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 : 위험한 소문> 거짓말, 낚시질, 사찰 사이에 오롯이 남은 진심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상업영화와 사회고발 영화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모험을 걸지 않는다. 오히려 상업영화를 표방하고, 그 속에 강한 메시지를 담아 이 뒤틀린 사회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은유의 화법 대신 돌직구를 선택한 만큼, 세련된 맛 대신 거칠지만 얼큰한 맛을 낸다.
글ㆍ사진 최재훈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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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손가락이다. 이전에 유명 연예인의 동영상이 떠돌았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은 대중화되지 않았고, 스마트폰은 아예 없었던 그 시절, 동영상은 비디오테이프와 CD로 유통되었다. 소문은 늘 입과 입으로 전해지고, 그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는 방법 역시 굉장히 아날로그적이었다. 결국 비디오테이프와 CD를 돌리고 돌려 천만 명에게 퍼졌던 유통시간은 최소 6개월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전 한 연예인의 누드 사진은 카톡과 SNS 등을 통해서 단 6시간 만에 천만 명에게 퍼졌다고 한다. 링크를 걸고 공유만 누르면 끝나는 스마트한 세상 속, 이렇게 소문은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구전의 형태에서 눈으로 읽고 손가락으로 펌질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소문이 퍼지고 진화하는 그 과정에 입이 아닌 ‘손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김광식 감독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 우곤의 손가락은 왜 그렇게 많이, 자주 부러지는지, 왜 이 모든 소동의 해결책이 손가락인지 오롯이 영화 속에 담아낸다.


손가락의 거짓말과 손가락질의 파급력에 대하여…….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상업영화와 사회고발 영화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모험을 걸지 않는다. 오히려 상업영화를 표방하고, 그 속에 강한 메시지를 담아 이 뒤틀린 사회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은유의 화법 대신 돌직구를 선택한 만큼, 세련된 맛 대신 거칠지만 얼큰한 맛을 낸다. 영화는 잘 나가는 신인배우가 국회의원 스폰설 때문에 괴로워하다 자살을 택한 이후, 모든 것을 잃게 된 매니저 우곤(김강우)를 중심에 둔다. 이 소문의 근원은 일명 사설정보지라 불리는 찌라시이다. 우곤은 찌라시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직접 찌라시 제작과 유통의 시장 속으로 파고든다. 여기에 찌라시 유통 전문가 박사장(정진영)과 불법도청전문가 백문(고창석)이 팀을 이뤄 우곤을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우곤은 찌라시가 한낱 소문의 유통이 아니라 정재계의 검은 손들이 얽혀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개인이 맞서기에 너무나 거대한 세력은 거친 폭력으로 우곤을 제압하려 한다.



연예인의 자극적인 스캔들 기사만 터져도, 배후에 숨겨야할 정치적 사건이 있으리라 의심받는 요즘,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가설이지만 충분히 설득 가능한 지점까지 밀고 들어간다. 조작된 소문의 실체에 정계가, 또 그 이면에는 재계가 얽혀있을 거라는 상상 자체는 참신하지 않지만 그 상상을 대놓고 드러내고,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 꽤 뚝심있다. 여기에 자극적인 수 있는 소재를 선정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SNS와 인터넷을 통해 돌아다니는 온갖 루머와 음모론이 누구의 손에 의해서 제작되고 유통되는지 파고드는 과정은 충분히 흥미롭다. 그리고 이게 순전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은 영화를 더욱 더 생동감 있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찌라시의 제작과 유통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 김광식 감독은 실제로 찌라시 유통업자와 찌라시의 소문을 공유하고 만들어내는 정보맨들을 직접 만나 취재했다고 한다.

