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다시 한번 화두에 올랐다.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30년간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던 시인 무리드 바르구티의 1977년 작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게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경향신문 국제부에서 활동중인 구정은 기자는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 감동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먼저 출판사에 번역서를 내자고 제의했다. 아흐다프 수에이프의 영역본을 중역하는 한계는 있었지만, 국제부 기자의 경험을 토대로 ‘팔레스타인 망명자의 시적인 기록’을 담아 냈다.
9월 19일, 구정은 역자와 함께한 ‘우리가 보지 못했던 팔레스타인’ 행사는 책에 대한 이야기와 팔레스타인의 ‘현재’에 대한 심도 있는 질의응답으로 구성되었다.
휴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가자지구의 현실
올해 논란이 되었던 이스라엘 공습 이후 최근 가자지구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스라엘의 만행에 격분하던 그 때, 가자지구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글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글에는 ‘누가’라는 주어가 사라진 채 그저 ‘폭력 때문에’ 지금 가자지구의 상황이 너무도 심각하다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큰 국제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서, 이스라엘 눈치가 보여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침공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공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그 구호요원의 글을 봤다면,가자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이게 바로 가자지구의 현실입니다.”
구정은 역자는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설명했다.
“영어로 이스라엘의 점령촌을 Settlement, ‘정착’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가 가치중립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건 정착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고 있는 겁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고 그들이 농사 짓는 곳을 불질러버리고, 우물 쓰는 것을 금지합니다. 그 곳에 유대인 마을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상 정착이 아니라 점령인 것이죠.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점령이 끝났다고 하면서, 정착촌이라는 이름의 점령촌을 만들고 있습니다. 점령촌에서 팔레스타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 무력 없는 팔레스타인이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착민들이 행패를 부리고, 이에 팔레스타인 아이가 돌을 던지면 이스라엘 경찰이 와서 그 아이를 사살합니다. 그리고 소요가 일어났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냅니다.”
“오슬로 평화협정에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 즉 ‘서로 간의 실체를 인정하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국가를 세울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되, ‘소국가론’이라고 해서 그 국가의 형태에 제약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팔레스타인을 국방력이 없는 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 이스라엘의 의도였고, 당시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가 이끄는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세력이 약했기 때문에 이에 결국 합의를 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협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습니다. 국경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 너무나도 상징적인 장소인 예루살렘의 귀속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20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내부에 우파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세워주는 것조차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노동당 때는 ‘국가 자체는 인정한다’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아예 국가 건설을 문제 삼고 정착촌을 짓지 않겠다는 합의를 어기고 있습니다.”
이번 공습으로 다시 한번 화두에 오른 가자지구의 경우,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으로 끊임없이 고통 받고 있다. 가자지구는 오랜 기간 사람 뿐만 아니라 생필품이나 의약품조차 들어가기 어려운 상태이다.
