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B2st) < Good Luck >
한 해만 시간을 돌아간다고 해도 남자 아이돌들의 입지가 지금보다는 괜찮았다. 2012년에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시도와 성취 면에서 다양한 팔레트를 자랑했었다. 엑소의 「으르렁」을 기점으로 현재까지는 하위문화와 섹시 코드의 아우라를 등에 업은 여자 아이돌이나 중견 가수들의 귀환이 더 강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남자 아이돌의 몰락이라기보다 한껏 빛을 발한 뒤 한계 효용에 다다른 대중의 호응을 충전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스트는 이번 미니앨범을 통해 이러한 가요계 경향 속에서 나름대로 중간보고 혹은 생존신고를 내보인 셈이다. 전작 < Hard To Love, How To Love >의 부진과 멤버 개개인의 활동으로 희미해진 그룹 자체의 존재감을 다시 살릴 기회도 필요했을 것이다.
용준형과 김태주의 프로듀싱 콤비를 필두로 조직된 수록곡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캐치한 감각과 설득력 있는 멜로디를 구사한다. 「Dance with u」에서 가사와 코러스를 잇는 마디마디는 인위적이지만 부자연스럽지 않다. 고질적인 백화점식 앨범 구성에서 빠지지 않는 발라드 곡 「이젠 아니야」도 식상한 도입부에 비해 탄력 있는 중후반부가 압권이다. 용준형의 창작욕이 김태주 작곡가와의 협업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 역량에서도 드러난다면 우리는 또 한명의 유능한 뮤지션 아이돌 탄생을 맞이할 것이다.
장점과 무관하게 부상하는 약점은 다른 아이돌들과 비슷해져가는 비스트만의 색에 있다. 확실히 YG나 SM 소속 가수들이 대중에게 각인 시켜놓은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분명 노래는 윤두준이 부르는데 들리는 건 다른 가수의 음색이다. 이들의 노래를 빅뱅이나 엑소가 불러 발표한다면 신보의 곡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덕분에 「Shock」나 「Fiction」을 만들어낸 극적 전개나 유일성과는 거리가 더 멀어졌다.
< Good Luck >의 소소한 성과에 급히 실망할 이유는 없다. 음악과 음악 외적 두 분야 모두에서 꾸준한 모습만 대중에게 남겨주어도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자양분으로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 활동의 성패를 예측하기 어려운 인기의 물결에 대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굳이 쓴 소리를 한 마디 보태자면 신보는 반등을 노리기 위한 묘수로써의 자격이 부족하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본인들의 위력을 주기적으로 시험해보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성공의 순간을 기다릴 시기이다.
글/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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