전공법으로 승부를 걸기에 자칫 뻔하거나 예측 가능한 이야기 때문에 틈새가 보이기도 하는데, 배우들의 연기가 채워준다. 늘 몸을 혹사시키는 연기를 하지만, 역시 빼어난 감정 연기에도 출중한 김강우가 뛰고 구르고 맞고 꺾이지만, 진실을 향해 뛰어드는 뚝심은 끝내 꺾이지 않는 우곤을 연기한다. 액션 스릴러 장르로 분류될 만큼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의 전개 사이에서도 애지중지 키운 여배우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세상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은 김강우이기에 가능해 보인다. 여기에 비열한 악역 박원상과 차갑고 잔인한 악역 박성웅의 연기는 관객들이 우곤을 더욱 동정하고 지지하게 만들어 준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우곤을 도와주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중심을 잡아주는 정진영의 안정적인 연기와 코믹하게 완급을 조절하는 고창석은 진심어린 연기로 이러한 의문을 잠재운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짙은 사회고발 대신 상업영화의 틀 속에 우리 사회의 병폐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정재계의 비리와 연예 비즈니스 속에 숨겨진 추악한 실체를 파고든다.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집중하고 공감할만한 비장미는 끝까지 가져간다. 영화의 초반부에 우곤은 찌라시 유통업자를 쫓기 위해 맨발로 자동차를 추격한다. 어쩌면 거대 사회의 비리에 맞서는 개인의 노력이라는 것이 이토록 숨 가쁘고 실현 불가능하고, 쫓다 놓쳐버리는 것이 아닐까 허무해지는 순간에 우곤의 눈앞에 그토록 잡길 원하던 자동차가 휙 지나간다. 우직하게 쫓아서 결국 소문의 근원지와 수뇌부를 발견하고 헤집어 놓는데 그들이 썼던 동일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마지막 장면은 있을 법하진 않지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긴 한다. 그간 <도가니><공정사회>, <부러진 화살> 등의 사회고발 영화들이 속 시원한 복수의 기분을 선사해주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약한 개인이 악의 세력을 일망타진한다는 이 판타지야 말로 우리 모두가 꿈꿔오던 공정사회에 대한 믿음처럼 느껴진다. 목숨까지 걸고 지켜내는 우곤의 신념 어린 한 마디는 그래서 오랜 울림으로 남는다.

“가만있으면 계속 그래도 되는 줄 알 거 아냐…….”


<내 깡패같은 애인>

찌라시를 통해 스캔들이 났을 때, 우곤 조차 소문이 정말 거짓인지 자신의 연기자에게 물어본다. 또 동영상이 떠돌기 시작했을 때, 우곤을 도와주는 동료들은 동영상이 정말 있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두 장면을 통해 김광식 감독은 이 실체 없는 소문이 얼마나 대중을 의심하게 하고 흔들어놓는지 되묻는다. 기자라는 사람들이 어느새 소명의식도 책임감도 없이 연예인의 SNS를 퍼 나르고, 가짜 제목으로 낚시질이나 하고 있는 요즘, 어쩌면 소문이 더욱 신빙성이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한탄 속에서도 이상하게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다. 이는 김광식 감독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때문인 듯하다. 김광식 감독은 2010년 <내 깡패같은 애인>을 통해서 3류 깡패와 88만원 세대 속 여성의 로맨스를 통해 일명 루저라 불리는 사람들을 따뜻한 품성으로 품어냈었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과 사회의 비리를 파헤쳐보려는 이야기 사이에도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기를 바란다.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했지만, 개인과 진실의 소중함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을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닐 수 있게 해주는 진심이자 뚝심이다.


[관련 기사]

-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1) : <집으로 가는 길>
-<공범> 피해자의 고통에는 ‘시효’가 없다
-그럼에도 희망이 필요한 이유, <소원>
-여전히 미개한 사회를 향한 쓴 소리: <노리개>, <공정사회>
-<돈 크라이 마미> 성폭행 피해 엄마는 왜 잔인한 복수를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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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 위험한 소문 #김광식 #김강우 #정진영 #고창석 #박성웅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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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작살

2014.03.14

이상호 기자를 모티브로 했다고 하던데..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박성웅씨의 명연기도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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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선

2014.02.28

오늘 오후에 보고 왔습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의 현실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듯해서
한편으로는 통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네요. 말없는 발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이나 촌철살인과 같은 한자성어가 이처럼 와닿는 경우도 없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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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레옥잠

2014.02.27

다들 연기파 배우분들이라 영화가 참 기대가 됩니다.
특히 박성웅씨가 이번엔 어떤 카리스마를 보여줄 지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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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