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 우리 학교 도서실이 처음으로 개가식으로 바뀌었어요. 지금 대학생들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 당시 대부분 대학의 도서관은 빌리고 싶은 책 제목과 분류번호를 적어서 사서에게 가져다 주면 사서가 서고에 가서 찾아다 주는 폐가식 도서관을 운영했어요. 그러다 처음으로 서고가 그대로 개방된 거죠. 처음 문을 연 도서관에 들어가 이 끝부터 저 끝까지 펼쳐진 책장과 그 안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내가 언제 이 책들을 다 읽지!’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거의 매일 그 서고 어딘가에 처박혀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서고를 뒤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책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렇게 미리 계획하지 못했던 책들을 접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독서습관은 좀 올드(old)합니다. 고전을 좋아하는 편이지요. 직업상 트렌드를 잘 쫓아야 해서 요즘 베스트셀러들도 읽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그 중 감명 받은 책은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독서의 분기점이 된 책들은 주로 고전 원전과 역사서입니다. 원전을 읽고 관련 논문이나 전공한 학자들의 해설서를 다시 찾아서 읽는 식으로 가지를 치면서 독서하는 걸 즐겨요.”
“글쓰기의 원칙은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재미있고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쓰자’는 것입니다. 물론 재미의 층위는 무척 다양하므로 이에 독자들이 모두 동의해줄지 모르지만요. 『카페 만우절』 은 ‘죽음’과 ‘말’이라는 두 개의 화두를 가지고 쓴 소설이에요. 이 시대, 죽음과 말은 가볍고 흔해졌지만 모든 개인들에게 이는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죠. 이 화두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여류, 나만의 방식으로 나답게 살겠다
『余流 삼국지』 에 이어 최근 첫 창작 장편소설 『카페 만우절』 을 펴낸 양선희 작가. 그의 관심사는 언제나 ‘사람’이다. 자연스러운 사람 자체의 모습을 이해하고, 서로 위로하며, 서로를 구속하거나 탄압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또 10년 넘게 경제기자를 한 까닭에 경제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양선희 작가는 “자본주의가 점차 ‘부익부빈익빈’으로 재편되는 상황이 걱정된다. 인류가 가진 재원은 부족하지 않으나 쏠림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불평등의 대가』 에서 제기한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1%의 각성’이 지금의 난국을 타계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등의 생각 말입니다. 정치인이나 정책입안자들이 경제정책을 추진할 때 가져야 할 기본 관념이라고 할까요. 어쨌든 모든 미사여구를 생략한 가장 원시적 형태의 기본적 경제정책관을 과거 제나라 환공 시대의 재상 관중의 생각에서 찾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 교재라고 꼽을 수 있는 책은 『관자』 입니다.”
양선희 작가의 서재는 ‘여류재(余流齋)’다. 여류란, 나만의 방식으로 나답게 살겠다는 뜻으로 양선희 작가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여류는 삶을 타자(他者)의 의지에 휘둘려 색깔 없이 살지는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는 글만 봐도 이건 양선희의 글이라는 분명한 개성을 갖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선희 작가에게는 궁극적으로 현판까지 새겨서 붙여놓고 싶은 서재의 이름은 따로 있다. 양 작가는 “양선희의 여류가 완성되고 난 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명사의 추천
나카야마 미호, 토요카와 에츠시 / 이와이 슌지 감독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그 죽음을 껴안고 살아가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상적이고 담담하게 그려나간 게 인상적이죠.
제이크 질렌할, 히스 레저 / 이안 감독
남성 동성애를 그린 영화입니다. 인간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축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 사랑하는 능력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처음으로 성적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영화입니다.
제인 오스틴 저/윤지관,전승희 공역 | 민음사
청소년기 여자아이들의 필독서가 있습니다. 『작은 아씨들』 『빨간머리 앤』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등. 제인 오스틴의 책들도 그런 종류의 책이죠. 어려서 저는 이런 소녀다운 독서를 많이 했는데, 그 중 오만과 편견은 20번 이상 읽었습니다. 그 다음이 작은아씨들이었죠. 이 책의 여주인공이 자아가 강했던 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올해 ‘오만과 편견 100주년’을 기념해 이 소설을 한번 편작해 볼까도 생각했는데, 올해만 제 소설을 두 개나 출간하는 바람에 생각을 접었지요.
톨스토이 저/맹은빈 역 | 동서문화사
저는 톨스토이 광팬입니다. 톨스토이 작품이라면 무엇이든 읽지요. 그 중 전쟁과 평화는 15번쯤 읽었습니다. 『안나 카레리라』는 7번 읽었고요. 톨스토이의 작품에선 현실적인 쟁점들을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실적 사회의식을 강압적으로 주입하는 게 아니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풀어나가죠. 소설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그에게서 배웠죠.
양선희 편저 | 메디치미디어
제가 소설로 등단한 후 처음 낸 장편소설이 나관중의 삼국지를 편작한 『余流 삼국지』 입니다. 삼국지는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끝난 직후 읽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제 독서 지평이 확 넓어지게 됐죠. 그 이전의 독서는 주로 서양 중심이었다면, 이로부터 동양 고전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고, 또 남성적 독서영역으로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그 후 삼국지 해설서와 관련 도서 등을 합쳐 한 80여권 정도 읽었습니다. 파생적 독서와 다양한 사고를 경험할 수 있는 바이블과 같은 책이고, 그래서 저 역시 삼국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풍몽룡 저/김구용 역 | 솔
중국 고전 입문서로 늘 추천하는 책입니다. 춘추시대를 개괄해 주요 장면들을 12권에 망라하고 있지요. 중국고전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춘추전국시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사기』의 본기?세가?열전으로 넘어가면 중국 고대사가 한 손에 잡히는 기분이 들 겁니다. 그러고 나면 제자백가도 쉬워지죠.
한비자 저/김원중 역 | 글항아리
대학 시절 『논어』 원문 강독을 한 이후 『논어』와 『중용』을 늘 책상머리에 꽂아두고 봤을 정도로 바이블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10여 년 전 한비자를 만나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보았죠.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성찰만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기도 하고요. 이 책을 기점으로 지금 저에게 큰 인사이트를 준 『순자』 『묵자』 『관자』 등으로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신동준 저 | 역사의아침
제가 탐독하는 독서 장르 중 하나가 ‘병법서’입니다. 기존에 읽었던 중국 병서로는 『손자병법』 『육도』 『36계』 『제갈공명 병법』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중국 고전 병서 10종을 모두 번역했다기에 이 책을 사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번역자인 신동준 선생의 중국 고전 번역서들은 그냥 역자 이름만 보고도 사보는 편입니다. 중국고전에 대해 해박하고, 문체가 쉽고 편하죠. 병서들 중 공직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것은 제갈공명의 『장원』입니다.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