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낯설어지는 부모와 자식
자신의 선택, 그에 따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연습을 자녀가 할 수 있도록 도와서 그들이 부모가 도와주지 않아도 깊은 행복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다. 나를 떠나면 죄인이라며 죄책감을 강요하는 부모는 자칫 자녀에게는 심하게 말해서 가슴에 얹은 답답한 돌 같은 존재로 인식될 수도 있다.
글ㆍ사진 이나미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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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_ 파블로 네루다

 

당신은 대양의 딸. 오레가노의 사촌.
헤엄치거라. 당신의 몸은 물처럼 순수하나니.
요리하라. 당신의 피가 흙이 되어 흘러넘칠 것이니.

 

당신의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 대지에서 꽃처럼 피어나리니.
당신의 눈이 파도를 향하면, 파도가 넘실거리고,
당신의 손이 대지로 뻗어나가면 씨앗들이 움틀 것이니
당신은 안다. 흙과 물의 정수精髓가
당신을 빚어 다시 태어나게 했음을.

 

 

여자 친구를 받아들여 주셨음 하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어머니, 제 여자 친구가 어머니 눈에 그렇게 들지 않으신다니, 정말 당황스럽네요. 제게는 다정하고 애교스럽고 친절한 아이인데, 어머니는 “뭔가 진정성도 없는 것 같고 학벌도 변변치 않고 너무 몸이 약해서 애나 잘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집안도 시원찮고” 등등의 지적만 하시네요. 어머니께서 그렇게 제 여자 친구를 싫어하는 이유를 많이 말씀하셔서 사실 굉장히 놀랬어요. 내겐 항상 든든한 뒷심이셨던 어머니께서,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 당신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고, 당신이 원하던 전문직도 가지게 되었고, 그 때마다 항상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란 말을 해 주셨던 따뜻한 어머니께서, 내 여자 친구에게는 그렇게 차갑고 무뚝뚝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어머니, 혹시 지금까지 저 때문에 평생 혼자 살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제가 따로 행복한 삶을 꾸리려는 게 괘씸해서 그러신가요? 아님, 저를 아버지 대신으로 생각하셔서 제가 결혼하면 혼자되는 게 무서워서 그러신 건가요? 어머니, 제가 결혼해도 절대로 어머니를 외롭게 하지 않을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제 여자 친구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제가 그 친구를 잘 설득해서 어머니께도 잘 하도록 이끌게요.


무엇보다 제가 손주도 낳아드리고, 어머니 칠순 잔치 때 근사하게 잘 차려 드리면, 제가 혼자 사는 것보다 남들 눈에도 더 좋아 보이지 않을까요? 어머닌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시하시는 분이니까, 제가 결혼하는 것이 어머니 체면에도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어머니 눈에는 제가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이라서 더 좋은 여자들이 줄을 잇고 있을 것 같지요? 그런데 그건 어머니 착각이에요. 나처럼 홀어머니에 외아들인 자리가 좋은 혼처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요즘 여자들은 나 같은 사람에게 시집오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 제가 데리고 오는 여자애들에게 엄마가 그렇게까지 권위적으로 대하실 이유가 없는 거예요.


사실 어머닌 제가 어떤 여자와 결혼해도 마음에 드시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어요. 아예 어머니와 연을 끊고 살지, 아니면 그냥 혼자 살면서 필요할 때만 만나는 여자 친구를 만들지. 절대로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과 억지로 살 생각은 없으니 그리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제발, 이 친구를 받아들여 주시든지, 아니면 그냥 저를 남처럼 생각하시든지 결정해 주셨으면 해요. 일단 어머니께서 한 번만 져주신다면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라도 제가 최선을 다해서 두 사람이 서로 잘 지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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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삶에 계속 동참하고 싶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네가 인연을 끊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정말 네가 내 아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내게 곰살궂게 굴던 따뜻한 아들인데,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생각하니 지금껏 엄마가 인생을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이제 겨우 만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여자 친구와의 인연이 너를 뒷바라지 하면서 살았던 지난 30여 년의 세월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다니 정말 어이가 없기도 하다.


