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최갑수 “여행은 내가 사랑하려 한다는 증거”
언제부턴가 여행 에세이가 지나치리만큼 쏟아지고 있다. 감성적인 문체에 다소 과한 붓 터치가 들어 있는 사진들. 실제 눈으로 본 것들과 다른 이미지에 놀라기도 한다. ‘어디 담백한 에세이는 없을까?’ 생각하던 중, 최갑수의 책을 폈다. 대학 시절, 시로 문단에 데뷔했지만 지금은 여행자로 살아가고 있는 최갑수. 그가 정의하는 ‘여행’이 궁금해졌다.
20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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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삶. 누구나 부러워한다. 그만큼 핑계도 많다. 시간, 돈, 사람, 여유. 이 네 가지가 충족되어야만 떠나는 것이 여행이 아닐 텐데, 여행에서조차 완벽주의를 쫓는 사람을 볼 때 생활여행자 최갑수는 고개를 젓는다. 일로, 그리고 일상으로 여행을 품고 있는 그는 “여행은 세계를 읽는 행위, 그러니까 세계에 대한 독서. 그러니까 취미가 아니라 습관”이라며, “페이지를 넘기듯 길을 가고 밑줄을 긋듯 사진을 찍고, 책갈피를 끼우듯 길 위에 머문다”고 말했다. ‘여행작가’라는 낭만성을 버리고 ‘여행의 본질’을 체험하고 있는 생활여행자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soochoi) 를 보니 최근에 이집트를 다녀왔더라. 쉽게 가기 어려운 나라 아닌가. 매달 거의 해외를 나가나?
이집트 정부에서 카타르 항공을 통해 초청해서 다녀 왔다. 정기적으로 여행작가들을 데리고 가는 팸 투어가 있는데, 단체 여행이라 가이드가 따라 붙지만 장단점이 있다. 6월에는 울릉도, 강릉, 상해를 다녀왔고 7월에는 일본 규수를 다녀올 계획이다. 호주 테즈메니아 에 캠핑카를 잡지나 사보 일로 가거나, 개인적으로 단행본 작업을 위해서 가는 경우가 있다.
대학에서 국문과를 전공하고 시로 문단에 데뷔했는데, 어떻게 여행기자를 하게 된 것인가.
4학년 때 등단을 하고 서울에 왔는데, 이문재 선생님이 소개를 해줘서 <출판저널>에서 잠시 일하게 됐다. 1년 반쯤 일하고 나서 당시 창간한 스포츠지 <굿데이> 문학 담당기자로 가게 됐는데, 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데스크랑 싸우고 나왔는데 몇 달 뒤에 다시 부르더라. 그런데 이미 문학 기자는 와 있었고 다른 팀으로 가라고 했다. 야구를 좋아해서 그러면 야구 기자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스포츠팀에도 공석이 없었다. 레저팀이랑 연예부만 남았는데 연예부는 가기 싫어서 레저팀으로 갔다. 그 때는 운전면허증도 없었던 터라 바로 면허를 따고, 카메라도 전혀 몰라서 혼자 사진 공부를 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이라 애를 많이 먹었다. 노출이 많이 나간 사진을 찍어와서 팀장한테 많이 혼났었다(웃음).
일로 하는 ‘여행’은 어떤가? 여행이 주된 업무라니, 정말 부럽다.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여행을 담당하게 됐지만, 사람들 안 만나고 나무하고 돌하고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았다(웃음). 낡은 코란도를 끌고 다녔는데 행복했다. 일단 안 가본 데를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아! 여행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예전에는 휴가를 가도 그냥 집에서 책 보거나 쉬는 게 전부였는데, 내 안에 이런 유전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거다(웃음).
여행작가는 왠지 혼자 가는 여행을 더 선호할 것 같다. 동행이 있어 수다를 떨다 보면 사색하는 시간이 줄어들 테고 일정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으니.
