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품하면서 잘 지냈어요(웃음).”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준비하느라 열심히 탭댄스 배울 때 보고 처음 만난다며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잘 지냈는지 그녀가 환하게 웃네요! 일단 안심.
방진의 씨는 제가 없는 사이 <파리의 연인> <셜록홈즈> <분홍병사> <그날들> 등 많은 작품을 했거든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가장 눈에 띄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한참 머물러 봤습니다.
“힘들긴 했는데 많이 배웠죠. 그 작품을 하기에는 조금 어린 나이가 아니었나... 뮤지컬을 하다 연극을 한 건데, 게다가 모놀로그잖아요. 독백이 5분 정도니까 처음에는 무척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40대가 되면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는 상상으로 하는 거니까. 물론 더 재밌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마흔이 넘어서 결혼생활도 하고 하면 또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뮤지컬해븐에서 나온 담당자가 함께 있는데, 계속 다른 작품 얘기만 했네요. 하지만 이 분도 제가 떠나기 전에는 다른 기획사에 있었던 분이니 이 바닥이 그렇지 않겠느냐며 달래 봅니다(웃음). 자, 이제 그만 오늘의 작품으로 돌아갈게요. 바로 뮤지컬 <웨딩싱어>랍니다!
“따뜻한 사랑얘기죠. 연습실은 굉장히 더워요. 안무가 많고 역동적이어서 다들 엄청 뛰고 땀을 흘리거든요. 저더러는 ‘땡보’라고 놀리죠. 놀고먹는다고요(웃음). 줄리아는 노래와 드라마 위주거든요. 하지만 장면이 얼마나 많은데요!
결혼식에서 노래하는 로비 역에는 김도현 씨, 줄리아의 약혼자 역에는 배기성 씨가 눈에 띄는데, 함께 연기하는 파트너는 어떤가요?
“도현 오빠 정말 열심히 해요. <싱글즈>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루저일 때는 정말 처절하게 연기하고, 어떻게 그렇게 잘 표현하는지. 아마 재미난 로빈을 보게 되실 거예요. 배기성 씨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고요. 그런데 아직도 연인으로서는 어색해요(웃음).”
그녀는 지난 2009년에도 이 작품에 참여했는데요. 앞선 인터뷰에서 <웨딩싱어>는 일부러라도 했던 작품이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항상 무대에서 강하고 튀는 캐릭터만 맡긴 때문에 평범하고 여성스러운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고.
“요즘에는 계속 무난한 역할만 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초연 때와는 다른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저 착하고 수동적이고 말 그대로 청순한 여자 주인공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는데, 줄리아를 알면 알수록 스마트한 면도 있고, 나중에는 자기 사랑을 찾아서 떠나거든요. 용기 있는 여자구나. 현실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그 과정이 조금 오래 걸렸지만... 제가 너무 깊게 생각하나요(웃음)?”
무슨 말씀. 계속 하소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좀 더 줄리아답게 행동하고 능동적으로 되는 거예요. 아,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구나. 제대로 만나면 이렇겠구나. 저도 능동적이라서 행동을 먼저 하는 편인데, 초연 때는 이 재밌는 걸 왜 못 찾았나 싶어요.”
그런데 오늘은 무대 밖에서도 꽤 활기차 보인다고 했더니, 낯을 가려서 인터뷰에 따라 다른 것 같다며 이런 분위기는 좋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내친김에 물어봐야죠.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방진의 씨의 사랑은 어디에 있는지!
“저도 용감하게 찾아가야겠죠. 내 성향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현될 때가 있잖아요. 무대에서는 용감한 캐릭터인데 사람이랑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이해해요. 저희 엄마도 저더러 ‘일할 때처럼 연애하라’고 하십니다, 그려.
“겁을 냈던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게 무조건적으로 마음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저는 겁을 내고 마음을 늦게 여는 것 같아요. 밀당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걸 다 표현하면 저 사람이 떠날 것 같은. 그래서 계속 지켜만 보는 거죠.”
