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요결은 율곡 이이가 쓴 성리학의 기본 교과서다. <동양고전, 2012년을 말하다>에서는 『격몽요결』을 읽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을 맡은 한형조 교수는 시종일관 활달했다. 그는 어려운 내용이 나올 때면 재미있는 일화를 들어 설명했고, 이날 관객석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격몽요결 강연자 한형조 교수
인문학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한형조는 인문학을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말했다. '낯선 곳'이란 어디일까? 흔히들 교통이 닿지 않는 오지나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를 떠올릴 것이다. 한형조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곳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영상 매체의 발달로 가보지 않은 곳도 생생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형조가 말하는 낯선 곳이란 자기 자신이다. 그는 정말로 새로운 건 자기 내부에 존재하며, 인문학은 낯선 자신으로 떠나는 길을 열어준다고 말한다.
수많은 인문학 중에서 왜 하필이면 유학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형조는 특히 여성들의 반발을 우려했다. '유학'이라 하면 가부장제, 제사, 고부갈등 같은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유학의 일부분만 알고 있기에 생긴 선입관이다. 한형조 씨는 유학이 전근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탈역사화 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해나가야 함을 당부했다.
왜 인문학이 화두인가?
한국 사회는 참 복잡하다. 여전히 전쟁 중이며, 경제 성장을 외친다. 복지와 분배의 문제도 산적해있다. 어떤 문제도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데 경제 성장이나 부의 분배를 왜 해야 하는 걸까? 결국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객관적인 경제 지수가 성장한 만큼 행복 지수가 상승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락했다. 행복 지수가 낮은 시대니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기 위해 서점에 가 보자. 서점을 둘러보면 '미쳐라'고 조언하는 책이 참 많다. 행복 지수는 낮고, 사람에게 미치라고 권하는 사회. 한형조는 우리 사회가 정신을 지나치게 혹사하는 사회라고 진단했다.
요즘에는 강연이 대세다. 한형조는 강연이 인기 있는 원인을 대학에서 삶의 기술을 가르치지 않아서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대학이 삶과 죽음을 가르쳤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친 셈이다. 하지만 현대의 대학은 삶과 죽음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직 전공만을 학습한다. 예전에 대학에서 배웠던 것을 이제는 배울 수 없다.
한형조는 인문학은 한가한 문화 강좌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라고 하는 건 인문학이 아니다. 그는 인문학이야말로 살면서 익혀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 강조했다. 그중에서 유학은 삶의 기술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한 학문이다.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사람 노릇을 하려면 공부, 즉 학문을 하라고 충고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 노릇을 하자면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는 무슨 남다른,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일상적 삶에서, 관계와 거래에서, 일을 적절히 처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 뿐이다. 산에서 한 소식을 한 소식을 하거나,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얻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공부를 안 하면, 마음은 잡초로 뒤덮이고, 세상은 캄캄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고, 지식을 찾는다. 지식이 길을 밝혀줄 것이니, 오직 그때라야, 정신의 뿌리가 튼튼해지고, 활동이 중을 얻는다. (격몽요결, 서)
다음은 한형조가 이야기하는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장점이다.
첫째,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 준다.
둘째, 삶을 견딜 수 있도록 맷집을 길러준다.
셋째, 주변 사람과의 의미와 유대를 강화하여 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내 마음은 어떨까?
타인의 마음을 알고 싶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지 궁금하고,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좋아할지도 궁금하다. 그러면서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놓치고 만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잘 몰라도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다. 하지만 자기 마음을 모르면 불행해진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에 나오는 말이다.
한형조는 우리가 가진 마음의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진단했다. 첫 번째 문제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와 친구이며 가족이다, 이런 대답은 나에 대한 답이 아니다. 직업과 주변인에 대한 답이다. 이렇게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모른다.
두 번째 문제는 마음이 굽어져 있다는 것이다. 한형조는 두 번째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는 여성이 설렁탕 집에 갔다.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주문한 설렁탕이 나왔다. 그렇데 설렁탕에는 주인집 아저씨의 손가락이 담겨있었다. 깜짝 놀란 여성은 아저씨에게 외쳤다.
“아저씨, 손가락이 설렁탕에 담겨있어요!”
아저씨는 답했다.
“익숙해서 괜찮아요.”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꼭 이야기에 나오는 설렁탕 주인집 아저씨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산다. 그렇게 자기 자신 만의 세계에 갇혀서 산다.
자신 속에 있는 자연성을 회복하라
우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며, 마음은 굽어져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선불교의 육조 혜능은 제자들에게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 너의 얼굴을 보여다오.”라고 말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훈육된다. 부모에게 지시를 받고, 내가 아닌 남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행복에 다다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형조는 스스로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라 조언했다.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 질문은 스스로를 의식하는 연습, 경의 시작이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욕구가 있다. 이중에는 좋은 욕구도, 병적인 욕구도 있다. 많은 이는 자신의 욕구가 어떤 욕구인지 모른다. 좋은 욕구인지 병적인 욕구인지 모른 채로 욕망한다. 어쩌면 생산적인 욕구보다 병적인 욕구에 더 집착하곤 한다. 한형조는 그래도 인식하고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마음이 뒤틀려 있음을 알 때만, 우리는 비로소 뒤틀린 마음을 고칠 수 있다.
문득 자기 자신의 마음이 뒤틀려 있음을 인정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한형조는 꼰대가 된다고 말한다. 그가 정의하는 꼰대는 자신의 견해를 보편적인 가치로 착각하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다. 꼰대가 되면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자주 일으킨다. 자신이 생각하는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기에 타인을 비난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적은 타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격몽해야 한다.
한형조는 유학을 공부하는 최종 목표가 자기 자신 속에 존재하는 자연성의 회복이라 말한다. 풀고 풀어서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는 진정한 나와의 만남을 지향한다. 말은 쉽지만 어려워 보인다. 혼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누구나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열려있다.
말하건데, 보통사람과 성자는 꼭 같은 가능성을 타고났다. 비록 각자가 타고난 기질에, 맑고 순수한 정도가 다르지만, 힘껏 지식을 얻고, 실천을 해나가, 그 성과로 오래된 오염을 물리치고, 자신의 최초의 가능성을 회복한다면, 거기 아무것도 더할 것 없이,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격몽요결, 입지)
세상 만물을 소유하고 있어도 내면의 성장이 없다면 의미는 없다. 하지만 사람은 살면서 때때로 이를 잊고 산다. 한형조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인문학을 위한 독서 방법
한형조는 인문학을 위한 독서 방법은 일반적인 독서 방법과 다르다고 이야기 한다. 다음은 인문학 독서 방법을 위한 한형조의 조언이다.
첫째, 고전에 담긴 이야기가 내 이야기라고 여기며 절실하게 읽어라.
둘째, 고전을 다 읽었다고 어디 가서 폼 잡지 마라.
셋째, 정신을 집중해서 읽어라
넷째, 고전을 비평하면서 읽지 마라.
한형조는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네 번째, 고전을 비평하면서 읽지 말 것을 들었다. 어떤 이들은 책을 향해 설교를 하며 읽는다. 한형조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책은 삼킬 생각 보다는 씹고 또 씹을 각오를 하라고 말했다. 그저 골수에 사무칠 정도로 반복해서 읽기를 권했다.
정준민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있는
sind1318
2013.05.31
미미공주
2013.03.26
waterunicorn
2013.02.25
꼭 필요한 자세이자 조언인 것 같습니다. 씹고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게 바로 고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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