2,3명이서 같이 가는 여행은 일단 fun하다. 계획 같은 것을 분담할 수 있어서 편리하기도 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혼자 하는 여행이 더 좋을 것이다. 나도 때로는 혼자 하는 여행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행은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거다. 생활에 발을 딱 떼어 놓고 세금, 공과금 이런 문제 다 잊고 떠나는 거니까. 보름 정도 여행을 다녀 오면 후유증이 있을 때도 있는데 여행도 습관이 되다 보니, 여행 마지막 날 ‘한국 가기 싫다’ 정도지 큰 후유증은 없다. 일상에 들어가면 가족들이 있으니 금방 적응된다.
시인으로 등단했는데, 시를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한 마음도 들었을 것 같은데.
여행이라는 게 시를 쓰는 과정이랑 비슷한 것 같다. 자연을 보는 태도나 낯설게 바라보는 것. 여행 원고를 쓰는 게 재미 있었다. 사진 찍는 것도 시와 비슷하다. 둘 다 찰나를 담아야 하니까. 사실 주위에서 문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묻곤 한다. 시를 계속 쓰다가 안 쓰면 불안하지 않냐고. 그런데 진심으로 불안감 같은 건 없다. 2,3년 전부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대신 사진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정말 작년에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아내랑 아이들을 데리고 도쿄에 갈 생각도 했다. 그런데 셋째가 생기는 바람에(웃음) 생각을 접었다.
여행기자를 하다가 프리랜서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4년 정도 일간지에 있다가 여행주간지 <프라이데이>로 옮기게 됐는데 직책이 여행팀장이었다. 데스크에서 원고를 보는 게 주 업무였는데, 글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나 나가서 취재를 하고 싶더라. 사무실 안에서 기획안이나 쓰고 있으려니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회사에 요구했다. 연봉을 올려 주거나 1년에 해외 축제를 여섯 번 보내달라고. 그런데 긍정적인 답변이 오지 않았다(웃음). 그래서 사표를 날려 버렸다.
전업작가로 사는 것, 쉽지만은 않다. 주변에 여행작가를 꿈꾸는 사람들 정말 많지 않나? 그들에게 롤 모델이 되어 줄 것 같은데.
가끔 독자와의 만남이나 강연 같은 데를 가면, 물어보는 게 생계가 가능하냐는 거다(웃음). 가능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원고료와 인세, 강연비 등을 4:3:2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나머지 1%를 어떻게 만들까 고심 중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개정판으로 나왔다. 여행 에세이로는 첫 작품인데 5년 만에 새 옷을 입은 소감이 어떤가.
우선 나이가 들었다(웃음). 그 때는 30대 중반이었는데 이제 40대가 되었으니.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3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하냐는 걱정, 불안감 같은 게 많았다. 프리랜서로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고…. 둘째 딸 제시카가 태어나기 전이었는데, 지금은 개인적으로 변화도 많고 세계관도 바뀐 것 같다.
세계관이 바뀌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10년 정도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게, 난 여행을 하면서 바른 인간이 된 것 같다. 흔히들 여행을 하면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존중과 배려라고 하는데, 그게 맞다. 초중고부터 시작해서 대학에서 공부를 한 것보다 여행을 하면서 더 많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자본주의의 악랄함을 깨달은 것도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것도 여행을 하면서다. 여행은 도덕 경전을 읽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여행에서 맛있는 것 먹고, 멋있는 것 보는 것도 좋지만 돌아오는 비행기나 혹은 차 안에서 ‘이번 여행이 나를 얼마나 변화 시켰을까’를 떠올려 본다면, 분명 100%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을 거다. 그걸 까먹지 말고 한국에 와서도 조금 더 나은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행작가 최갑수에게는 여행이 어떤 좋은 변화를 선물했나.
