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시작하여, 1987년 6.29 선언을 거치는 가운데 한국프로야구가 출범되고 출판, 대중음악, 영화, 방송 등 대중문화가 양적으로 팽창하던 그 시절. 부동산 투기 열풍과 본격적 강남 개발로 사회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1980년대는 그야말로 사회 모든 분야갸 격하게 요동치던 시대였습니다. <채널예스>는 1990년대를 탐험하는 기획을 거쳐 이제는 1980년대를 호출해봅니다. 그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있다면, 이제는 마음껏 누려볼 수 있을까요?
어디를 가도 아이돌그룹의 노래만 들려와 귀를 막게 되는 당신.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나 홀로 걸어보자. 현란한 간판들 사이로 옛 추억이 떠오르는 올드 팝이 당신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로데오거리가 젊은이들을 위한 거리라고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LP판을 보유하고 있는 LP카페 트래픽부터 대한민국 음악인이라면 한번쯤은 찾아오는 14년 역사의 음악감상실 핑가스 존, 올드 록 클럽 전자신발, 뮤직바 피터 폴 앤 메리까지. 당신의 특별한 음악 취향대로 즐길 수 있다.
박진영, 김창완이 단골인 음악감상실 ‘핑가스 존’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좀 한다는 사람들이 핑가스존을 두고 하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의 음악 도서관’. 3만여 장의 LP와 CD, 그리고 DVD까지 갖춘 핑가스 존은 손님들이 손수 적어주는 신청곡 메모에 “이 곡은 없어요”라고 대답해본 역사가 없는 곳이다. 인스턴트 음악감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샘물 같은 존재로 14년째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지키고 있다. 어느덧 40대 중반에 접어든 핑가스 존 김남욱 사장은 집안에 더 이상 앨범을 놓을 공간이 없어 직접 음악감상실을 만들게 됐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음악이 너무 좋아 직장인 밴드를 만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희귀 음반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쉽게 음악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LP가 주는 감성과 DJ가 직접 틀어주는 정성은 음악감상의 질을 한층 높인다.
핑가스 존은 음반제작사, 작곡가, 영화감독, 가수, 라디오DJ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박진영, 김창완, 작곡가 김형석, 피아니스트 김광민, 개그맨 이윤석 등이 단골이다. 소녀시대, 샤이니, 2PM 등 아이돌 스타들도 모두 한번씩 다녀갔다고 하니, 그야말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이다. 이들이 핑가스 존을 찾는 이유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세기의 음악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 로데오거리를 우연히 걷다가 들어오는 손님들은 거의 없다. 모두들 알음알음 찾아서 오거나 누군가의 추천으로 왔다가 단골이 된다. 최근에는 한 중년신사가 대학생 손자와 아들, 며느리와 함께 방문해 70, 80년대 유행했던 올드 팝부터 최신 가요까지 10여 곡을 신청했다.
“온 가족을 데리고 오는 손님들이 종종 있어요. 지금은 중년이 됐지만, 자신들이 젊었을 때 들었던 노래들을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시죠. 그런 모습을 볼 때는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처음에는 최신곡만 듣던 젊은 사람들이 7080 노래를 틀어주면 거부감이 들진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호기심 있게 듣는 거 같아요. 딱히 정해진 장르는 없어요. 신청곡을 위주로 선곡하되 재즈, 하드록, 올드록, 포크, 가요, 팝 등 모든 장르를 소개해드려요.”
핑가스 존 입구에는 이 곳을 다녀간 스타들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싸이, 정형돈, 김재원 등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사진과 사인이 핑가스 존의 인기도를 증명하고 있다. 저녁 7시에 열어 새벽까지 영업하는 핑가스 존은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앨범들을 구입하고 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신청하는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는 4가지 버전으로 앨범을 준비해놓았고 비틀스, 아바, 퀸, 비지스 곡들은 이틀에 하루는 꼭 트는 음반이라서 항상 DJ석 가까이에 놓는다.