이상형은?
“그냥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요. 심플하고. 사실 예전에는 지적이고 생각이 많은 사람을 좋아했는데, 제가 많은 걸로 족한 거 같아요. 그런 저를 잘 케어해주면 될 것 같아요.”
외모나 능력은 보지 않는다는 소린가요?
“어, 외모나 능력은 당연히 기본이 돼야죠(웃음). 따뜻한 사람. 정이 많고 둥글둥글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직업군은?
“그런 건 전혀 상관없어요.”
공연을 전혀 보지 않는 사람도 괜찮다는 건가요? 그런 분들 있더이다.
“그건 좀 안 되겠는데요. 사실... 저 요즘 사랑이 시작되겠구나 하는 사람이 있어요!”
마라톤 인터뷰 끝에 우리는 이렇게 방진의 씨에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조짐을 발견했습니다. 오프 더 레코드로 이것저것 찔러 보았으나, 끝내 그가 누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네요. 때 되면 알게 되겠지 생각하는 태평한 기획사 담당자의 성격이 부럽습니다. 그나저나 따뜻한 사랑을 노래하는 뮤지컬 <웨딩싱어>와 함께 그녀에게도 사랑이 시작됐으니, 무대에서 얼마나 풍성한 빛깔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여배우로서 감성이 훨씬 풍부해진 30대 중반이에요.
“시야가 넓어진다는 게 이런 걸까요? 받아들이는 게 넓어졌죠. 그리고 예전에는 작품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 무대만큼 진실한 곳이 없거든요. 20대에는 호흡이 떠 있었다면 지금을 띄우려고 해도 잘 안 되거든요. 다 그때에 맞는 일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여성들은 나이 드는 것을 거부하지 않던가.
“저는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어색할 때도 있죠. 마음은 진짜 소녀인데, 가끔 저를 보면서 ‘뭐야, 나이가 들었네?’ 생각될 때가 있거든요. 그리고 치열함이 없어진 것 같아요. ‘이번에는 꼭 내가’ 이런 게 없고, 너무 여유를 부리게 돼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감정을 잘 조절해야 롱런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또 지난 15년 동안은 부모님이 주신 재능과 갖고 있는 것들로 왔다면 이제는 뭔가 다시 채워 넣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원도 생각하고, 연기도 스스로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참, 오랜만에 우리나라 TV를 보니 무대에서 만났던 많은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내던데, 외적으로나 연기적으로나 많은 것을 갖춘 방진의 씨는 무대 외 활동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요?
“기회가 되면 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 일은 끝까지 완벽하게 성사가 돼야 하는 거더라고요. 중간에 어그러지는 것도 많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편은 아니라서요.”
요즘은 TV나 영화 진출이 마치 능력처럼 여겨지잖아요. 동료 배우들이 모두 그 길에 나서면 나만 뒤떨어지는 것 같은 부담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그런 게 없어요. 그냥 ‘좋겠다, 나도 언젠가 하겠지.’ 생각해요. 지금도 무척 만족하고,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일을 하게 되면 불편한 것들도 생길 거잖아요.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지만, 일이라는 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무대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아닌가? 악착같이 해야 할까요? 오늘 인터뷰하다 문득 악착같은 면을 가져야겠다 싶네요(웃음).”
2013년 11월, 방진의 씨가 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물었습니다. 연기든 사랑이든 인생이든, 무엇이든지요. 그런데 갑자기 그녀는 눈시울을 붉힙니다.
“배우들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서로 경쟁하는 면도 있고 치열했다면, 이제는 모두 기특하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저 왜 이러죠? 여자들이 애 낳으면 이렇다는데, 호르몬이 이상한가(웃음)? 모든 것들이 비록 환상일지라도 꿈을 만드는 게 무대에서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신경 쓸 것도 많고 이겨낼 것도 많았을 텐데, 모두 사랑스러운 것 같아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앙ㅋ
2014.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