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강수진, “마음이 안 좋을 때는 제 발을 보고 울어요”
‘최효종의 추파’ 두 번째 주인공은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펴낸 발레리나 강수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 발레리나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최고령 현역 발레리나다. 평소 강수진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최효종은 여느 때와 달리 약간은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201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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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공연을 단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강수진’ 이름만은 안다. 동양인 최초, 최연소로 세계 5대 발레단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 '최초'와 '최고'의 삶을 살아온 그녀. 지금은 '최고령' 현역 발레리나가 되었지만, 강수진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은퇴 시기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흔 일곱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한없이 투명한 얼굴로 무대에 서는 발레리나 강수진은 최근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펴내고 청춘 멘토로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녀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특별하지 않다.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오늘을 사는 것, 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면 후회할 수 없다는 것. 참으로 당연한 이치이지만 강수진의 언어로 말하니, 더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짐작하게 된다. 나약하고 수줍음이 많아 땅만 쳐다보고 다녀서 ‘땅 바라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꼬마 강수진은 어떻게 세기의 발레리나가 됐을까. 최효종이 호기심 있는 눈으로 추파를 보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발 사진의 주인공이 된 사연부터 외할아버지인 구본웅 화백을 중학생이 돼서야 알게 됐다는 사실까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발레리나 강수진의 모습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았다. 강수진은 오는 5월 31일, tvN <스타특강쇼>를 통해 잠자는 열정을 깨우는 그녀만의 철학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 ||
최효종 : 제가 지금까지 뵌 분 중에 가장 세계적인 스타세요(웃음).
강수진 : 아휴, 별 말씀을(웃음).
최효종 : ‘최효종의 추파’ 두 번째 손님으로 강수진 선생님을 초청했는데요. 다른 기자 분이 할 때보다 제가 하니까 어떠세요? 괜찮으시죠?
강수진 : 편해요. 재밌으세요(웃음).
최효종 : 저는 원래 스타한테 약하거든요.
강수진 : 왜요? 스타들도 사람인데.
최효종 : 선생님의 책이나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 사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완전한 완전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강수진 : 아휴, 완벽한 사람 없어요. 다 똑같아요. 스타라고 하는 건 사람들이 붙이는 이름이잖아요. 우리는 그냥 우리가 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있고, 그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의미로 완벽하게 보인다고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스타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완벽하지 않아요(웃음).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고요, 다행히도 완벽이란 것이 없다는 걸 아는 거죠.
최효종 : 저도 그렇지만 살면서 후회하는 순간들이 참 많잖아요. ‘이 때 이만큼 더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선생님은 후회를 잘 안 하셨을 것 같아요.
강수진 : 왜냐하면 저는 후회라는 단어를 너무 싫어해요. 살다 보면 당연히 실수를 많이 하죠. 그런데 열심히 살다 보니까 실수를 했어도 후회할 수가 없어요. 완전히 공연을 망쳤다 해도 후회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 날의 그 하루를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죠. 열심히 살다 보면 좋든 싫든 후회할 수가 없어요.
최효종 : 최근에 SBS 프로그램 <땡큐>에 출연하신 걸 봤는데요. 요즘 대세인 젊은 세대들, 지드래곤과 손연재 선수가 강수진 선생님이 멘토라고 말했더라고요. 두 분 만나셨을 때는 어떠셨나요?
강수진 : 우선 둘 다 너무 귀여웠고요(웃음). 멘토 이전에 인생 선배로서, 언니로서 누나로서 제가 얘기해줄 수 있었던 건, 지나가는 과정에서 힘들어도 ‘Just do it’ 하라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당연히 역경을 겪고, 머리를 쥐어짤 때 많았죠(웃음). 그런데 그게 젊은 세대들이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에요. 그 시기를 지나가지 않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참 행운아이지만은, 저로서는 그게 행운아라고 얘기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10대, 20대, 30대에 각각 해야 할 일들이 있더라고요. 그 일들이 있기 때문에 힘들고, 그걸 힘들지 않게 지났다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그 과정을 지나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손연재 선수나 지드래곤은 잘하고 있어요. 자기 나름대로의 힘든 과정이 있다고 했지만 두 사람 다 굉장히 영리해요.