“80년대 중반에 인기 있었던 라디오음악 시그널도 종종 틀어요. 그 시대를 함께했던 손님들은 시그널만 들어도 금방 추억에 잠기시죠. 저는 아무래도 밴드 음악을 좋아해서 80년대 활동했던 그룹 중에는 산울림, 송골매 음악이 가장 좋아요. 김창완 씨도 종종 핑가스 존에 오시는데 산울림 노래를 좋아했던 손님들이 무척 반가워들 하세요. 지금처럼 음악하는 사람들의 사랑방, 전 세대들이 편안하게 올 수 있는 음악감상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모던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LP카페 ‘트래픽’
핑가스 존과 멀지 않은 거리에서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 ‘트래픽’을 만날 수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1호점에 이어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2호점이 오픈했다. 트래픽의 오영길 사장은 1975년 신촌과 홍대에서 음악다방 DJ로 활약했던 이력이 있다. 스무 살 때부터 당시 장당 200원짜리 LP백판(해적판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모은 앨범이 1만 5천여 장에 달한다. 아마도 국내 수집가로서는 최고 수준일 것이다. 1990년대 초 종로에 카페를 열었다가 9년 전 신사동 가로수길로 옮겼고, 2011년 세시봉 바람이 불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트래픽의 주요 신청곡은 롤링스톤스, 잭슨 브라운, 이글스, 로드 스튜어트 등 70, 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의 곡이다. 트래픽은 독특하게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손님들을 맞이한다. 널찍하고 아늑한 공간만큼이나 여유 있게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깔끔한 인테리어 덕분에 20, 30대들이 주요 고객이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50, 60대 손님들도 적지 않다.
올드 록 듣고 싶다면 ‘전자신발’
트래픽과 핑가스 존 사이에 독특한 록카페 ‘전자신발’이 자리해있다. 전자신발은 70,80년대 인기 있었던 록과 블루스, 재즈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30대부터 50대까지 음악 마니아들이 주요 단골이다. 전자신발을 사장 Alex 씨는 “1969년 뉴욕에서 개최된 록 페스티벌 우드스톡의 정신을 담은 곳”이라고 전자신발을 소개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은 LP판 6천여 장이 손님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오디오의 명품 ‘마크 레빈스’사의 파워 앰프가 단골들의 귓가를 풍성한 음색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LP 구경도 못한 20대 초반 손님이 50대 손님들과 함께 비틀스를 듣고 있는 모습, 이것이 제가 원하는 가게의 풍경이에요. 다양한 세대가 다양한 음악을 즐기면서 가볍게 한잔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80년대 음악계를 선도한 마이클 잭슨이 사망했을 2009년에는 한동안 매일같이 그의 곡이 신청곡으로 쇄도했다. 지난해 휘트니 휴스턴이 사망했을 때도 몇 주간 그녀의 곡이 전자신발에 울려 퍼졌다. “요즘에는 80년대 새로운 음악이었던 신스팝이 다시 살아나고 있잖아요. 음악을 듣다 보면 역시 유행은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60년대부터 80년대 록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전자신발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해볼 수 있다.
축음기가 들려주는 깊은 음색 ‘피터 폴 앤 메리’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지나 신사동 가로수길로 접어들면, 2006년에 문을 연 뮤직바 ‘피터 폴 앤 메리’가 손님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60년대 미국의 대표적 포크송 그룹의 이름을 딴 피터 폴 앤 메리는 9천여 장의 LP판과 대형 스피커, 축음기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인터넷에서 오디오 전문가로 유명한 한계남 사장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음악이 너무 좋아 피터 폴 앤 메리를 열게 됐다. 편안한 장소와 최고의 음향을 제공하는 LP카페가 이 곳의 콘셉트다. 피터 폴 앤 메리에는 턴테이블이 3개 있는데, 이중 1천만 원을 호가하는 일본 마이크로제 턴테이블도 있다. 스피커는 원하는 모델을 구하지 못해 한계남 사장이 직접 설계해서 제작했다. 피터 폴 앤 메리의 손님층도 역시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한계남 사장은 “주 고객층은 의사, 교수들을 비롯해 금융 관련 종사자들이 많이 찾는데 특히 음향시설과 다양한 장르의 음반 구비에 만족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가장 인기있는 신청곡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호텔 캘리포니아와 보헤미안 랩소디다. 피터 폴 앤 메리는 밤 11시 이후 대음량으로 음악을 틀어도 대화를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최고 성능의 사운드 시스템을 자랑한다. 좀 더 분위기 있는 공간에서 음악을 즐기고 싶다면 피터 폴 앤 메리를 추천한다.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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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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