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셰프 코리아>에 나가기 전에 저는 일본식 반찬 가게를 했습니다. 아주 작은 공간이어서 테이블도 없었으니 손님들이 문을 열자마자,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제가 바로 앞에 서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시곤 했지요. 반찬을 만들어 진열을 해야 손님들이 오시니 팔리건 안 팔리건 그 작은 가게를 채울 만큼 많이 만들어놔야 했습니다. 처음엔 양 조절에 실패해서 남은 것은 다 제가 먹었습니다. 먹다먹다 그래도 남으면 어머니한테 맛보시라고 계속 가져다드렸더니 나중엔 어머니도 한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든 반찬 맛있는데, 사람들이 몰라주는 거다. 그러니 더 갖고 오지 마라.”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시작한 가게에 드디어 여러 번 와주시는 손님이 생겼습니다. 대부분 동네 아주머니들이었는데, 이분들은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며 말 거는 걸 좋아하시더군요. 와서 사주시는 건 좋았지만 질문을 하실 때마다 저는 조마조마했습니다. 제가 대답을 잘 못할까봐서요.
물론 가장 많이 하시는 질문은 “이건 왜 이렇게 비싸요?” 저는 조림을 좋아해서 오래 조리다보면 반찬값보다 가스비가 더 나오기도 했으니 저에겐 비싼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질문이 들어왔으니 저는 그 ‘왜’에 대해 설명을 해드려야 했습니다. “왜 비싸냐면요... 저는 원래 조미료를 쓰지만 이 동네분들이 싫어하시니 안 쓰려면 다시마에 가쓰오부시를 쓰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면 나중에 시식까지 하게 해드렸지요. 그러다보면 “이것도 주세요” 하시면서 더 사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면 정말 기뻤습니다. 심지어 카레 같은 건 한 팩 가져가서 드시라고 드리기도 했습니다. 설명을 잘해드린 손님은 다시 찾아오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단골을 만들어 장사를 오래할 생각이었습니다. 하루 40만 원만 벌면 그래도 2년은 버티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매출은 하루 6~7만 원. 임대료 내기도 힘들었지요. 그러다 저희 가게 바로 앞 아파트 단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인터넷카페에 어떤 분이 저희 가게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그 집 특이해요.” 그렇게 소문이 나게 되자, 다른 분이 결정적인 근거를 들어 저희 가게를 추천해주셨습니다. “그 집 반찬을 사다줬더니 저희 집 애가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그 집 아이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동네 아이 엄마들이 저희 가게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매상이 올랐는데, 하루 12만 원. 애들은 먹어봐야 정말 얼마 안 먹더군요. 저희 가게는 ‘유아식 가게’라는 낙인만 찍혔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일부러 어른들만 먹도록 손바닥만 한 김초밥, 큼직한 생선구이를 만들어봤습니다. 그랬는데 그 동네 애들이 또 그걸 좋아하며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성인용’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유아용’으로 본의 아니게 자리잡으면서 저는 가게를 접어야 했습니다. 6개월 만에 문을 닫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정말 6개월 만에 문을 닫을 수도 있구나’였습니다.
그렇게 망하고 나니, 나는 레시피대로 열심히 하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맛이 뭘까, 궁금해졌습니다. 요리책에는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이런 맛의 요리가 나온다, 끝!” 하고 마는데, 왜 이렇게 하면 이런 맛이 나는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고민은 더 깊어져만 갔습니다. 이건 왜 맛이 있는 것이고 이건 왜 맛이 없는 걸까. 그 원리는 무얼까. 대체 맛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어떤 재료에서 어떤 맛을 끌어내야 맛있는 요리가 될까. 혼자서 끊임없이 실험해보았습니다.
결국 제가 찾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맛있다는 건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재료 본연의 맛’이라니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맛이 원래 그대로,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풍부하게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란 재료가 가진 맛을 제대로 알고 그 맛을 풍부하게 끌어내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맛과 재료, 그 조리방법은 앞으로 이 코너를 통해 차근차근 풀어내겠습니다.)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요리란 참 추상적이고 막막하고 어려워만 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리를 어려워하시는 분들께 요리는 여자분들이 하는 ‘화장’과도 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바로 화장의 효과를 본 사람입니다. 물론 저는 화장을 하고 다니지도 않고, 사실 <마스터셰프 코리아>에 나가면서 처음 화장을 ‘당해’봤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100인의 오디션’에 나갈 때만 해도, 반찬가게 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절망에 찌들어 있어서 참 추레했습니다. 그런데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서 점점 더 오래 남아 있을수록 화장을 해주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나중에 방송으로 제 모습을 보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나오더군요. 뿌듯했습니다. ‘아 멋있다!’...라고 주변에서 얘기도 해주었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 다시 영 아닌 상태로 되돌아왔지만요.) 시즌 1을 봤을 때 요리하는 사람들 얼굴이 참 반짝반짝하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다 화장의 힘이었습니다.
사람을 꾸며서 돋보이게 해주는 게 화장이라면 식재료를 꾸며서 돋보이게 해주는 게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짙은 화장을 하느냐 옅은 화장을 하느냐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지요. 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한 양념으로 입맛을 당길 것이냐 본 재료의 맛을 강조할 것이냐, 스타일의 선택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화장을 진하게 하는 여자를 보면 부담을 느끼는데요. 화장도 한 듯 안 한 듯 하는 게 추세라고 하지요. 요리도 칼로리를 생각하면서 가벼워지는 추세입니다. 서양요리를 예로 들자면, 예전에는 버터와 크림을 듬뿍 써서 유지방의 풍부한 맛을 냈지만, 요즘은 서양의 셰프들도 동양의 감칠맛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실제로 제가 일본에 있을 때 프랑스 셰프들이 와서 다시마 육수, 가쓰오부시 육수를 배워가는 것도 봤습니다.
다시 말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작업이라기보다 재료의 맛을 살려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요리사는 비유하자면 얼굴의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강조해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접근하시면 어렵지 않게 느껴질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화장이든 어떤 스타일이라도 하려고 하면 그 원리를 알아야 할 것이고, 원리를 적용하려면 귀찮아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앞으로 이 코너를 통해 어떤 재료가 어떤 맛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 맛들을 ‘살려낼’ 수 있는지 뚝딱뚝딱 실험을 해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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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그림)조남준
일본요리 전공. 한때 조림요정이라 불리던 <마스터셰프 코리아 2> 우승자. 지금은 은둔형 맛덕후. 집에 틀어박혀서 맛을 실험해보기를 좋아함. <최강록의 맛 공작소>에서는 부엌을 구석구석 뒤져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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