하루하루 내 발전이 큰 꿈이었다
최효종 : 강수진 선생님은 워낙 이력이 화려하셔서 일일이 나열하기가 어려운데요. 동양인 최초, 최연소로 세계 5대 발레단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을 하셨고, 정말 많은 수상 경력도 있으신데요. 최초와 최고의 삶을 살아오셨는데, 현재는 최고령 발레리나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최고령 발레리나라는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세요?
강수진 : 저는 최초, 최고, 최고령처럼 ‘최’ 자가 들어가는 말은 진짜 상관없어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첫 번째, 최초, 최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최고령 발레리나’라는 얘기를 들으면 당연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지금 한국 나이 마흔 일곱이잖아요. 굉장히 자랑스러워요. 나이가 들어서 자랑스럽다는 게 아니라, 이제까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와서 사람들이 ‘최고,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니까 감사한 거죠. 누구라도 언젠가 ‘나는 최고니까, 이 정도면 조금 덜 해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하면 그때가 마지막인 것 같아요.
최효종 : 발레를 처음 시작하셨을 때,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셨나요?
강수진 : 전혀요. 발레단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생각 못했고, 그런 큰 꿈도 없었어요. 그냥 하다 보니까 재미가 붙었어요. 재미 붙는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발전하는 과정을 보람 있게 느끼는 마음이, 저는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어요. 발레리나 주역이 되고, 최초 최고가 되겠다는 꿈도 없었고요. 하루하루 제 발전이 저의 큰 꿈이었어요. 그게 작은 꿈 같지만, ‘10년, 20년, 30년 뒤에 내가 어떻게 될까’ 허황되게 꾸는 큰 꿈보다는 ‘오늘 하루 열심히 살자’는 내 작은 꿈이 옳았던 것 같아요. 사람 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내일을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내일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하는 일에 충실히 몰두해서 하다 보면 사람들이 불러주고, 인정해 주고, 성공적인 캐릭터라고 얘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최효종 : 저의 경우에도 보면, 장기공연을 할 때 체력을 안배해야 하기 때문에 한 공연 한 공연 최선을 다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오늘 몸 관리를 잘해서 내일 또 공연을 해내는 게 프로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가슴을 퍽 맞은 것처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걸 깨닫게 되네요.
강수진 : 한 가지 조언해 줄게요. 저도 사람들이 큰 무대라고 생각하는 볼쇼이나 뉴욕에서 공연을 했지만, 저한테는 지방의 작은 극장에서 무용하는 것과 똑같아요. 아무도 모르는 작은 극장에 단 한 명의 관객만 왔다고 해도 저는 최선을 다해서 공연해요. 왜냐하면 그게 제가 생각하는 프로의 자세거든요. 장기 공연은 당연히 힘들죠. 하지만 오늘 공연을 생각하지 않고 ‘일주일 뒤의 공연 때까지 컨디션을 조절해야 된다’는 걱정을 하면, 오늘 컨디션은 꽝이에요(웃음). 걱정을 하느라 벌써 에너지가 소비되고 있으니까요.
최효종 :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하시고 매일 새벽에 2시간씩 스트레칭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강수진 : 사람들은 시간의 숫자를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데, 저는 아니에요. 저도 사람이니까 힘들 때는 새벽에 2시간을 못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을 때도 5분, 10분이라도 하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안 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걸 배웠어요. 제가 2시간 동안 연습한 결과를 어떤 사람은 30분 만에 얻을 수도 있어요. 사람마다 자신의 연습시간 동안 얼마나 몰두하는가가 중요하고 그것을 꾸준히 한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시간의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연습을 하는 동안에 얼마만큼 자신의 두뇌와 모든 것을 집념해서 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매일 매일 한다는 건 자기 단련이고 수련이에요.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오래 발레를 할 수도 있는 거고요. 몇 분을 못해서 나중에 후회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걸 알기 때문에,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냥 해버려요. 그 날 할 수 있는 만큼, 나의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중요해요.
