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로 코스 요리 만들기
채소를 좋아하는 제가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에게 한 끼 제대로 대접을 하려고 합니다. 채소를 주재료로 한 코스 요리를 고급스럽게 만들어서 제대로 먹어보겠습니다.
글ㆍ사진 최강록/ (그림)조남준
201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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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를 좋아하는 제가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에게 한 끼 제대로 대접을 하려고 합니다. 채소를 주재료로 한 코스 요리를 고급스럽게 만들어서 제대로 먹어보겠습니다.

 

1. 애피타이저: 바냐카우다


바냐카우다는 생채소와 삶은 채소를 고루 즐길 수 있는 이탈리아 요리입니다. 채소를 찍어먹는 따뜻한 바냐카우다 소스는 원래 마늘과 안초비, 올리브오일로 만드는 건데 저는 독특한 풍미를 더하기 위해 가니미소(삶은 홍게 혹은 대게의 내장만 모아 통조림으로 만든 것인데, 우리말로는 ‘게딱지장’이라네요)를 추가합니다. 식물성 주재료에 동물성 소스를 곁들여 맛을 주는 방법입니다.


우선 올리브오일에 절여진 안초비 50g의 가시를 손으로 제거해둡니다. 그리고 냄비에 우유를 붓고 마늘 10알을 넣고 약불에서 부드럽게 삶습니다. 우유는 마늘이 삶아질 정도면 됩니다. 마늘을 건져내 체에 내린 것을 안초비, 가니미소 80g, 그리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100ml과 함께 믹서에 넣고 갈아줍니다. 여기에 다시 올리브오일 200ml를 천천히 부어넣습니다. 이렇게 올리브오일을 한꺼번에 다 넣어 갈지 않고, 나중에 따로 넣어 유화시키면 소스가 혀에 닿을 때 부드러워지지요. 바냐카우더도 퐁뒤처럼 전용용기가 있어서 은근하게 가열해 따뜻한 상태로 테이블에 올리는데, 전용용기가 없으면 최대한 따뜻하게 해서 드시는 게 좋겠습니다. 셀러리, 오이, 당근, 피망, 배추 등 생식이 가능한 채소와, 삶은 감자, 살짝 데친 아스파라거스,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등 익힌 채소를 함께 내서 소스를 찍어먹습니다.

 

바냐캬우다


여기서 마늘을 우유에 삶는 건 마늘의 강한 향과 맛을 빼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마늘향을 활용할 때가 있지요? 저는 참치를 구울 때 슬라이스한 마늘을 볶고 난 마늘기름을 이용합니다. 생선의 경우 마늘이나 고추(페페론치노)의 풍미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마늘은 한국음식에는 여기저기 많이 쓰이지만 제가 전공한 일식에는 활용도가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그냥 설탕물에 조려서 떡처럼 쫀득해진 통마늘을 먹습니다. 물론 술안주로요.


2. 메인: 무스테이크


무는 한식에서나 일식에서나 많이 사용되지요. 그래서 고기처럼 부위별로 그 쓰임새를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무


그런데 무 하면 어떤 식감이 떠오르시나요? ‘아삭아삭’이 지배적이지요. 생무를 한 입 베어물었을 때 느껴지는 청량감과 알싸한 매콤함. 그런데 무스테이크는 요런 것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무를 두껍게 잘라 부드럽게 삶은 후, 연한 간을 하고 다시 굽는 것입니다. 입안에서 녹는 부드러운 식감이 이 요리의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우선 통무를 2cm의 두께로 자릅니다. 껍질 쪽에 질긴 식이섬유질이 많이 있으므로 껍질쪽을 두껍게 돌려깎기 합니다. 냄비에 무를 넣고 무가 잠길 정도로 쌀뜨물을 붓습니다. 쌀뜨물을 쓰면 그냥 물에다 삶는 것보다 조직이 부드럽게 잘 삶기며 쌀뜨물 내의 전분질이 무의 조직에 스며들어 무가 부스러지는 것을 방지해주기 때문입니다. 쌀뜨물은 생쌀을 처음 씻어낸 물은 버리고 두번째 나오는 물부터 모아서 사용하는 건 아시지요? 그렇게 무를 부드럽게 삶습니다. 이쑤시개로 무의 중앙을 찔러봤을 때 ‘쑤욱’ 하고 들어가면 OK. 삶은 무를 건져내 표면을 흐르는 물에 조심스레 씻어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입니다. 가쓰오부시 육수(혹은 물) 800ml, 국간장 40ml, 맛술 40ml을 섞어 끓입니다. 여기에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 기름기를 제거한 닭껍질 20g 정도 넣어주면 더 좋습니다. 닭껍질에서 우러나는 동물성 감칠맛과 약간의 기름기가 입맛을 더 돌게 하지요. (닭고기 손질 후 남는 닭껍질을 모아서 끓는 물에 데쳐 식힌 후 쓸 만큼 포장해 냉동해두시면 편합니다.) 육수가 끓어오르면 약불로 낮춘 후 삶은 무를 넣고 간을 들입니다. 10분 정도 무를 삶은 후에 간을 들이는 건, 처음부터 양념을 한 후에 무를 삶으면 무가 부드러워지기도 전에 양념이 졸아들어 맛이 짜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렇게 여러 단계로 나누어 만들어야 합니다.