“이스라엘은 지금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막아놓고, 하마스가 이에 대항하면 공습으로대응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지를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자치기구와 하마스 사이의 정치적 분열도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랍 애들은 분열이 심해서 안돼. 이스라엘은 얼마나 잘하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구정은 역자는 현재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공식적으로 휴전 상태에 있지만, 납치와 사살 등 이스라엘의 만행은 계속되고 있음을 덧붙였다. 중동의 다양한 사건사고에 밀려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적인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휴전 제의를 하마스가 여러 번 거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마스가 왜 휴전을 거부하면서 이번 전쟁을 길게 끌고 간 것인지 궁금합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부패에 대한 반작용으로 테러조직이었던 하마스가 2006년 총선에서 이기게 됩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미국 등이 하마스 정권을 축출하려고 공작을 펴는데, 대표적인 것이 세금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세금을 이스라엘이 걷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마스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은 이들에게 당연히 전달해야 할 세수를 내주지 않고, 하마스 지도부를 표적 살해합니다. 유권자들이 민의로 뽑은 정권인데 이렇게 뒤집어버리니까, 가자 지구 사람들은 쿠데타로 만들어진 새로운 정당을 당연히 싫어하게 될 수밖에 없겠죠.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가 가자지구 내 정치조직이 되면서 결국 팔레스타인 내 분열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이슬람 정권, 카타르의 도움으로 가자지구 내 하마스 정권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집트에 군부독재가 다시 들어서면서, 하마스 정권은 위태로워졌다. 이집트로부터 받아왔던 지원이 끊긴 것은 물론, 이집트가 가자지구로 향하는 통로를 붕괴시키는 등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궁지에 몰려있던 하마스는 외부로부터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이번 전쟁을 끌고 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전쟁이 50일만에 공식적으로 끝났는데, 민간인들만 죽고 하마스 지도부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번 전쟁은 ‘실패’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하마스의 최 측근은 카타르에 은신하면서 다른 나라로부터 돈을 더 끌어들이는 것에만 신경쓰고, 결국 가자지구 사람들이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하마스에 대해 “거의 공범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강하게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중의 난민’으로 살아야 했던 시인의 기록
제가 읽은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는 사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정보 전달보다는, 뿌리 뽑힌 ‘개인의 삶’에 더욱 집중한 책인 것 같습니다. 많은 책들 중 왜 이 책을 번역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는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책이라기보다, 고향에 갈 수 없게 된 한 개인의 ‘뿌리 뽑힌 삶’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무리드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두 곳에서 쫓겨난 ‘이중의 난민’으로, 끊임없이 자신이 속한 장소와 관계 맺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책에 나오는 ‘그 월요일 정오에 나는 추방 당했다’ 이 한 문장을 그가 인정하고 쓰기까지는 30년이 걸리지 않았을까요. ‘내 집, 내 땅에서 내가 왜 추방을 당해?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해?’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분명히 이렇게 수없이 많은 질문으로 괴로워했을 것 같아요. 이처럼 분노와 좌절과 공포를 문학적으로 잘 드러낸 작품이라서 꼭 번역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기록이기 앞서, ‘떠돌이’로 살아야만 했던 시인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무리드 바르구티는 끊임없이 떠돌이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떠돌이는 존재하는 장소와의 관계가 어긋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곳에 다가가려 하지만 그 장소는 그를 곧바로 밀쳐 낸다. 떠돌이는 일관된 내러티브를 가질 수 없는 사람, 순간만을 사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모든 순간이 잠깐이자 영원이다. 기억조차 그의 명령에 저항한다. 그는 자기 안에 숨겨진 고요한 곳에 머문다.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조심하고, 그것을 캐내려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그는 이렇게 또 다른 삶의 편린들 속에 살지만, 이 삶은 그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떠돌이는 전화벨 소리를 반가워하면서도 두려워한다.
무리드 바르구티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투쟁하기보다는,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이에 대해서 역자로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제가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면 저도 무리드 바르구티같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투쟁가들처럼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저도 무리드 바르구티처럼 똑같이 무력감을 느꼈을 것 같고, 그와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떠돌면서 이렇게 고통 받으며 살지 않았을까 저는 작가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무리드 바르구티는 사실 무기력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현실에 대해 완전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절망스러운 현실을 ‘세상의 여러 가지 단면’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시적인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시인이었죠.”
강연 이후 구정은 역자는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의 북트레일러를 소개했다. “지금 나는, 요르단 강을 건너고 있다”로 시작하는 이 영상은 무리드 바르구티가 30년만에 고향인 라밀라를 방문하는 책의 앞 부분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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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말라를 보았다무리드 바르구티 저/구정은 역 | 후마니타스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는 오랜 세월을 해외에서 떠돌다 마침내 1996년 여름에야 요르단 강 서안 지구의 라말라를 방문할 수 있었던 한 팔레스타인 망명자가 남긴 짧고도 간결한, 그러면서도 시적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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