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려다오
나의 모든 감정과 행동이 남을 따라 하다가 스스로 주체적으로 서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몸짓과 웃는 표정까지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다가 내게 속한 것이 없게 되고 만다.
글ㆍ사진 박수밀
201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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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면 사물도 나를 옮길 수 없다.
我能守我, 物不能移

이용휴, 《혜환잡저》 중 〈서증종손유여진사〉

 

혜환 이용휴(1708~1782)는 성호 이익의 조카로, 18세기에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루는 문단의 큰 학자였다. 그는 1735년에 생원시에 합격했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익의 둘째 형이자 이용휴의 큰아버지인 이잠李潛의 죽음 때문이었다. 이잠이 숙종의 노여움을 사 국문을 받다 죽음을 당함으로써 그의 집안은 역적으로 내몰렸다. 몰락한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과감히 벼슬길을 포기하고 평생 재야의 선비로 살았다.


그러나 소극적인 회피가 아닌 적극적인 선택이었다. 그는 여유롭게 삶을 관조하고 즐기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문장가로 자처했다. 그는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 수용했다. 또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글은 대체로 무척이나 짧다. 이런저런 사설을 늘어놓는 대신 바로 본론으로 치고 들어간다. 진실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삶의 태도를 그의 글에서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격식을 파괴하는 그의 글에 대해 기이하다는 평가를 내려 주었다. 하지만 이용휴 자신은 기이함은 애써 구한다고 얻는 것이 아니라 참됨이 다하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이용휴는 ‘나’에 대해 관심이 참 많았다. 왜 나는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외물의 부림을 받을까? <아암기>에서 말하길 욕망이 맑은 정신을 가리고 습관이 진실을 감추기 때문이라 한다.

 

나와 남을 마주 대하면 나는 가깝고 남은 멀다. 나와 사물을 마주 대하면 나는 귀하고 사물은 천하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반대로 친한 존재가 먼 존재의 명령을 따르고, 귀한 존재가 천한 존재의 부림을 당한다. 왜 그럴까? 욕망이 밝은 정신을 덮고, 습관이 진실을 감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좋아하거나 미워하며 기뻐하거나 화를 내는 감정과 가고 멈추며 굽어보고 우러러보는 행동이 모두 남을 따라만 하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말하고 웃는 얼굴 표정까지 저들의 노리갯감으로 바친다. 그리하여 정신과 생각과 땀구멍과 뼈마디, 어느 것 하나 내게 속한 것이 없게 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의 모든 감정과 행동이 남을 따라 하다가 스스로 주체적으로 서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몸짓과 웃는 표정까지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다가 내게 속한 것이 없게 되고 만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혜환은 그런 자신이 부끄럽다고 고백한다. 〈환아잠〉이란 글에서는 ‘나로 돌아가자’고 당부한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반성한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재주를 우쭐대고 남의 칭찬에 민감하게 반응하다가 초심을 잃어버렸다. 세상이 요구하는 틀에 맞춰 살다가 위선적인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앞만 보며 달려온 어느 날 그는 문득 예전의 나, 본래의 나로 돌아가야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자신을 옭아매던 출세욕과 명예욕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남을 따라 하려는 행동은 가짜 나를 만드는 것일 뿐, 남의 그림자를 애써 좇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나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그는 천지신명에게 맹세한다. 죽기까지 본래의 나를 지키며 살겠노라고.


이용휴는 세상의 평가에 연연해하며 기죽어 살기보다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성공과 권력의 길을 택하는 대신, 재야의 선비로서 당당하게 자신을 믿고 진실한 길을 걸어가고자 했다.


그의 글은 수많은 속세의 선비들을 울렸고, 새로운 문학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그에게 문장으로써 인정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정약용은 그에 대해 평가하길 “벼슬에도 나가지 않는 신분으로 문단의 저울대를 손에 잡은 것이 30여 년이었으니, 예로부터 유례가 없는 일이다.”라고 했다.


세상은 우리에게 적당히 굽힐 줄 알아야 낙오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버리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가면을 쓰고 아등바등 사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반성하는 지식인은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을 굳게 지키며 자존감을 붙들라고 당부한다. 그리하여 이용휴는 종손에게 주는 글에서, 나의 것을 조금이라도 버린다면 제아무리 좋은 것을 맞아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내 한쪽을 조금 떼어 낸다면 비록 옥황상제 편으로 옮겨 가더라도 옳지 않다는 말은 참되다.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면 사물도 나를 옮길 수 없다

?離我一邊, 雖走向玉皇上帝邊去, 亦不是者, 眞格言也. 我能守我, 物不能移.”


당나라 때의 선승인 임제는 <임제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서 있는 곳이 모두 참되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삶의 주인으로 서면 어느 곳이든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 참된 진리의 자리가 된다. 세상이 요구하는 길이 아닌 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라.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면 권력도 나를 옮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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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박수밀,강병인 저 | 샘터
옛 지식인들의 삶을 이끈 한마디와 그 문장을 오롯이 드러내 주는 인생의 한 국면을 담은 책이다. 아침저녁으로 눈과 귀로 접하는 해와 달, 바람과 구름, 새와 짐승의 변화하는 모습에서부터 손님과 하인이 주고받는 자질구레한 말들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것에서 의미를 읽어내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공부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한 것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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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밀

한양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연암 박지원의 문예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옛사람들의 문학에 나타난 심미적이고 실천적인 문제 의식을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음미하고, 인문적 관점으로 재사유하는 데 천착해 왔다. 《알기 쉬운 한자 인문학》,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새기고 싶은 명문장》,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연암 산문집》, 《살아 있는 한자교과서》(공저) 등의 책을 썼다. 현재 한양대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