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넴이 돌아왔다
에미넴이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새 앨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역시나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네요. 한동안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쳤던 에미넴이 이번 앨범에서는 한층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앨범, 에미넴의 입니다.
글ㆍ사진 이즘
201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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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Eminem)


에미넴의 타깃 층을 단순히 힙합 마니아의 범주로만 가둬두면 곤란하다. 그는 이미 랩뮤직에 친숙하지 않은 이들도 한 번씩은 건드려보게 되는, 혹은 꾸준히 디스코그래피를 따라가게 되는 흔치 않은 래퍼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감상에 있어서 그의 삶과 철학, 내러티브 기법에 대한 이해 등은 장르의 특수성 상 분명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앨범마다 몇백만장씩 팔아치우는 그에게 있어 이는 충분조건에 머물 뿐 사실 필요조건은 되지 못한다. 즉, 다시 말해 단순히 비트의 매력이라던지, (내용이 아닌 철저히 언어적인 측면에서의) 라임이나 플로우, 펀치라인에서 느껴지는 쾌감과 주위 상황을 비꼬는 위트, 완전한 ‘정통’이 아닌 대중성을 수용한 중화된 스타일로서의 편곡과 구성으로 인해 그의 음악을 찾던 이들도 상당수라는 이야기다.


잠깐 과거를 돌아본다면, (2004) 후 약물중독의 후유증으로 인한 슬럼프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발표한 (2009)와 (2011)는 의도와 생각이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삐걱대는 톱니바퀴였다. 그 역시 대중 또한 포용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We made you」 나 「Love the way you lie」 와 같은 곡을 싱글로 내세우긴 했지만, 수록곡들의 대부분은 당시의 심정과 맞물린, 「The way I am」 식의 격앙된 래핑으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반기라 칭할만한 (2002)까지의 랩이 어려운 상황에서 탄생한 「Slim Shady」 라는 자아가 즐기는 놀이에 가까웠다면, 이후의 변화는 전보다 무거워진 래퍼로서의 사명감으로 인해 한동안 이를 장난스럽게 대할 수 없었던 심리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이번 신보는 지난 두 장의 앨범보다 더욱 환영받아야 마땅하다. 어긋나던 두 가지의 조합에 성공하며 힙합을 넘어 팝이라는 넓은 범위의 카테고리를 어느 때보다도 자연스레 섭렵하고 있다. 우선 음성의 볼륨이 줄이고 남은 지분을 다양한 음색에 주었다. 「My name」 이나 「The real slim shady」 와 같은 빈정거림이 담긴 하이 톤이나, 「Stan」 과 같은 중저음의 래핑이 살아나며 그간 샤우팅을 견디느라 귀가 아팠던 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해빙시킨다. 그와 함께 장난스레 툭툭 건네던 그만의 위트도 돌아왔는데, 「So far」 를 통해 이 두 가지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유명세로 인해 받는 고통을 재미있게 표현한 이 곡은 반복되는 기타 리프와 레게 리듬, 꾸준히 복부를 때리는 듯한 잽과 같은 랩의 어울림이 그를 공부하듯 들어온 사람이든 일상생활의 BGM으로 들어온 사람이든 관계없이 차별 없는 소구력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닥터 드레와 함께 새로이 프로듀서로 맞아들인 릭 루빈(Rick Rubin)이 주도한 올드스쿨로의 회귀도 접근성을 높이는 데 한 몫 한다.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의 「The new style」 과 「Fight for your right」 을 샘플링함과 동시에 전면으로 나서는 디스토션 사운드가 기분 좋은 과거로의 회귀를 돕는 「Berzerk」, 디제이 카릴(DJ Khalil)의 지휘하에 퍼커션의 울림이 리즈 로드리게스(Liz Rodrigues)가 읊는 적자생존 법칙의 확성기 역할을 하는 「Survival」 싱글 2연타는 전과는 다른 방향성의 대중성을 에미넴에게 장착시켜준다. 여기에 또 한 번 리아나(Rihanna)와 합을 맞춘 「Monster」, 「I need a doctor」 에서 비장미를 돋보이게 만들었던 스카일라 그레이(Skylar Grey)의 음색이 다시 한 번 결과물에 윤을 내주는 「Asshole」 등 흡인력 있는 트랙이 산재하고 있다.


이렇듯 음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좋은 밸런스감이 우선적으로 체감되지만, 좀 더 이야기적인 면을 파고들자면 이 앨범의 핵심은 그간의 혼란 이후 찾아낸 안정과 그로 인한 심경변화로 자리를 옮긴다. 작품의 서두이자 알맹이, 그리고 와의 미싱링크를 자처하는 듯한 소름 돋는 구성의 「Bad guy」 는 단연 압권인데, 자살한 ‘Stan’의 동생 매튜가 에미넴을 살해하는 내용, 끝으로 치달을수록 웅장해지는 반주와 합을 이루는 후반부의 폭주는 앞으로 있을 커리어의 변곡점을 시사하고 있다(혹자는 이것이 마지막 앨범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하는 중). 여기에 「Talkin' 2 my self」 에서 더 이상 자신은 주인공이 아님을 인정해놓고, 결국 그것은 이 곡을 위한 넉살이었다는 듯 다시금 왕을 넘어 신으로 군림하려 하는 초고속 래핑의 「Rap god」, 어릴 적의 괴로운 기억들을 떠올리며 지금 자신이 랩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자부심을 되새기는 「Legacy」 와 「Brainless」 등 완벽히 재활에 성공한 모습을 가사 안에 투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친어머니인 데비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의 「Headlights」 는 그 메시지의 놀라움과 함께 러닝타임 내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연출한다. 「Kill you」, 「Cleanin' out my closet」 을 통해 갈 곳 없는 적개심을 일삼았던 그는 결국 떨어져있어도 같이 빛나는 헤드라이트와 같은 관계였음을 뒤늦게 깨달으며 자신의 잘못을 대중들을 증인으로 둔 채 절절이 고백한다. 피쳐링을 맡은 펀(Fun)의 네이트 루스(Nate Ruess)는 감정을 배가시키며 좀 더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그리고 뜨겁게 저마다의 경험으로 비춰보게 만든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덧 40이 넘어 한명의 부모로서 가지는 책임감이 재기의 발판이 되었고 결국 이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이해로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세월의 흐름’이 가져다 준 고해성사다.

회복 후에 안정된 그의 모습이 명확히 드러난 작품이다. 본편만한 속편 없다지만 그래도 이 후속작은 13년 전 1편에 전혀 누가 되지 않을, 그간 묻혀있던 과거의 유산들을 치유된 심리상태로 발굴해 멋들어지게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라 할 만큼의 위용을 지니고 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음색에 대한 활용법을 되찾았으며, 더욱 고무적인 것은 그만의 위트가 살아나 잠시 무서운 아저씨 같았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만큼의 호감이 다시금 생겨났다는 점이다. 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과 마니아의 경계 없이 전달하던 힘을 되찾은 그 원천은 바로 추락 후 정상에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버리고 그저 랩 자체에 생의 의미를 부여한 마인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는 이제 심적으로 편해진 듯하다. 그리고 이에 큰 수혜를 받는 것은 바로 누구도 아닌 좋은 음반을 기다리는 음악 애호가 들일 것이다. 완전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에게, 누구의 허락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을 대표해 이곳을 빌어 한마디 하련다. 있잖아요, 마샬. 난 당신을 사…사…사… 레즈비언!(So much better의 L…L…L… Lesbian!의 패러디)

글/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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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