물론 때가 되면 짝을 찾아가는 것이 맞는 얘기지만, 꼭 이런 식으로 엄마에게 통보를 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네가 어떤 아이니. 어린 나이에 남들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성취하고 이뤄 낸 아들이 아니냐. 항상 우리 부부에게 자랑이었고, 또 우리가 하라고 하는 것은 다 해낸 착한 아들이 아니냐. 이제 와서 이렇게 변하다니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 네 여자 친구의 영향이 아닌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구나. 그래서 이 엄마는 그 아이가 더 싫다. 내 착한 아들을 갑자기 남으로 만들어 버리고, 또 나까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너를 통해 조종하려 드는 것 같아 더 기분이 나쁘다. 원래 고부 관계란 게 힘들다는 것 이 엄마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 내 며느리에게는 모든 것을 다 해 주는 좋은 시어머니가 되리라 꿈꾼 적도 있었는데. 그 동안 엄마가 간직해온 예쁜 꿈이 다 깨지는 것 같아 그게 더 아쉽고 서운하다.


어차피 노후를 네게 기댈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네가 만약 이런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인연을 끊겠다고 한다면 이 엄마는 특히 반대할 마음도 없다. 네게 좋은 모자 지간을 유지하자고 구걸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냥 네 결혼식에는 남들 눈도 있고 하니 나타나 주마. 그러나 그 이후로도 나하고 특별히 정 있게 살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나미’s comment - 부모와 자녀의 분리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굳이 에디푸스 콤플렉스나 일렉트라 콤플렉스 등을 들먹이지 않아도, 또 부성 콤플렉스나 모성 콤플렉스의 개념을 몰라도 요즘 대부분의 젊은이는 자식을 한없이 조종하려는 부모의 품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런 태도가 오히려 정상이고 건강한 것일 수 있다. 효도라는 사회적 덕이 점점 사라져서 걱정이라는 기성세대들이 많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녀들에게 독재자 노릇을 했던 어른들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피로감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조건 아들이라면 거의 아버지나 남편, 심지어 나랏님처럼 섬기고 나보다 더 배운 자식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거니 하며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냈던 시골 촌로들이 분명 얼마 전까지는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몇 십 년 간의 똑똑하고 배운 부모들은 주로 내 가치관과 소신대로 자녀들을 키우고 휘두르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녀들이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내가 다 해 보았는데……” 하면서 자녀 앞길을 막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부모들은 자녀가 좌충우돌 세상을 배워나갈 기회를 주지 않는다. 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편히 갈 길을 헤매면서 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녀가 학교를 들어가고 직업을 선택할 때뿐 아니라 애인을 만나고 결혼을 할 때도 일일이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결국 자녀를 아예 잃게 되는 길을 가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선택, 그에 따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연습을 자녀가 할 수 있도록 도와서 그들이 부모가 도와주지 않아도 깊은 행복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다. 나를 떠나면 죄인이라며 죄책감을 강요하는 부모는 자칫 자녀에게는 심하게 말해서 가슴에 얹은 답답한 돌 같은 존재로 인식될 수도 있다. 또 반대로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지나치게 착한 부모 역할만 하는 것 역시 자녀를 엇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것을 희생하고 베풀었는데도 자녀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원인들이다. 


반대로, 부모의 간섭이 싫다고 하는 자녀들 중에는 중요한 결정은 내가 다 하고, 부모의 유산도 다 받아 챙기되, 조언이나 간섭은 싫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진정으로 독립은 하지 않았으면서 겉만 독립한 듯 착각하는 것이다.


또, 초기에는 어머니가 내 여자 친구와 경쟁심을 느끼고 미리 예단하고 고부관계를 더 어긋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관계든 자연스럽게 친해지기에는 꼭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어머니와 여자 친구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지기까지 참고 기다리며, 그 사이에서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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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이나미 저 | 예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듯이, 가정이란 공동체 역시 흠 없는 천국이 될 수 없다.” 또한 가족끼리 섣불리 ‘원래 저래’, ‘이런 뜻이겠지’, 또는 ‘나만 힘드네’라고 단정 짓지 말고 한번쯤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여유를 가지길 권한다. “각자가 모두 나의 경험은 정말로 고통스럽고, 특별하고, 나를 괴롭힌 가족들은 세상에 없는 별난 괴물들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비밀스럽게 닫혀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모두 비슷하게 크고 작은 상처의 기억들을 안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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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이나미 심리분석 연구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 교수
한국 융연구원 지도분석가 및 교육분석가
저서 : 『다음 인간』, 『슬픔이 멈추는 시간』, 『한국사회와 그 적들』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