5월에 이집트 여행을 갈 때 머리가 복잡한 상태였다. 마흔이 되다 보니 일에서도 전환기를 맞이해야 할 것 같았고 셋째도 생기게 됐으니 더 책임감이 들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현재를 받아들이게 됐다. 너무 정직한 답인 것 같지만, 아이들도 더 열심히 키우고 내 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이걸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여행을 다녀 온다면, 대부분 YES라는 대답을 얻고 올 거다. 여행지에서 내린 결정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여행은 사람을 절대 나쁘게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행위가 여행이 아닐까.
카메라나 노트를 제외하고 여행을 갈 때 꼭 챙겨가는 것이 있나?
모카 포트를 꼭 챙겨 간다. 여행 기사를 쓰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는데,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웃음). 국내 같은 경우에도 웬만한 대도시 아니면 새벽에 문 여는 카페는 없으니까, 아예 가지고 다니는 게 편하다.
자동차는 끝없이 달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사막을 달렸다. 그리고는 사막에 도착했다.
여행 계획은 철저히 세우는 편인가? 아니면 즉흥적으로 감에 따라 이동하나?
가기 전까지 시간 단위로 철저하게 준비하는 편이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까지 공항에서 준비한 프린트를 꼼꼼히 본다(웃음). 그런데 막상 현지에 가면 안 본다. 감에 따라 움직이다. 왜냐면 이미 준비를 하면서 공부가 된 거다. ‘계획은 철저히 세우되 현실은 무시해라’. 이게 내 좌우명이면 좌우명이다. 계획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여행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즉흥적으로 일정을 바꾼 적은 없나?
라오스 여행을 하다가 루앙프라방에 반해서 그 다음 일정이었던 태국 일정을 완전히 취소하고 15일 동안 루앙프라방에 있었다. 2박3일 있었다면 안 보이는 게 보이더라. 그래서 작업할 만하겠다 싶어서 한국에 와서 여행 기록을 정리해서 낸 책이 『목요일의 루앙프라방』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다. 루앙프라방에 가면 막상 아무것도 없다. 그냥 여기 산울림소극장에서부터 홍대 마지막 골목 정도인데, 이상한 매력이 있는 거다. 현지에서 음식을 잘 먹는 편인데, 식당에 가서 현지인에게 ‘이거 맛있어?’라고 물으면 손가락질을 하면서 같이 먹자고 한다. 그러면 친구가 되는 거다(웃음). 라오스도 시골 같은 곳에 가면 할머니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의사소통이 안 돼서 라오스에서 살고 있는 교민을 꼬셔서 통역을 시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각 나라 여행객의 특성이 보일 것 같다. 일단 우리나라 사람들은 셀카를 많이 찍을 테고.
(웃음). 정말 많이 찍는다. 사진. 중국 사람들의 경우에는 네 명 가족 모두가 DSLR을 하나씩 들고 다니기도 하더라. 유럽피안들은 아직도 일회용 카메라를 많이 쓴다. 캐나다 사람들은 꼭 배낭에 국기를 달고 다니고 미국 사람들은 목소리가 너무 커서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배낭여행 같은 건 잘 안 간다. 그냥 여유롭게 즐기는 여행을 주로 한다. 일본 여행객의 경우에는 무척 조용조용하다. 가게에 와서 흥정을 하더라도, 자기네들끼리 속삭이다가 ‘안 될 것 같지 않아?’ 이러고 사라져 버린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국민성은 아직 일본을 따라갈 나라가 없는 것 같다.
턱을 괴고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고 싶은 그런 오후. 인도 라자스탄.
시인이 찍는 사진이라서 일까.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특유의 감성이 살아 있다.
아직 부족하다. 사진에 관심이 많아서 잘 찍고 싶고 배우고 싶다. 대부분 여행을 갈 때 31, 35mm단 렌즈 두 개만 들고 간다. 예전에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 찍기 위해 찍은 사진이 많아서 부끄럽다. <론리플래닛>에서 나오지 않나. ‘사냥하면서 사진 찍지 말라’고. 일단 가까이 가면 감정이 생기고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것 같다.
직업이 여행작가니까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행지 추천’을 자주 부탁 받을 것 같다.
