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슬픔은 아래로 흐른다
그가 어떻게 열등생의 컴컴한 터널을 벗어나 빛으로 나오게 되었는지는 이 책에 자세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끝이 해피엔딩이라서, 그가 이제는 멀리서 관조적으로 학교의 슬픔에 대해 쓸 수 있는, ‘성공한 사람’이라서 참 다행이다 싶었고, 한편으로는 슬펐다.
글ㆍ사진 정이현(소설가)
201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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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예전의 내가 나오는 꿈을 꾼다. 나는 열다섯 살이나 열여덟 살 무렵의 소녀이며 교실에 앉아 있다. 끔찍하게 싫어했던 수학 시험을 치르기 전의 쉬는 시간이거나 성적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쉬는 시간 쯤 되는 것 같다. 아니다. 실은 잘 모르겠다. 꿈속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오디오의 묵음 모드를 선택한 것처럼 그곳은 거대한 침묵의 어항이다. 나는 열심히 입을 뻐끔거리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붕어다.


학창 시절, 공부를 아주 못했던 기억은 없다. 아주 잘했던 기억도 없다. 밋밋한 등수와는 달리 성적표의 세부는 꽤나 버라이어티 했다. 문과 쪽 과목의 성적은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았으나 이과 쪽 과목의 점수를 들여다보면 열등생도 이런 열등생이 따로 없었다. 공부를 안 해서?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수학을 비롯한 물리, 화학 등 이과 과목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만의 잘못은 아니다. 혼자 복습이나 예습, 시험공부 같은 것을 하려면 적어도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 무엇인지 기본적인 것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내 경우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뇌의 문제가 아닐까, 라고 심각하게 생각하며 볼펜 뒷꼭지를 물어뜯는 열여덟 살의 내가 떠오른다.

 

성적표가 나온 어느 날, 별안간 “30등 이하는 다 앞으로 나와! 알아서 나와!”라고 소리치던 담임교사 얼굴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못 잊겠다. 나는 아마 작은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이 상황이 얼마나 부당하고 어이없는 것인지를 따져보기 전에, 내 성적이 그보다 위라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비겁하다고 자책할 틈도 없었다. 늘 공부를 잘 하는 척, 집도 잘 사는 척, 예쁜 척한다고 해서 ‘척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급우 얼굴도 떠오른다. 그녀가 다른 아이들 틈에 섞여 쭈뼛거리며 일어서다가, 스르륵 쓰러져버렸던 그 어이없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순간도.

 

학교의슬픔


다니엘 페낙의 에세이 『학교의 슬픔』을 읽었다. 한때 학생이었던 사람은 누구나 안다. 학교의 슬픔은 아래로 흐른다. 즉 흘러넘치는 슬픔으로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는 결국 공부 못하는 아이다. 학교란 그런 곳이다. 학교는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성적’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줄 세운다.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학교가 고통의 공간인 것은, 자신의 열등성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해야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리라.


다니엘 페낙은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 등이 포함된 말로센 시리즈와 지적인 에세이 『소설처럼』으로,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갖춘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지식인이다. 수십 년 동안 교사로도 일했다. 그런 페낙이 학창시절 엄청난 열등생이었다는 사실을 쉽게 믿기는 어렵지만 사실이다. 그가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못했는지 열거하는 일화들은 놀랍다. 얼마나 공부를 못했느냐 하면 알파벳 a를 외우는 데 일 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늘 꼴찌이거나 꼴찌 언저리였다. 그의 이런 흑역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그의 성공을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막내아들의 성적 때문에 늘 마음을 졸였던 그의 노모는 환갑이 가까운 나이의 아들을 아직도 믿지 못한다. 아들이 밥벌이나 제대로 하고 사는지,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불안해하신다. 파리에 살 집은 있느냐고 걱정스레 묻는 늙은 어머니는 평생 ‘공부 못했던’ 아들의 미래를 얼마나 염려해온 것일까. 


페낙의 경험으로 알 수 있듯,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지배하는 가장 큰 억압은 ‘해야 할 일을 결코 해내지 못하는 수치심과 혼자만 이해하지 못하는 고독’이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것은 좌절감의 내면화였단다. ‘나는 한심하다. 절대로 잘할 수 없다’는 열패감은 열등생을 점점 더 깊은 구덩이 속에 침잠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요컨대 핑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열등생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평생 핑계 댈 궁리만 하는 어른은 이렇게 키워지는지도 모른다. 다니엘 페낙의 이야기는 물론 해피엔딩이다. 그는 결국 좋은 교사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문제’에서 벗어났고 슬픔에서 벗어났으며 이윽고 유명 인사가 되었으니까. 어쩌면 그의 사주팔자에는 ‘대기만성형 인간’이라고 나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어떻게 열등생의 컴컴한 터널을 벗어나 빛으로 나오게 되었는지는 이 책에 자세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끝이 해피엔딩이라서, 그가 이제는 멀리서 관조적으로 학교의 슬픔에 대해 쓸 수 있는, ‘성공한 사람’이라서 참 다행이다 싶었고, 한편으로는 슬펐다. 한번 열등생이면 여간해선 벗어날 수 없는 곳이 대한민국임을 알고 있기에. 이 남자의 갱생기를 읽고 대한민국 학부모님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쏘 왓?’을 외치며 『우리 아이 천재로 만들어주는 학습법』 같은 책을 고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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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슬픔 다니엘 페낙 저/윤정임 역 | 문학동네
다니엘 페낙은 열등생을 여러 가지 감정의 껍질로 이루어진 양파로 비유했다. 그에게 선생이란 학생들이 두른 껍질을 벗겨주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시선, 호의적인 말 한마디, 믿음직한 어른의 말 한마디, 분명하고 안정적인 그 한마디”로 자신이 가르치는 수업 시간에, 자신의 과목 안에서 학생들이 온전히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양파’는 교실을 나서는 순간 다시 겹을 두를 테지만 “당연히 내일 또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페낙이 생각하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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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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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fati2

2014.07.30

채널예스의 다른 칼럼에서도 이 책 얘기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칼럼을 읽고나니 이 책 더더욱 궁금해지네요. 학교의 슬픔은 아래로 흐른다라.. 무심코 읽었던 제목이었는데 칼럼을 다 읽고나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 번 더 곱씹어 보게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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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