못하면 어쩔 수 없지만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좋았다
최효종 : 강수진 선생님은 ‘노력’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분이시잖아요. 그런데 예술이라는 것은 타고난 재능도 굉장히 중요한데, 제가 볼 때 선생님은 남을 의식하는 성격은 아니신 것 같지만요. 누구보다도 많은 훈련을 소화하면서 ‘저 친구는 나보다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구나, 저 친구는 나보다 연습을 안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연기를 할 수 있지?’ ‘왜 나한테는 저런 재능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 같은데요.
강수진 : 당연히 재능 있는 사람들 너무 많죠. 잘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 ‘와, 잘한다’ 생각은 하지만 한 번도 ‘누구처럼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싫어했어요. 그래서 제가 우상이 없었어요. 내가 못하면 어쩔 수 없지만,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좋았어요. 재능이 있고 몸이 참 좋은 사람들을 볼 때도 ‘그런가 보다’ 했어요.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바쁘게 살면 세상이 참 아름다울 것 같아요. 누구를 시기하고 다른 사람을 곁눈질할 시간을 자기한테 쏟아 부으면 사람들이 모두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욕심이 있고, 시기가 있고, 다른 사람을 뛰어넘으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대끼는 것 같아요.
최효종 : 예술하는 분들이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왠지 인복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사람들도 선생님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요.
강수진 : 제가 누구라도 시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하고 있을 때는 그것도 인간의 한 모습이니까 다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다행히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감정이 크게 일었던 적이 없었어요. 속마음이 편했죠(웃음). 자기가 편해야지 내 주위 사람들도 편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시기하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오늘만 욕심 부리세요. 내일 욕심 부리지 말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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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음대로 웃고 울리는 ‘나의 발’
최효종 : 아마 가장 많이 받으신 질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선생님의 발 사진이 굉장히 유명하잖아요. 많은 분들이 꿈과 열정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고요. 그런데 그 사진이 너무 많은 곳에 퍼져 있다는 사실이 부담되지는 않으세요?
강수진 : 제 발 사진이 많은 곳에 퍼져 있다는 사실은 그냥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제 발이 아닌 사진이 제 발이라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지금 이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데, 제 발은 남편이 찍은 단 하나의 사진 밖에 없거든요. 처음에 제 발 사진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닌다고 들었을 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 못생긴 발을 보고 도움이 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감사했어요. 발 사진은 제 남편이 하도 모습이 기가 막혀서 장난으로 찍은 사진인데, 그것도 하나의 인연인가 봐요. 사람들한테 도움 되라고 찍게 됐나 봐요. 하지만 제 발이 아닌 사진이 제 발이라고 돌아다니는 건 싫어요(웃음).
1997년, 어느 날 강수진의 발을 본 남편 툰치는 “이런 희귀한 발은 사진으로 남겨 둬야 해”라며 놀리듯
그녀의 발 사진을 찍었고, 2001년 강수진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MBC <성공시대>를 통해 사진이 소개됐다.
강수진의 노력이 만들어낸 이 사진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최효종 : (웃음) 아무래도 사람들이 더 보고 싶은 것만 찾게 되듯이, 선생님 발에 더 노력의 흔적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마 반영된 것 아닐까 싶네요.
강수진 : 조금 전에도 최초, 최고, 최고령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어떨 때는 제가 한국인 최초로 받은 상은 이 상이지 저 상이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은 그걸 원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놔둘 수밖에 없어요(웃음). 그런데, 그대로 둬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저로서는 좋은 거죠. 왜 우리가 일을 하고 노력을 하겠어요. 행복해지기 위해서잖아요. 저는 매일 매일이 생일이에요. 밥을 먹더라도 매일 맛있게 먹고, 제 남편이 잘 해주니까요, 매일 남편과 생일 축하하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 나누는 게 우리 생활이에요(웃음). 그런 날들을 갖고 싶으시면 한 번 열심히 하루를 살아 보세요. 그게 차곡차곡 모아지면 언젠가는 자기한테 모든 게 다 돌아옵니다.
최효종 :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서 사는 선생님의 모습에 만족하고 행복해 하신다고 했는데, 그 노력의 흔적인 발을 보시면서 스스로 ‘내가 이만큼 노력 했구나’ 생각하실 때도 있으신가요?
