 만한 뜻깊은 연재에 맞춰 기존의 『객주』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옷을 바꿔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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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