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좋은 글이나 수려한 문장이 나오는 책은 아니지만 음미하듯 읽었으면 좋겠다. 내 품에 기대어 자는 누군가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상대방과 숨결의 오르내림을 맞추듯 그렇게.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내가 치유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다’라는 그 당연하고 근사한 명제를 새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2013.06.14
작게
크게
공유
나를 치유자로 키운 건
요즘은 힐링이라는 단어가 ‘언제 차라도 한잔’이란 인사말처럼 흔하다. 족발집 골목처럼 힐링의 원조를 자처하는 이들까지 생겨날 정도다. 무늬만 힐링이거나 힐링의 산업화 같은 부작용 때문에 눈살 찌푸리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이렇게 힐링이 차고 넘치는 건 사람들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언제 차 한잔’만큼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내 직업은 정신과 의사다. 지난 24년간 1만 2천 명이 넘는 사람들과 상담을 했으니 원하든 원치 않든 힐링이라는 단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지난 10년간 나는 병원의 진료실을 떠나 있었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자기와 조우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한 개인들의 속마음과 마주했으며 거리에서 의자 몇 개 놓고 감정노동자, 고문피해자, 해고노동자, 국가폭력피해자 들과 만나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그러므로 지난 10년, 나는 정신과 의사라기보다 치유적 활동을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 과정에서 나는 치유적 내공이 쌓이는 행운을 잡았다. 나를 치유자로 키운 건 거리에서 만나 자신과 마주한 사람들이었다. 직업적 겸양이나 의례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진료실이라는 공간에서 의사라는 직업의 전문가가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후광도 없이 나는 그들과 심리적 민낯으로 만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내 친구인 동시에 상처받은 새였고, 스승인 동시에 삐쳐 있는 연인이었다. 그들과 나는 눈물과 웃음을 주고받았으며 고통과 분노를 함께 나누었다.
그들은 눈물로 내 눈을 밝게 해주었고 나는 그들이 마음의 상처를 추스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력자(치유자)가 되었다. 그들은 대개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되었다.
아주 쉽고 친근하게 표현하자면, 이 책은 치유자로서 내 영업 비밀을 담은 책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이 나와의 상담을 통해 조금이라도 치유가 되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를 조곤조곤 설명하는 책이다. 사람들이 내게 끊임없이 그리고 반복적으로 물었던 질문들에 대해 한번에 몰아서 찬찬히 답하는 심정으로 정리했다.
언젠가 함께 일하는 20대 여자 직원이 전화 한 통을 받고 난 후 다급한 울음과 함께 내게 말했다. “친구가 투신자살했대요. 어떻게 해요? 그 부모님과도 잘 알고 지냈는데 어떻게 위로해드려야 하나요? 저와 친구들은 또 어쩌죠?” 어느 날은 오래 알고 지내는 지인이 머뭇거리며 자신의 고민을 토로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교폭력방지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자기 아이가 왕따 당하고 있는 친구를 집단 폭행한 현장에서 가해 학생 중 하나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아이와 재판 과정을 함께하면서 그는 혼란에 빠졌다. “피해 학생과 부모에게 어떤 사과와 위로를 전해야 하나요? 내 아이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건가요? 내가 아이를 너무 몰랐던 것일까요?” 질문의 결이나 폭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사람들은 그런 상황들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나 그런 일을 당한 타인을 어떻게 위로하고 도와야 하는지 난감해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런 비상한 상황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이니 어쩌면 좋을까.
원고를 정리하는 내내 그런 절박한 질문들에 답하는 심정이었다. 이 책은 내가 30대 여성 4명과 함께 떠난 치유여행의 기록이다. 우리는 1주에 한번씩 2시간 동안 만났다. 그렇게 6주 동안 마음여행을 했다. 일종의 ‘집단 상담’을 한 것이다. 집단 상담에서 내 역할은 치유자였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들은 동생 같았고 때론 친구나 사랑스러운 인생 후배였다. 그 여행 동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얘기들을 치유자의 입장에서 정리했다. 평가나 분석이 아니다. 치유자로서의 내 속마음이다.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무슨 말을 하지 않았는가’에 더 주목하면 좋겠다. 그것이 더 치유의 본질에 가까울 것이다. 마지막 시간에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때 마음이 어떠셨어요?” 하고 나한테 되묻곤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었다. 내가 그들에게 자주 했던 질문이다. 그 말을 따라 하며 그냥 웃는 듯했지만 나는 그들이 이미 치유의 핵심이 무엇인지 체감했다고 느꼈다. 그 웃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좋은 글이나 수려한 문장이 나오는 책은 아니지만 음미하듯 읽었으면 좋겠다. 내 품에 기대어 자는 누군가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상대방과 숨결의 오르내림을 맞추듯 그렇게.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내가 치유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다’라는 그 당연하고 근사한 명제를 새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마지막으로 꼭 언급해야 할 두 명의 스승이 있다. 한 명은 이번 여행을 함께한 지혜다. 그는 많이 아팠지만 더 많이 용감해서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준 가이드였다.
또 한 명. 내가 치유자의 역할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격려하는 나의 심리적 구루, 이명수. 이 책의 첫 독자로, 스파링 파트너로 공저자에 가까운 공헌을 했다.