강수진 : 당연히 그렇죠, 사람이니까요. 발이 진짜 아프고 제 마음이 안 좋을 때는 제 발을 보고 울어요. 그런데 제가 웃고 기분이 좋을 때는 발을 보고 깔깔대고 웃어요(웃음). 기분이 정말 우울할 때는 발을 쳐다보면서 울어요. 그런데 발이 못 생겼다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은 안 하고요. 아플 때 발을 보고 있으면 울적하니까 울고, 그러다가도 ‘참 못생겼다, 그치?’하면서 웃기도 하고, 울고 웃고 울고 웃고 그래요(웃음). 하나의 피카소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거니까 좋은 거죠, 내 마음대로 울고 웃고 할 수 있으니까요.
최효종 : 모든 발레리나의 발이 선생님 같은 건 아니잖아요?
강수진 : 그럼요. 예쁜 발도 있더라고요, 많아요. 그런데 뭐, 제 발은 이렇게 생긴 거죠.
최효종 : 예쁜 발의 발레리나를 보면 ‘쟤는 열심히 안 했구나’ 생각되지는 않으세요?
강수진 : 아뇨. 열심히 해도 발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사람들의 발을 볼 때는 ‘아, 예쁘네’ 하고 그걸로 끝이에요(웃음). 그 사람 발은 그 사람 발이고, 제 발은 제 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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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때문에 알게 된 외할아버지 구본웅 화백
최효종 : 선생님 가족이 대대로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집안이라고 들었어요. 가족들에게 예술적인 영향을 많이 받으셨나요?
강수진 :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께서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얘기를 전혀 안 하셨어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서 배웠어요. 할아버지가 구본웅 화백이신 것은 중학교 때 유학 다녀와서 알았어요. 집에서 우표를 봤는데 그 그림이 외할머니셨어요. 그 그림을 구본웅 화백이 그렸다는 걸 학교에서 배웠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께 ‘우표 샀네?’라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응, 너희 할아버지가 그린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때 깜짝 놀랐죠. 저도 희한하지만 어머니도 참 희한하죠(웃음). 어머니가 정말 존경스러운 게, 굉장히 겸손하고 말이 없으세요. 그런데 할아버지 이야기를 안 해주신 건 조금 심했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리고 저희는 소장하고 있는 할아버지 그림이 하나도 없어요. 언젠가 박물관에 갔더니 저희 할아버지께서 그리신 그림이 참 많더라고요. 그래서 ‘아, 꽤 유명하시네’ 생각했죠. 저희 집안이 참 희한해요(웃음).
최효종 : 혹시 어머님 주변분들 중에는 이렇게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따님이라는 걸 모르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강수진 : 지금은 어머니께서 아프셔서 집 밖을 나가지 못하세요.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원래 아프셨어요. 그런데 저희 네 명을 키우신 다음에 다들 결혼해서 떠나고 나니까, 그때 쓰러지시더라고요. 예전에 외출하셔서 친구 분들 만나시고 할 때는 주위 분들이 저를 아셨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집안에만 계시니까 더더군다나 모르시죠. 어머니 자체가 참 강하다는 걸 항상 느껴요. 그렇게 아프셨는데도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뇌졸중을 견뎌내신 거예요. 사람의 정신력은 자신도 모르는 힘이 있어요. 저희 어머니를 보면서 그걸 또 새삼스럽게 느껴요.
최효종 : 그 동안 많은 선택을 하셨을 텐데, 내가 생각해도 참 잘했다 싶은 선택이 있으신가요?
강수진 : 사실은 제가 발레를 시작한 이유가 어머니께서 그냥 ‘손들어 봐라’라고 하셔서 시작한 거잖아요. 최초는 어머니의 선택이었지만 그것도 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손들었으니까요(웃음). 그게 잘한 것 같아요, 손 들은 게(웃음). 그리고 어렸을 때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 선생님과 부모님이 유학을 가라고 할 때 간 것도 잘한 것 같고요. 제가 싫다고 했으면 안 갔을 것 아니에요(웃음).
최효종 : 역시, 인복도 무시할 수는 없죠.