물론이다. 문제는 무턱대고 ‘어디가 좋아?’라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거다. 몇 명이랑 갈 거고 어떤 걸 좋아하고 이런 걸 이야기하면 추천해줄 수 있지만, 그냥 여행지를 말해 달라는 사람한테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아주 친한 경우가 아니면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 음식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이집트 여행, 사막 여행도 좋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싫을 수도 있지 않나.
여행에세이를 10권 이상 출간했다. 여행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그리고 현재 준비하고 있는지?
사진을 잘 찍으려면 많이 찍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듯이, 글도 마찬가지다. 많이 써보는 수밖에 없다. 하루에 원고지 3매씩이라도 써보면 는다. 블로그를 해도 좋고 트위터를 해도 좋다. 꾸준히 써보는 게 중요하다.
정말 궁금한 것 하나.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왜 싫어하는 것일까? 굳이 하기 싫어하는 여행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살면서 여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연애를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쓸쓸할 것 같다. 방에만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한다면.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낯선 음식을 싫어하고 잠자리가 바뀌는 걸 불편해하고 땡볕에서 걷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렇다면 관광을 안 해도 되니까 게스트하우스에라도 가서 책을 한 번 봐보라는 이야기다. 집에서 보는 책이랑 라오스에서 해 지는 풍경을 보면서 읽는 책은 분명 다르게 다가온다. 아내가 지금 캠핑 마니아가 됐는데, 예전에는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 걸 그렇게나 싫어했다. 한 번만 따라와 보라고 하고 캠핑을 데려갔는데, 호텔식처럼 매트리스 깔아주고 모닥불 피워주고 와인 따라주니까 ‘갈만하네’라고 하더라. 요즘은 나보다 더 좋아한다. 초등학생 아들이랑 4살 딸아이는 집에서도 텐트 안에서 책을 보고 캠핑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보기 좋다(웃음).
블로그(http://blog.naver.com/ssoochoi) 를 보니 최근에 이집트를 다녀왔더라. 쉽게 가기 어려운 나라 아닌가. 매달 거의 해외를 나가나?
이집트 정부에서 카타르 항공을 통해 초청해서 다녀 왔다. 정기적으로 여행작가들을 데리고 가는 팸 투어가 있는데, 단체 여행이라 가이드가 따라 붙지만 장단점이 있다. 6월에는 울릉도, 강릉, 상해를 다녀왔고 7월에는 일본 규수를 다녀올 계획이다. 호주 테즈메니아 에 캠핑카를 잡지나 사보 일로 가거나, 개인적으로 단행본 작업을 위해서 가는 경우가 있다.
대학에서 국문과를 전공하고 시로 문단에 데뷔했는데, 어떻게 여행기자를 하게 된 것인가.
4학년 때 등단을 하고 서울에 왔는데, 이문재 선생님이 소개를 해줘서 <출판저널>에서 잠시 일하게 됐다. 1년 반쯤 일하고 나서 당시 창간한 스포츠지 <굿데이> 문학 담당기자로 가게 됐는데, 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데스크랑 싸우고 나왔는데 몇 달 뒤에 다시 부르더라. 그런데 이미 문학 기자는 와 있었고 다른 팀으로 가라고 했다. 야구를 좋아해서 그러면 야구 기자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스포츠팀에도 공석이 없었다. 레저팀이랑 연예부만 남았는데 연예부는 가기 싫어서 레저팀으로 갔다. 그 때는 운전면허증도 없었던 터라 바로 면허를 따고, 카메라도 전혀 몰라서 혼자 사진 공부를 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이라 애를 많이 먹었다. 노출이 많이 나간 사진을 찍어와서 팀장한테 많이 혼났었다(웃음).
일로 하는 ‘여행’은 어떤가? 여행이 주된 업무라니, 정말 부럽다.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여행을 담당하게 됐지만, 사람들 안 만나고 나무하고 돌하고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았다(웃음). 낡은 코란도를 끌고 다녔는데 행복했다. 일단 안 가본 데를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아! 여행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예전에는 휴가를 가도 그냥 집에서 책 보거나 쉬는 게 전부였는데, 내 안에 이런 유전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거다(웃음).