두 사람에게 특별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요즘은 힐링이라는 단어가 ‘언제 차라도 한잔’이란 인사말처럼 흔하다. 족발집 골목처럼 힐링의 원조를 자처하는 이들까지 생겨날 정도다. 무늬만 힐링이거나 힐링의 산업화 같은 부작용 때문에 눈살 찌푸리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이렇게 힐링이 차고 넘치는 건 사람들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언제 차 한잔’만큼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내 직업은 정신과 의사다. 지난 24년간 1만 2천 명이 넘는 사람들과 상담을 했으니 원하든 원치 않든 힐링이라는 단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지난 10년간 나는 병원의 진료실을 떠나 있었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자기와 조우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한 개인들의 속마음과 마주했으며 거리에서 의자 몇 개 놓고 감정노동자, 고문피해자, 해고노동자, 국가폭력피해자 들과 만나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그러므로 지난 10년, 나는 정신과 의사라기보다 치유적 활동을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 과정에서 나는 치유적 내공이 쌓이는 행운을 잡았다. 나를 치유자로 키운 건 거리에서 만나 자신과 마주한 사람들이었다. 직업적 겸양이나 의례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진료실이라는 공간에서 의사라는 직업의 전문가가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후광도 없이 나는 그들과 심리적 민낯으로 만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내 친구인 동시에 상처받은 새였고, 스승인 동시에 삐쳐 있는 연인이었다. 그들과 나는 눈물과 웃음을 주고받았으며 고통과 분노를 함께 나누었다.
그들은 눈물로 내 눈을 밝게 해주었고 나는 그들이 마음의 상처를 추스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력자(치유자)가 되었다. 그들은 대개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되었다.
아주 쉽고 친근하게 표현하자면, 이 책은 치유자로서 내 영업 비밀을 담은 책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이 나와의 상담을 통해 조금이라도 치유가 되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를 조곤조곤 설명하는 책이다. 사람들이 내게 끊임없이 그리고 반복적으로 물었던 질문들에 대해 한번에 몰아서 찬찬히 답하는 심정으로 정리했다.
언젠가 함께 일하는 20대 여자 직원이 전화 한 통을 받고 난 후 다급한 울음과 함께 내게 말했다. “친구가 투신자살했대요. 어떻게 해요? 그 부모님과도 잘 알고 지냈는데 어떻게 위로해드려야 하나요? 저와 친구들은 또 어쩌죠?” 어느 날은 오래 알고 지내는 지인이 머뭇거리며 자신의 고민을 토로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교폭력방지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자기 아이가 왕따 당하고 있는 친구를 집단 폭행한 현장에서 가해 학생 중 하나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아이와 재판 과정을 함께하면서 그는 혼란에 빠졌다. “피해 학생과 부모에게 어떤 사과와 위로를 전해야 하나요? 내 아이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건가요? 내가 아이를 너무 몰랐던 것일까요?” 질문의 결이나 폭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사람들은 그런 상황들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나 그런 일을 당한 타인을 어떻게 위로하고 도와야 하는지 난감해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런 비상한 상황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이니 어쩌면 좋을까.
원고를 정리하는 내내 그런 절박한 질문들에 답하는 심정이었다. 이 책은 내가 30대 여성 4명과 함께 떠난 치유여행의 기록이다. 우리는 1주에 한번씩 2시간 동안 만났다. 그렇게 6주 동안 마음여행을 했다. 일종의 ‘집단 상담’을 한 것이다. 집단 상담에서 내 역할은 치유자였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들은 동생 같았고 때론 친구나 사랑스러운 인생 후배였다. 그 여행 동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얘기들을 치유자의 입장에서 정리했다. 평가나 분석이 아니다. 치유자로서의 내 속마음이다.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무슨 말을 하지 않았는가’에 더 주목하면 좋겠다. 그것이 더 치유의 본질에 가까울 것이다. 마지막 시간에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때 마음이 어떠셨어요?” 하고 나한테 되묻곤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었다. 내가 그들에게 자주 했던 질문이다. 그 말을 따라 하며 그냥 웃는 듯했지만 나는 그들이 이미 치유의 핵심이 무엇인지 체감했다고 느꼈다. 그 웃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좋은 글이나 수려한 문장이 나오는 책은 아니지만 음미하듯 읽었으면 좋겠다. 내 품에 기대어 자는 누군가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상대방과 숨결의 오르내림을 맞추듯 그렇게.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내가 치유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다’라는 그 당연하고 근사한 명제를 새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마지막으로 꼭 언급해야 할 두 명의 스승이 있다. 한 명은 이번 여행을 함께한 지혜다. 그는 많이 아팠지만 더 많이 용감해서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준 가이드였다.
또 한 명. 내가 치유자의 역할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격려하는 나의 심리적 구루, 이명수. 이 책의 첫 독자로, 스파링 파트너로 공저자에 가까운 공헌을 했다.
두 사람에게 특별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 당신으로 충분하다 정혜신 저 | 푸른숲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주치의로 자리 잡은 심리치유 전문가 정혜신의 신간 『당신으로 충분하다』가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이 개발한 개인맞춤형 심리분석 프로그램인 ‘내 마음 보고서’ 결과 가장 평균적 모습을 보인 30대 여성 4명과 정혜신 박사가 6주간 진행한 집단 상담을 토대로 했다. 기존의 심리서가 특정 문제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법을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 책은 상담참석자들이 자기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덮어둔 상처를 용기 있게 대면하며 치유에 이르는 상담실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8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heliokjh
2013.07.29
heliokjh
2013.06.21
tvfxqlove74
2013.06.2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