강수진 : 그럼요. 저 혼자 잘한다고 해서 잘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이렇게 좋은 선생님, 남편, 부모님, 가족과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아무리 혼자 열심히 살아도 이렇게 잘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 드려요. 누구나 느끼겠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건 일보다 사람 때문이잖아요.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많이 배웠으니 늘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요. 사람이 감사하면서 살면 우선 마음이 편하고요, 그렇게 살면 행복해요. 아무리 똑같은 걸 받아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불행하죠. 아무리 갖다 바쳐도 충분하지가 않아요. 그렇게 살지 마세요. 세상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 정말 괜찮아요. 사람들도 다 나쁜 게 아니니까 감사하면서 살면 자기한테 좋아요.
구본웅: (1906~1953) 서양화가로 호는 서산(西山). 한국의 야수파, 표현주의 대표적인 작가로 프랑스 화가 로트레크에 비유해서 ‘조선의 로트레크’로 불렸다. 전통적인 유교정서가 정치를 포함한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맹위를 떨치던 일제시대에 한국의 미술계에 일대 혁신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예술인. 친구였던 시인 이상을 모델로 그린 작품 ‘우인상’이 유명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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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대화, 소통
최효종 : 저도 많은 분들을 뵙지만 선생님 같은 분은 제가 처음 뵙는 것 같아요. 무엇인가 하나에 열중하고 노력하고 최고가 되신 분들, 혹은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예민하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요. 선생님을 처음 뵐 때는 조금 예민하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너무 긍정적이고 밝으세요.
최효종 : ‘최효종의 추파’는 제가 만나고 싶은 분을 뵙는 거예요. 만약 선생님께서 저와 같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시다면, 누구와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으신가요?
강수진 : 저한테는 누구든지 다 중요해요. 실제로 만나보면 최고라고 불리는 분들이 제일 보통이에요(웃음). 제일 편하고요. 제 생각에는 최고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과정에서 싸우고 계신 분들이 오히려 더 예민한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분야에 있는 사람이든지 다 만나고 싶어요. 살아가면서 누구든지 만나서 무언가를 배우고 도움을 줄 수 있고, 서로 서로 오고 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또 많이 배우고 발전될 수 있으니까요.
최효종 :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족 이외에 가장 고맙다고 느끼셨던 스승이나, 주위 동료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강수진 : 우선 스승님,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선생님, 그리고 제 남편이요. 모든 발레 이전에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진짜 진짜 행운을 얻었다면, 이렇게 좋은 남편을 만났다는 거죠.
최효종 : 안 그래도 남편 분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어면 면이 가장 고마우세요?
강수진 : 일단 저희 부부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 날의 일을 꽁하게 쌓아두었다가 일주일 뒤에 얘기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오래 사귀고 결혼을 늦게 했기 때문에 서로 많이 알아서, 얘기를 안 하는 경우에 싸움이 나는 것 같아요. 저희는 만약 아침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면 저녁에 식사하면서 ‘기분 나쁘겠지만 이건 꼭 얘기하고 싶다’고 말해요. 그 얘기를 들어보면 제가 잘못했던 일이 많아요. 그러니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거죠. 보통 싸움이라는 건 언어 소통이 잘 안 되기 때문이에요. 이해하기 위해서는 얘기를 해야죠. 부부로 오래 살다 보면 눈만 보면 알잖아요. 얘기하기 싫어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뭐야, 말해 봐’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다 괜찮아지는 거예요. 아마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서로 소통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최효종 : 저도 나중에 결혼을 하면 소통을 정말 잘해야겠네요(웃음). 마지막으로 궁금한 질문이 있는데 이번에 책을 처음으로 내셨잖아요. 평소 독서광이고 도서관에도 자주 가신다고 들었는데, 올해 가장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을 추천해주신다면요?
강수진 : 예전에 학교 다닐 때는 독서를 정말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자기 전에 한 장, 두 장이라도 읽으려고 해요. 그런데 책 제목은 말하지 않을래요. 불공평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한 책을 소개하면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책 속의 좋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 실천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저는 시간이 없어서 끝까지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좋은 한 구절을 실천해요. 책을 많이 읽는다고, 안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알면 실천하는 게 중요한 거예요. 독자님들, 읽어서 실천하세요. 책 한 권을 다 읽고서 ‘이 사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해봐야지’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에게 맞는 내용을 선택해서 실천하면 결코 나쁘지 않을 거예요.
최효종의 Talk Talk Tal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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