여행작가는 왠지 혼자 가는 여행을 더 선호할 것 같다. 동행이 있어 수다를 떨다 보면 사색하는 시간이 줄어들 테고 일정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으니.
2,3명이서 같이 가는 여행은 일단 fun하다. 계획 같은 것을 분담할 수 있어서 편리하기도 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혼자 하는 여행이 더 좋을 것이다. 나도 때로는 혼자 하는 여행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행은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거다. 생활에 발을 딱 떼어 놓고 세금, 공과금 이런 문제 다 잊고 떠나는 거니까. 보름 정도 여행을 다녀 오면 후유증이 있을 때도 있는데 여행도 습관이 되다 보니, 여행 마지막 날 ‘한국 가기 싫다’ 정도지 큰 후유증은 없다. 일상에 들어가면 가족들이 있으니 금방 적응된다.
시인으로 등단했는데, 시를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한 마음도 들었을 것 같은데.
여행이라는 게 시를 쓰는 과정이랑 비슷한 것 같다. 자연을 보는 태도나 낯설게 바라보는 것. 여행 원고를 쓰는 게 재미 있었다. 사진 찍는 것도 시와 비슷하다. 둘 다 찰나를 담아야 하니까. 사실 주위에서 문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묻곤 한다. 시를 계속 쓰다가 안 쓰면 불안하지 않냐고. 그런데 진심으로 불안감 같은 건 없다. 2,3년 전부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대신 사진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정말 작년에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아내랑 아이들을 데리고 도쿄에 갈 생각도 했다. 그런데 셋째가 생기는 바람에(웃음) 생각을 접었다.
여행기자를 하다가 프리랜서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4년 정도 일간지에 있다가 여행주간지 <프라이데이>로 옮기게 됐는데 직책이 여행팀장이었다. 데스크에서 원고를 보는 게 주 업무였는데, 글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나 나가서 취재를 하고 싶더라. 사무실 안에서 기획안이나 쓰고 있으려니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회사에 요구했다. 연봉을 올려 주거나 1년에 해외 축제를 여섯 번 보내달라고. 그런데 긍정적인 답변이 오지 않았다(웃음). 그래서 사표를 날려 버렸다.
전업작가로 사는 것, 쉽지만은 않다. 주변에 여행작가를 꿈꾸는 사람들 정말 많지 않나? 그들에게 롤 모델이 되어 줄 것 같은데.
가끔 독자와의 만남이나 강연 같은 데를 가면, 물어보는 게 생계가 가능하냐는 거다(웃음). 가능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원고료와 인세, 강연비 등을 4:3:2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나머지 1%를 어떻게 만들까 고심 중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개정판으로 나왔다. 여행 에세이로는 첫 작품인데 5년 만에 새 옷을 입은 소감이 어떤가.
우선 나이가 들었다(웃음). 그 때는 30대 중반이었는데 이제 40대가 되었으니.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3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하냐는 걱정, 불안감 같은 게 많았다. 프리랜서로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고…. 둘째 딸 제시카가 태어나기 전이었는데, 지금은 개인적으로 변화도 많고 세계관도 바뀐 것 같다.
세계관이 바뀌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10년 정도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게, 난 여행을 하면서 바른 인간이 된 것 같다. 흔히들 여행을 하면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존중과 배려라고 하는데, 그게 맞다. 초중고부터 시작해서 대학에서 공부를 한 것보다 여행을 하면서 더 많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자본주의의 악랄함을 깨달은 것도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것도 여행을 하면서다. 여행은 도덕 경전을 읽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여행에서 맛있는 것 먹고, 멋있는 것 보는 것도 좋지만 돌아오는 비행기나 혹은 차 안에서 ‘이번 여행이 나를 얼마나 변화 시켰을까’를 떠올려 본다면, 분명 100%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을 거다. 그걸 까먹지 말고 한국에 와서도 조금 더 나은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행작가 최갑수에게는 여행이 어떤 좋은 변화를 선물했나.