 

무스테이크


이 상태의 무는 그냥 먹어도 좋은데, 스테이크니까 뜨거운 팬에 살짝 겉면을 구워내면 더 먹음직스럽습니다. 스테이크처럼 접시에 내도 좋고, 통째로 밥 위에 올려내도 좋겠습니다. 얼마 전, 푸아그라와 조합해봤는데 그 역시 잘 어울리더군요.

 

3. 디저트: 당근카스텔라


디저트는 당근으로 만드는 카스텔라입니다. 당근을 깨끗이 씻어서 껍질까지 사용하기로 합니다. 당근 350g을 한 입 크기보다 좀 더 큼직하게 잘라 김이 오른 찜통에 찝니다. 이쑤시개로 찔러봐서 부드럽게 들어가면 꺼내서 체에 내립니다. 부드러운 찌개용 두부 150g을 깨끗한 행주로 감싸고 그 위를 무거운 것으로 눌러서 수분을 빼준 뒤 역시 체에 내립니다. 당근과 두부를 섞고 달걀 5개, 달걀노른자 2개, 설탕 75g, 생크림 50ml, 우유 50ml, 꿀 35g, 소금 1작은술을 마저 넣은 뒤 푸드프로세서로 갈아줍니다. 굳힘틀에 부어 윗면을 평평하게 해준 다음 김이 오른 찜통에 넣고 약불에서 40분간 찝니다. 불이 강하면 반죽이 마구 부풀어오릅니다. 완성됐으면 완전히 식힌 후에 적당한 모양으로 잘라 담습니다. 식은 후 잘라야 절단면이 깔끔하지요.

 

당근카스텔라


당근은 갈변이 잘 되지 않아서 샐러드에 사용하기에도 편한데요. 껍질쪽이 훨씬 맛이 있다는 걸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익히면 전반적으로 당도가 높아지지요. 당근은 붉은색을 내기 위해 넣기도 하는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당근의 비율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붉은색이 팽창해보이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피망과 당근을 넣었을 때 피망이 5개라면 당근 3개 정도만 넣으세요.

 

4. 보너스: 비트소주칵테일


디저트까지 먹었는데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면, 혹은 디저트까지 먹였는데 손님들이 갈 생각을 안 한다면, 비트로 달콤한 칵테일 한잔을 준비하겠습니다. 비트는 생으로 잘라 샐러드로 많이 먹지만, 가열하면 단맛이 무척 강해집니다. 호일에 사서 오븐에 구우면 군고구마처럼 되는데, 이걸 샐러드에 넣어도 별미입니다.

 

비트소주칵테일


비트 500g을 강판에 갈아서 김발로 감싸 물기를 뺍니다. 그걸 끓는 물에 넣고 10분간 끓여서 단맛도 올리고 특유의 냄새도 적당히 제거합니다. 체에 받쳐 물기를 제거한 후에 식힌 것을 믹서에 넣고 레몬즙(3개 분량), 설탕(180g)과 얼음(200g)을 넣고 갈아줍니다. 마지막으로 탄산수 500ml를 붓고 휙 한 번 더 갈아주면 그 상태로 비트에이드가 됩니다. 여기에 소주를 적당량 섞으면 비로소 비트소주칵테일이 완성됩니다. 물론 술은 취향에 따라 골라 넣으면 됩니다. 붉은빛깔이 강렬해서 ‘마성의 흡혈강록주’라고 제 맘대로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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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마스터셰프코리아 #채소 #요리 #레시피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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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아이

2020.06.27

마지막 '마성의 흡혈강록주'가 너무 강렬해서 앞 내용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ㅋㅋㅋㅋ
'허허'라고 쓰신 게 너무 귀여우셔서 웃음이 절로 나와요ㅋㅎㅎㅎ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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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선

2014.07.22

채소의 변신... 채소를 많이 먹는 편인 저로서는 정말 반가운 정보네요. 누구나 관심을 가지면 이처럼 평범한 재료로도 시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요리로 탈바꿈한다는 것이 새삼 진리인 듯하네요.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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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건

2014.05.08

30여년간을 한중일식 위주로만 먹으며 공부하다가 이제 양식 배운지 2달차인데 나이가 있다보니 어린애들 데리고 양식 위주의 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지금 코스요리 짜는것 때문에 머리가 폭발 직전이었거든요. 이글 보고 뭔가 힌트들과 자신감을 얻고 갑니다! 최강록님의 요리에 대한 지식도 훌륭하지만 아이디어도 진짜 대단한것 같습니다. 방학 때 강록님이 계시는 학원에서 한번 배워보고 싶네요 ;ㅁ; 새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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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그림)조남준

일본요리 전공. 한때 조림요정이라 불리던 <마스터셰프 코리아 2> 우승자. 지금은 은둔형 맛덕후. 집에 틀어박혀서 맛을 실험해보기를 좋아함. <최강록의 맛 공작소>에서는 부엌을 구석구석 뒤져볼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