5월에 이집트 여행을 갈 때 머리가 복잡한 상태였다. 마흔이 되다 보니 일에서도 전환기를 맞이해야 할 것 같았고 셋째도 생기게 됐으니 더 책임감이 들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현재를 받아들이게 됐다. 너무 정직한 답인 것 같지만, 아이들도 더 열심히 키우고 내 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이걸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여행을 다녀 온다면, 대부분 YES라는 대답을 얻고 올 거다. 여행지에서 내린 결정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여행은 사람을 절대 나쁘게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행위가 여행이 아닐까.
카메라나 노트를 제외하고 여행을 갈 때 꼭 챙겨가는 것이 있나?
모카 포트를 꼭 챙겨 간다. 여행 기사를 쓰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는데,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웃음). 국내 같은 경우에도 웬만한 대도시 아니면 새벽에 문 여는 카페는 없으니까, 아예 가지고 다니는 게 편하다.
자동차는 끝없이 달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사막을 달렸다. 그리고는 사막에 도착했다.
여행 계획은 철저히 세우는 편인가? 아니면 즉흥적으로 감에 따라 이동하나?
가기 전까지 시간 단위로 철저하게 준비하는 편이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까지 공항에서 준비한 프린트를 꼼꼼히 본다(웃음). 그런데 막상 현지에 가면 안 본다. 감에 따라 움직이다. 왜냐면 이미 준비를 하면서 공부가 된 거다. ‘계획은 철저히 세우되 현실은 무시해라’. 이게 내 좌우명이면 좌우명이다. 계획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여행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즉흥적으로 일정을 바꾼 적은 없나?
라오스 여행을 하다가 루앙프라방에 반해서 그 다음 일정이었던 태국 일정을 완전히 취소하고 15일 동안 루앙프라방에 있었다. 2박3일 있었다면 안 보이는 게 보이더라. 그래서 작업할 만하겠다 싶어서 한국에 와서 여행 기록을 정리해서 낸 책이 『목요일의 루앙프라방』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다. 루앙프라방에 가면 막상 아무것도 없다. 그냥 여기 산울림소극장에서부터 홍대 마지막 골목 정도인데, 이상한 매력이 있는 거다. 현지에서 음식을 잘 먹는 편인데, 식당에 가서 현지인에게 ‘이거 맛있어?’라고 물으면 손가락질을 하면서 같이 먹자고 한다. 그러면 친구가 되는 거다(웃음). 라오스도 시골 같은 곳에 가면 할머니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의사소통이 안 돼서 라오스에서 살고 있는 교민을 꼬셔서 통역을 시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각 나라 여행객의 특성이 보일 것 같다. 일단 우리나라 사람들은 셀카를 많이 찍을 테고.
(웃음). 정말 많이 찍는다. 사진. 중국 사람들의 경우에는 네 명 가족 모두가 DSLR을 하나씩 들고 다니기도 하더라. 유럽피안들은 아직도 일회용 카메라를 많이 쓴다. 캐나다 사람들은 꼭 배낭에 국기를 달고 다니고 미국 사람들은 목소리가 너무 커서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배낭여행 같은 건 잘 안 간다. 그냥 여유롭게 즐기는 여행을 주로 한다. 일본 여행객의 경우에는 무척 조용조용하다. 가게에 와서 흥정을 하더라도, 자기네들끼리 속삭이다가 ‘안 될 것 같지 않아?’ 이러고 사라져 버린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국민성은 아직 일본을 따라갈 나라가 없는 것 같다.
턱을 괴고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고 싶은 그런 오후. 인도 라자스탄.
시인이 찍는 사진이라서 일까.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특유의 감성이 살아 있다.
아직 부족하다. 사진에 관심이 많아서 잘 찍고 싶고 배우고 싶다. 대부분 여행을 갈 때 31, 35mm단 렌즈 두 개만 들고 간다. 예전에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 찍기 위해 찍은 사진이 많아서 부끄럽다. <론리플래닛>에서 나오지 않나. ‘사냥하면서 사진 찍지 말라’고. 일단 가까이 가면 감정이 생기고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것 같다.
직업이 여행작가니까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행지 추천’을 자주 부탁 받을 것 같다.
물론이다. 문제는 무턱대고 ‘어디가 좋아?’라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거다. 몇 명이랑 갈 거고 어떤 걸 좋아하고 이런 걸 이야기하면 추천해줄 수 있지만, 그냥 여행지를 말해 달라는 사람한테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아주 친한 경우가 아니면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 음식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이집트 여행, 사막 여행도 좋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싫을 수도 있지 않나.
여행에세이를 10권 이상 출간했다. 여행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그리고 현재 준비하고 있는지?
사진을 잘 찍으려면 많이 찍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듯이, 글도 마찬가지다. 많이 써보는 수밖에 없다. 하루에 원고지 3매씩이라도 써보면 는다. 블로그를 해도 좋고 트위터를 해도 좋다. 꾸준히 써보는 게 중요하다.
정말 궁금한 것 하나.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왜 싫어하는 것일까? 굳이 하기 싫어하는 여행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살면서 여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연애를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쓸쓸할 것 같다. 방에만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한다면.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낯선 음식을 싫어하고 잠자리가 바뀌는 걸 불편해하고 땡볕에서 걷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렇다면 관광을 안 해도 되니까 게스트하우스에라도 가서 책을 한 번 봐보라는 이야기다. 집에서 보는 책이랑 라오스에서 해 지는 풍경을 보면서 읽는 책은 분명 다르게 다가온다. 아내가 지금 캠핑 마니아가 됐는데, 예전에는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 걸 그렇게나 싫어했다. 한 번만 따라와 보라고 하고 캠핑을 데려갔는데, 호텔식처럼 매트리스 깔아주고 모닥불 피워주고 와인 따라주니까 ‘갈만하네’라고 하더라. 요즘은 나보다 더 좋아한다. 초등학생 아들이랑 4살 딸아이는 집에서도 텐트 안에서 책을 보고 캠핑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보기 좋다(웃음).
-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최갑수 저 | 예담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이 제목은 사실 자기 자신과의 화해와 사랑, 그리고 진정한 나에게로 돌아오는 여정을 뜻한다. 나의 존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상대를 편견 없이 맞이할 수 있으며, 이것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상처의 흔적을 담담히 어루만지며 인생을 조금씩 긍정해가는 방법을 깨닫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작가는 생활인으로서의 우리 내면을 섬세하게 읽어 내려가며 여행을 통해 사랑과 행복의 감수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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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엄지혜
eumji01@naver.com
레별
2013.07.23
모카 포트는 꼭 챙겨 가신다는
말씀에 백번 공감하며
인터뷰를 차례차례 읽어내려가니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일'
책이 소개되어 있네요.
얼마전 서점에서 봤는데
현란하고 꾸민듯한 글솜씨가 아닌,
작가 내면의 글로 써내려간 책이니 언제라도 한번 꼭 읽어봐야겠어요^^
최갑수 작가님은
막상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시지만
막상 현지에선 감에 따라 움직이신다고 하는데
저도 그렇게 즉흥적 여행을 떠나보고 싶네요..
여행사에서 딱딱 맞춰서 진행하는 여행일정이
너무 빡빡할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언제한번 자유로운 배낭여행 한번
떠나보고 싶네요:)
신목
2013.07.21
좋은 책이었어요.^^
bluechim81
2013.07.21
세금, 공과금 이런 일상에서 발을 떼보라는 말이 인상 깊네요. 여행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든다는 것도요.. 저 역시 경험했던 바라 ㅎㅎ
아 여행 떠나고 싶습니다!
https://twitter.com/lieto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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